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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토리] 양현종, 그리고 지난 10년의 가을을 지배한 투수들

조회수 2017. 11. 6. 14: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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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한 경기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은 퍼펙트게임이다. 9이닝 이상 완투하며 단 한 번의 출루와 실점 없이 이기는게 조건이다. (MLB에서는 완투가 아니라도 퍼펙트게임을 인정한다) 다음이 노히터게임이다. 출루를 허용하더라도 안타 없이 완봉승을 거두면 성립한다. KBO리그 36년 동안 퍼펙트게임은 한 번도 없었고 노히터 게임은 13번 있었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헛점이 있다. 실점과 안타를 억제하는 야수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볼넷, 삼진, 홈런은 수비 관여 없이 결정되지만 타자가 공을 때려서 페어지역으로 날아간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야구통계의 분석에 의하면, 인플레이 타구 안타여부는 투수 4 야수 6 정도로 수비가 더 많이 좌우한다. 

게임스코어(GameScore, GS)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투수평가지표다. 야수의 협력을 가급적 배제하고 투수 개인의 경기지배력에 비중을 둔다. 이 지표를 고안한 것은 빌제임스인데, “그냥 재미로 만들어본 것(my annual fun stat)”이라는 당시의 설명이 무색하게, 이후 유용성을 인정받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톰탱고가 이를 약간 수정해서 Gamescore2.0 이란 명칭으로 이어진다.

계산방법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기본점수 40점에서부터 잘한 것과 못한 것에 점수가 부여된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낼 때마다 +2점, 삼진은 추가로 +1점을 준다. 대신 안타 -2점, 사사구 -2점, 실점 -3점의 감점계산이 있고 피홈런은 -6점이다.  9이닝 기준의 이론적 최고점수는 121점이다. (이상 Gamescore2.0기준) 

1900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퍼펙트게임은 21번 있었다. 하지만 투수의 게임지배력을 평가하는 게임스코어 최고기록은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터게임이 아닌 경기에서 나왔다.  1998년 5월8일 휴스턴을 상대로 삼진 20개를 잡으며 완봉한 시카고컵스 케리우드의  112점이다. 그는 이날  9이닝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도 함께 세웠다.

KBO리그 지난 10년 동안 5,944경기 11,888번의 선발등판이 있었는데, 그중 게임스코어 1위는 류현진이 2009년 7월11일 LG전에서 기록한 102점이다.  14삼진 3피안타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뒀는데 이는 투수 개인의 경기지배력을 기준하면 같은 기간 있었던 3번의 노히터게임을 능가했다는 뜻이다. 

올 시즌 최고 게임스코어는 공교롭게 승리투수도 되지 못한 선수가 기록했다.  7월22일 롯데전 8이닝 12탈삼진, 1피안타, 1사사구로 던진 팻딘인데 팀은 0-1로 졌다.  게임스코어는 96점이고 2008년 이후 전체 5위(공동)에 해당한다.  게임스코어는 이렇게, 득점지원과 무관한 투수의 피칭을 상징성이 아니라 내용에 주목해서 평가하는 지표다. 

지난 한국시리즈 2차전을 1-0 11K 완봉한 양현종 피칭은 게임스코어 93점이고 2008년 이후 포스트시즌 전체 1위이다.  이 승리는 KIA 우승에 대한 결정적 기여임과 동시에, 이날의 피칭은 지난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던진 모든 투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경기지배력의 결과였다.  (포스트시즌 역대 최고는 96년 정명원의 한국시리즈 4차전 노히터 경기이다. 게임스코어 97점)

다음은 지난 10년의 가을야구에서, 가장 압도적인 피칭으로 경기를 지배했던 투수의 기록이다.

5위.  2009년 KS 5차전 KIA 로페즈 vs SK - 9이닝 6K 4H 3W (GS 86점)

그해 SK의 기세는 굉장했다. 무승부를 패배로 계산한 규정 때문에 KIA가 정규시즌 1위에 오르긴 했지만 승패기준 승률로는 SK가 더 앞섰다.  시즌 마지막 20경기에서 한번도 지지 않은 팀이었고 19연승(1무승부)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시리즈 2승2패에서 5차전 선발등판한 로페즈는 106구 완봉승을 기록하며 3승2패 우위를 만들었다.

4위.  2012년 KS 6차전 삼성 장원삼 vs SK - 7이닝 9K 1H 0W (GS 89점)

2년 연속으로 삼성-SK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3승2패로 삼성이 앞서 있었고 2차전 승리투수였던 장원삼이 다시 선발로 나왔다. 완투경기는 아니었지만 7이닝 동안 94구 1피안타, 무사사구 피칭을 해냈다. 뒤를 이어 안지만이 1이닝, 오승환이 1이닝을 막았고 삼성의 2년 연속 통합우승을 결정지었다.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친 SK는 이후 더이상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왕조의 주인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다만 삼성이 4회에 6득점하며 일찌감치 7-0으로 앞선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라 KS MVP는 시리즈 2승투수 장원삼이 아니라 한국복귀 첫 해였던 8안타 7타점 이승엽이었다.

