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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임기영의 체인지업, 그 서정적인 비눗방울

백종인 입력 2017.11.19. 07:17 수정 2017.11.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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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4년 시즌은 반토막났다. 샐러리 캡 도입이 쟁점이었다. 선수 노조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마지막 수단인 파업을 결행했다. 8월 12일. 모든 구장이 문을 닫았다. 커미셔너(버드 셀릭)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강으로 응수했다.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잔여 일정 전체를 취소해버렸다. 덕분에 선수들의 휴가가 빨리 찾아왔다.

파드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남으니 놀 일 밖에 없다. 삼삼오오 몰려 바로 옆 샌디에이고 바닷가로 나갔다.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비치 발리볼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것도 승부라고, 이기려는 경쟁이 시작했다. 한 명이 무리하다가 삐끗했다. 찌릿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오른쪽 어깨였다. 진단 결과는 회선건판(rotator cuff) 손상이었다. 수술이 필요했다. 유격수에서 전향해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우완 불펜 투수였다. 생소한 배구 동작이 평소 약해진 부위에 탈을 부른 것이다.

수술 후 이듬해 복귀했다. 하지만 더 이상 90마일 중반대의 빠른 볼을 던질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주무기였던 서클 체인지업도 쓸모 없는 공이 돼 버렸다. 고작 90마일 안팎의 직구와 조합으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낙담한 그에게 동료 한 명이 다가왔다. 마이너리그 출신 무명 투수였다. “이렇게 잡고 한 번 던져봐.” 그가 권한 것은 처음 보는 그립이었다. 마치 팜볼처럼 손바닥 전체로 공을 감싸쥐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밤만 되면 펫코 파크에 기괴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호주 출신의 락밴드 AC/DC가 연주하는 곡이었다. 그리고 섬찟한 분위기와 함께 저승사자가 등장했다. 트레버 호프먼이었다. 가공할 위력을 지닌 그의 체인지업은 상대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리그를 평정한 마구로 군림했다.

2011년, 파드레스는 51번의 영구 결번식을 열었다. 주인공은 오래 전 친구 한 명을 잊지 않고 초대했다. 자신에게 그 공을 가르쳐준 전수자였다. 짧은 무명 생활을 마치고,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 고교 야구 코치가 된 도니 엘리엇이었다.

(두번째 사진 - 호프만)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대만에는 저런 투수가 없다”

엄청난 부담이 짓눌렀다. 지면 끝나는 단두대 매치였다. 무거운 짐을 떠안은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늘씬한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언뜻 뱀직구를 던지는 그의 선배 투수가 떠오른다. ‘G Y IM’. 이니셜까지 비슷하다.

중반에 두어 차례 고비가 있었다. 일본인 구심의 낯선 존에 난감한 기색도 보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몰릴수록 오히려 대담해졌다. 반대로 상대가 허둥거렸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배짱인 지 알 수가 없었다.

백미는 7회였다. 1-0의 살 떨리는 리드, 투구수는 한계치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다. 그럴수록 더 강해졌다. 6번 쑤즈제-7번 우녠팅-8번 옌홍쥔이 모두 빈 스윙 뿐이었다. 삼진 3개로 이닝이 마감됐다. 7이닝 동안 허용한 안타는 2개 뿐이었다. 나머지 4사구 3개가 전부였다. 삼진 7개를 빼내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덕아웃의 선동열 감독은 입이 귀에 걸렸다. 흐뭇한 미소를 주체하지 못했다. 곁에 있던 ‘옆구리 출신’ 투수 코치(이강철)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이 잘해줬다. 처음에는 5~6이닝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투구수가 많아지면서 체인지업이 오히려 좋아졌다. 7회까지도 충분하다고 본 이유다. 상대가 좌타자를 많이 기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상대 팀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이드 암이라고 좌타자를 7명이나 내세웠다. 2번~8번까지 내리 왼쪽 타석이었다. 하지만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타선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잘 치지 못했다. 다소 긴장한 것 같았다.” 물론 이게 소감의 전부일 리 없다. “한국 선발투수의 변화구가 아주 좋았다. 대만에는 저런 타입의 투수가 별로 없다. 다양한 변화구가 다양한 코스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타자가 포인트를 잡기 어려웠다.”

고작 120㎞로 타자를 춤추게 만들다

빠른 공의 스피드는 대단치 않았다. 기껏해야 130㎞ 후반대였다. 그런데도 상대 좌타 라인은 꼼짝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체인지업이다.

처음 볼 때는 분명히 스트라이크다. 그런데 존으로 오다가 힘없이 땅으로 꺼진다. 그냥 아래로만 변하는 게 아니다. 왼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간다. 그러니까 타자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변화구가 어디 한 두 종류인가. 수많은 유형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의 체인지업이 유독 경쟁력을 갖는 이유가 있다. 도무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레벨의 타자들은 던지는 순간 투수의 동작에서 힌트를 얻는다. 미세한 폼의 차이를 읽어내기도 한다.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공의 회전을 구분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체인지업은 그게 힘들다. 똑같은 팔 스윙의 각도와 스피드에서 이뤄진다. 공의 회전마저 직구와 구별이 불가능하다. 즉, 변화하기 전까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스피드는 대략 120㎞ 정도였다. 그럼에도 상대 타자들을 허둥거리며 춤추게 만든다. 처음에는 직구 타이밍으로 배트가 나온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서 스윙을 늦추면 이미 때는 늦었다. 잘 해야 빗맞은 타구, 아니면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려야 한다.

“포수(한승택)의 리드가 좋았다. 수비수들도 많이 도와줬다. 긴장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똑같은 경기라고 생각하고 던졌다. 물론 가장 자신있게 구사한 것은 체인지업이었다. 스트라이크를 던진다고 해서 다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게임했다.” (경기 후 임기영의 말)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지옥의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체인지업은 70마일(113㎞)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타자들은 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통산 500번째 세이브의 제물은 다저스였다(2007년 6월 6일ㆍ펫코 파크). 이 경기의 중계는 역시 빈 스컬리 할아버지였다. 그는 역사적인 순간에 이렇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멘트를 남겼다. 특유의 느릿하고, 점잖은 말투였다.

“이건 말이죠. 마치 비눗방울을 향해 스윙하는 것 같군요(It‘s like swinging at a soap bubble).”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 후기 : 세분하면 차이가 있다. 임기영의 것은 서클 체인지업이다. 반면 트레버 호프만은 팜볼(palm ball), 또는 팜볼 체인지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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