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성'의 김기태.."형이 지켜줄게" 지게 리더십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2017. 10. 31. 16: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잠실구장에 시상대가 차려졌다. 지난 30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 선수들이 한 명씩 메달을 목에 걸고 모였다. 선수들이 가득한 가운데 KIA 김기태 감독이 연단에 올랐다. 시상이 이어졌다. 행사가 잠시 멈추자 김 감독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선수들 사이를 헤치고 오른쪽 뒤를 파고 들어가 한 선수를 다독였다.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양현종도, MVP급 활약을 펼친 로저 버나디나도, 고비마다 결정적 안타를 때린 이명기도 아니었다. 김 감독이 손을 잡은 선수는 김주형이었다. 양현종이 마운드에 오른 9회말 결정적 송구 실책으로 모든 걸 망칠 뻔 했던 3루수였다.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후 양현종과 포옹을 하고 있다. 2017.10.30 / 잠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행사가 끝난 뒤 김 감독에게 그 상황을 물었다. 김 감독은 “안 만났다. 아무 말도 안했다”며 짐짓 모른체 했다. “(김주형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슬쩍 덧붙였다.

김기태 감독이 KIA를 리그 챔피언으로 끌어올렸다. 어수선했던 팀이 2년 만에 단단해졌고, 실력으로 이어졌다. 지휘봉을 잡은 지 3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는 ‘소통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수들은 김 감독의 장점에 대해 주저없이 “편안하게 해 준다”라고 답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여간 편안하다”라고 말한다.

편안함은 실없는 농담, 맥락없는 칭찬 등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좋은 웃음만으로는 편안함이 아니라 느슨함이 더 쉽게 자리를 잡는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오 두로셔 감독은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을 남겼다.

‘마성’이라 불리는 김 감독의 소통 방식은 어려운 짐을 자기가 짊어지는 스타일에서 나온다. 베테랑을 존중하면서 낮고 어려운 곳을 먼저 살피는 배려를 지녔다. “나만 따라와”하는 형님 리더십이 아니라 ‘지게를 짊어진’ 큰 형님 리더십에 가깝다. “형이 지켜줄게”의 리더십이다. 옛날 대가족 시절, 지게는 집안을 이끄는 큰 형님의 상징이었다.

시즌 초반이었던 지난 5월28일 광주 롯데전 최원준은 앞선 3번의 만루기회를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 롯데는 앞 타선의 김선빈을 고의4구로 계속 거르며 최원준을 궁지로 몰았다. 4번째 또 찾아온 연장 11회말 만루 기회, 김 감독은 최원준을 그대로 내보냈다. 김 감독은 무거운 지게를 스스로 짊어졌다. 최원준은 만루홈런을 때렸고, 한 뼘 이상 성장했다.

6월13일 사직 롯데전 7-7 동점 8회말 2사 1·2루, 이대호 타석 때 마운드에 김윤동이 있었다. 김 감독이 마운드를 찾았다. “이대호 연봉이 얼마냐?”고 했다. 김윤동 연봉의 50배가 넘는다. “맞아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김윤동은 이대호를 내야 땅볼로 잡아냈다. 김윤동은 그때 김 감독의 지게 위에 올라탄 셈이었다. 김윤동은 5차전 8회 무사 1루 위기를 가뿐하게 막아냈다.

어쩌면 시리즈가 시작할 때 승부가 결정났는지도 모른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1차전 식전 행사. 선수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두산 김태형 감독은 이름이 호명되자 서둘러 자기 자리를 향했다. 김기태 감독의 이름이 불리자 김 감독은 홈플레이트 근처 자기 자리 대신 3루 베이스 근처 도열한 선수들의 끝을 먼저 찾았다. 선수들과 하나하나 하이파이브를 하고 나서야 제 자리를 찾아 섰다. 그때 이미 김기태 감독은 자기 자리가 아니라 선수들의 자리를 먼저 보고 있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