3위.  2015년 PO 1차전 두산 니퍼트 vs NC - 9이닝 6K 3H 2W (GS 90점)

두산은 넥센과의 준PO에서 1차전 연장승부, 2차전 1점차 승부, 4차전은 선발 이현호가 3이닝 강판된 후 구원투수 5명이 동원되서 나머지 6이닝을 막는 11-9 난타전 같은 소모전을 겪었다.   하지만 PO1차전 선발 니퍼트는 114구 7-0 완봉승으로 기선을 잡아준다.   그는 4차전에서도 7이닝 6삼진 2피안타 피칭을 했는데 이 경기도 게임스코어 84점으로 가을 선발투수 중 전체 8위다.  당연히 PO MVP도 니퍼트였다.  가을 니퍼트의 전설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시리즈였다.

2위. 2013년 PO 2차전 LG 리즈 vs 두산 - 8이닝 10K 1H 2W (GS 92점)

1피안타 완봉승. 홍성흔의 내야안타가 아니었다면 노히터 게임이었다. 더구나 2점차 리드가 빠듯하게 이어진 승부였고 팀 타자들은 10안타 6볼넷을 얻으면서도 추가득점을 얻지 못하는 흐름이라 긴장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리즈는 전체 107개 중 71%(76개)를 던진 패스트볼에서 최고 160.0kmh 평균 154.6kmh의 무시무시한 구속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또 11년 만에 가을에 야구한 LG가 그해 거둔 유일한 PS 승리이기도 하다.   

1위. 2017년 KS 2차전 KIA 양현종  vs 두산 - 9이닝 11K, 4H, 2W (GS 93점)

양현종이 올해 한국시리즈 2차전에 기록한 게임스코어는 93점으로 2008년 이후 포스트시즌 모든 선발투수 중 1위다. 그는 올해 한국시리즈 최고수훈선수 일 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의 가을야구에서 가장 압도적 피칭을 한 투수다.

양현종의 그 경기 피칭을 설명하는 숫자들은 몇 가지가 더 있다.  KIA의 올해 한국시리즈는 1차전 패배로 시작되었다. 역대 시리즈 중 첫 두경기를 모두 내주고 역전우승에 성공한 경우는 딱 2번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경기에서 KIA 타자들이 낸 점수는 딱 1점이다. 올해 정규시즌 각 팀의 1득점 경기는 총 502번이고 그중 461경기에서 졌다. 이긴 경기는 3.8%인 19경기 뿐이다.  1득점으로 이기려면 당연히 0점으로 막는 수비와 피칭이 필요하다.  그래서 KIA의 2차전 1-0 승리는 시리즈 2패의 절박함에 몰리기 직전의 팀이 96.2%의 패배가능성을 뒤집고 얻은 결과다.

또 올시즌 19번 1-0 경기 중 완투승리 경기는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양현종은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동안 내내 혼자 마운드를 지켰다.

완투완봉으로 1-0 승리를 따낸 경우라도 수비와 행운의 도움은 어느정도 작용하는 법이다. 그런데 양현종이 기록한 게임스코어 92점은 2008년 이후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통틀어 모든 1-0 완봉경기 중에서도 역대 3위에 해당한다.  전체 1위는 15년 4월9일 마야의 노히터경기였고, 2위는 12년 5월11일 윤석민의 1안타 경기였다. 둘다 정규시즌 경기였으니 양현종의 피칭은 포스트시즌 기록 중 최고인 것은 당연하다.


시즌 챔피언을 가리는 시리즈에서, 팀이 가장 절박한 위기에 몰렸을 때, 가장 빈약한 득점지원 속에서, 수비와 행운의 도움이 아닌 투수 자신의 압도적 지배력으로, 양현종의 한국시리즈 1-0 완봉승이 만들어졌다.  이게 기록과 분석지표로 풀어낼 수 있는 그의 분투다.

물론 그날 양현종이 보여준 것은 숫자 이상이다. 그는 두려운 승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물러서는 후배 포수를 다그쳐 세웠다.  선수들 못지않게 긴장하며 굳어있는 관중들을 뜨겁게 독려했다.  마지막엔 잔뜩 독이 오른 상대팀 간판타자를 직구승부로 삼진아웃시켜 경기를 끝냈다.  이런 과정을 어떤 숫자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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