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졌지만 좋은 경기?' 한일전에 그런 건 없다

조회수 2017. 11. 17. 09: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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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연장10회 승부치기는 무사1, 2루에서 시작됐다. 평소라면 차분한 작전이었을 것이다. 성향이나, 타자(최원준)를 감안할 때 그렇게 예상됐다. 그런데 벤치의 선택은 달랐다. 의외의 강공이었다. 결과는 우익수 플라이였다. 우리 팬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대수비에 불과한(?)류지혁이었다. 초구146㎞짜리 외곽의 빠른 볼을 후련하게 받아쳤다.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직접 때렸다. 1점을 얻고, 2, 3루의 기회가 이어졌다. 타점의 주인공은 2루에서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승리의 포즈였다.

뜨거워진 타선은 하주석 차례에서 폭발했다. 역시148㎞짜리 속구였다. 부드럽게 따라붙은 배트는 최적의 지점에서 공과 만났다. 우익수 오른쪽을 향해 강력한 라인드라이브를 만들어냈다. 2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밟았다. 우리쪽 선수들은 덕아웃 밖으로 뛰쳐 나갔다. 커다란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10회 말 1사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야마카와 호타카였다. 좌완 구창모를 상대로 펜스를 넘겼던 타자 아닌가. 함덕주가 이겨낼 수 있을까? 입 안에 침이 말랐다. 그러나 몸쪽 공략이 적중했다. 먹힌 타구가 짧은 좌익수 플라이로 잡혔다. 이제 좌타자 1명만 더 잡으면 승리가 코 앞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코너워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볼이 쌓이며 카운트는 3-1로 불리해졌다. 5구째 가운데로 밀어넣은 어정쩡한 공(135㎞)가 화를 불렀다. 안익훈이 아무리 따라가도 소용없었다. 타구는 담장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3점의 리드가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다.

부랴부랴 벤치가 움직였다. 함덕주 다음은 이민호였다. 나오자마자 스플리터로 삼진을 잡았다. 두번째 아웃 카운트를 빼내며 사태는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니시카와 료마가 안타로 출루했다.  2루 도루까지 성공시키며 위기는 깊어졌다. 다무라 다츠히로의 타석. 카운트 1-2에서 회심의 승부구를 뿌렸다. 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하지만 다무라의 배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공도 비슷한 구질(136㎞)이었다. 문제는 높이였다. 가장 치기 좋다는 벨트 부근으로 통과했다. 상대가 용서할 리 없다. 타구는 도쿄돔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날았다. 한참 앞쪽에서 전진 수비하던 외야수들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자리였다.

몇가지 번뜩임, 끝내 문제가 된 불펜

전임(專任)감독으로는 데뷔전이었다. 스펙 자체야 완벽하다. 나름대로 차고 넘칠만한 대표팀 경력의 보유자다. 선수로는 당연하고, 지도자로도 빠질 게 없다. 특히 김인식 체제 하에서 투수 부문을 총괄하며 국제 무대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투수 기용과 교체에 대해서는 결정적으로 기여한 바가 많다는 사실은 익히 정평이 났다.

이날도 번뜩인 장면이 있었다. 선발 장현식의 발탁이었다. 투수 보는 안목은 역시 타고 났다. 합숙 훈련 기간의 면밀한 관찰 끝에 가장 중요한 개막전 투수로 캐스팅했다. 대부분의 전문가, 관계자들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우리 선발 후보중에 가장 빠른 퀵모션(슬라이드 스텝)을 가졌다. 기동력이 좋은 일본을 상대하기 적합하다. 1~2회 막아주면5~6회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캐스팅은 멋지게 적중했다. 5이닝1실점의 역투였다. 그나마도 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이었다.

공격 라인업도 나쁘지 않았다. 견고한 일본 투수와 수비진을 상대로 적지 않은 점수를 얻었다. 한 번 잡은 기회에서 최대한을 뽑아내는 효율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역시 불펜이 문제였다. 8회 장필준까지는 괜찮았다. 9회 이후에 비틀거렸다. 김윤동-함덕주-이민호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교체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장필준을 더 끌고 갔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를 놓고 얘기하면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적절성은 논외로 하자. 워낙 미묘한 문제다. 관점에 따라 이견이 많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근거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오늘 <…구라다> 얘기의 주제로 적합치 않다.

패배를 빨리 털어내고 싶은 심정

경기후 인터뷰 때는 좋은 얘기들이 많았다. 열거한 것처럼 ▶선발 장현식이 잘 던져준 점 ▶4점을 내는 과정 ▶중반을 지키는 과정 등에 대한 호평을 내놨다. 공격 작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말들이 오갔다. “일본 투수들 제구력이 있어서 오히려 작전을 내기가 더 쉬운 것 같았다. ‘앤드 런’ 작전 상황이 오면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수들이 워낙 잘 따라줬다.”

정작 곱씹어봐야 할 지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멘트가 이어졌다. “지켰어야 했는데, 지키지 못했던 것이 좀 아쉬웠던 것 같다. 연장 승부치기에 가서 우리가 먼저 3점을 내고, 상대에게 역전을 당했는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참 너무 좋은 경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졌지만 젊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던 경기가 아닌가 싶다.”

경기가 종료된 순간을 되짚어보자. 우리 선수들은 허탈함에 빠져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덕아웃에 있던 선 감독은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클럽하우스에서 짤막한 미팅까지 가졌다. 전언에 따르면 거기서 전달된 메시지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진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경기를 했다. 이런 게 여러분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실수도 나왔고, 긴장해서 다리가 잘 떨어지지 않는 선수도 보였다. 그래도 이번 일본전이 여러분에게는 많은 걸 배우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일한 자기 위로가 허용되는 자리가 아니다

물론 선 감독의 뜻은 충분히 이해된다. 걱정되는 패배였다. 개막전이자 숙명의 라이벌전이었다. 연장전서 3점차가 뒤집힌 끝내기였다. 상당한 후유증이 동반될 요소들이 가득이다. 팀의 수장으로서 빨리 털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다독이고, 추스리며, 보듬어야 하는 것도 옳다.그래야 남은 대만전을 넘어, 결승전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선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패배를 인정하고, 원인에 대한 냉철한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한다.경기 후 인터뷰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팬들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자리다. 처절한 돌이켜봄이 있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질책과 책임을 진지하게 얘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제점에 대한 대책과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상대팀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승리에 대한 소감에도 절실함은 가득했다.  “한국전은 늘 어렵다. 언제나 접전이 된다. 그래서 이기고 싶었다. 선수들도 (덕아웃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패배는 이 세계에서 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어제(16일)는 겨우 개막전이었을 뿐이다. 아직 대회 일정은 남았다. 만회할 기회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혹독하고, 치열해야 한다. 안일한 자기 위로 따위가 허용되는 자리가 아니다.

졌지만 좋은 경기였다고?적어도 한일전에 그런 건 없다.

백종인/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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