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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레슬링 챔피언, 다저스의 WS 우승을 꿈꾸다

백종인 입력 2017.10.23. 08:58 수정 2017.10.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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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 : 게티이미지


2010년 드래프트는 역대급이었다. 1라운드 후보자들의 면면에 입이 떡 벌어진다. 브라이스 하퍼, 매니 마차도, 크리스 세일, 맷 하비, 야스마니 그랜달, 크리스티안 옐리치….


다저스는 28번째였다. 그 때까지 웬만한 선수들이 남아날 리 없다. 앞 순번에서 모두 다 빠져나갔다. 그나마 쓸만한 투수 한 두 명이 남았다. 스카우트 팀은 둘을 놓고 막판까지 고민했다. 한 명은 볼은 빠른 데 영 미덥지 못했다. 노아 신더가드라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스타였다. 텍사스 매키니 고교의 에이스 투수이자, 풋볼(미식축구) 쿼터백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잭 (스티븐) 리였다.


다저스의 선택은 안전모드, 즉 ‘엘리트’였다. 그리고 무려 525만 달러의 계약금을 안겨줬다. 동기생들 중 브라이스 하퍼(990만)는 그렇다 치자. 한참 앞 순번이던 매니 마차도(525만)와 동등했고, 크리스 세일(165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베팅이었다. 하지만 도박은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몇 차례 콜업 됐지만, 번번이 난타당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참을성의 한계는 6년이었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팀을 디자인하던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은 2016년 6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아마도 네드 콜레티 시절의 실패한 유물을 더는 안고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잭 리를 시애틀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대신 유격수 한 명을 받았다. 크리스 테일러라는 그냥 그런 선수였다.


테일러의 특별한 과외 공부


혹독하게 추운 동부 버지니아 출신에게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따스한 봄이나 다름없다.


2017년 1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LA 북쪽의 산타 클래리타라는 도시로 향했다. TZA이라는 곳을 찾아서다. 풀네임이 ‘THROWZONE ACADEMY’인 TZA는 근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치는 사설 교습소 같은 시설이다.


거기서 로버트 반 스코야크(Robert Van Scoyoc)를 만났다. 동유럽을 연상시키는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이지만 우습게 볼 사람은 아니다. 타격 컨설턴트라는 다저스의 공식적인 직함도 가졌다. 이를테면 외부 전문가인 셈이다.


그들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타격폼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핵심적인 부분을 간추리면 이렇다. ① 확실한 레그킥을 위해 왼발을 더 높게 들기로 했다. ② 빠른 볼에 대응하기 위해 손의 위치는 조금 내렸다.


이 부분에서 뭔가를 떠올리시는 독자가 있을 거다. 2013년 메츠에서 쫓겨난 저스틴 터너가 LA 인근에서 더그 래타라는 동네야구 코치에게 레그킥에 대한 강평을 듣고 대오각성한 얘기 말이다.


[야구는 구라다] 백수가 된 저스틴 터너, 재야의 은둔 고수를 만나다. (클릭)


얼마 뒤 애리조나 캠프에서 만난 터너는 그의 변화를 한 눈에 알아봤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봐 크리스. 자네는 한 게임에 안타를 2~3개는 쳐야 만족하지? 난 아냐. 플라이볼 4개를 치면 그날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해.”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였던 크리스 테일러의 변신에 크게 용기가 된 얘기였다.

이미지제공 : 게티이미지


“자네 외야 한 번 해보겠나?”


스토야크에게 받은 과외 수업 이후로 스윙은 무섭게 달라졌다. 스프링캠프 동안 22게임에서 .354를 폭발시켰다. 하긴, 그럼 뭐하나. 결국 개막 로스터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아시다시피 다저스 내야의 층층시하에서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그런데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로건 포사이드의 부상으로 2루에 일자리가 하나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백업 정도려니 했다. 베테랑 체이스 어틀리가 있고, 키케 에르난데스 같은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랑비 같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차곡차곡 주변을 적시기 시작했다. 어느덧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이전에 72경기에서 .285-10홈런-38타점을 기록했다. 이젠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것이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고민이 시작됐다. 내야는 차고 넘친다. 놔두자니 테일러의 출장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냥 썩히기는 아까운 공격력이다. 결국 감독실로 불러 앉혔다. “자네 외야 한 번 해 보겠나?”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버지니아 주립대) 2학년 때였다. 스티븐 브루노(현재 컵스 마이너리그)라는 후배가 들어오자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한동안 우익수로 밀려났다.

이미지제공 : 게티이미지


‘레슬링 선수 출신이니 벤치 클리어링 때 걱정 없겠네’


크리스 테일러는 3대를 잇는 레슬링 가족이다. 아버지인 크리스 시니어는 버지니아 공대 시절인 1970년대 후반 3차례나 지역 챔피언을 연패한 강자였다. 은퇴 후에는 38년간이나 지도자로 활약했다.


집안의 레슬링의 혈통은 할아버지 아만드 테일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지니아 공대 레슬링부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그는 2005년에는 대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을 정도다.


크리스 테일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레슬러의 길을 걸었다. 그레이트 넥 미들 스쿨 7학년(중1) 때는 91파운드(41㎏)급에서 시 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몸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야구에만 전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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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작년 6월 트레이드 얘기를 해보자. 실패한 유망주 잭 리를 내주고, 크리스 테일러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코리 시거가 이미 대성공을 거뒀는데, 무슨 유격수를 또…’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니 기대가 된다. 벤치 클리어링 때 우리 선수들이 얻어터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따위였다.


하긴. 프기꾼조차도 별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허접한 어깨 때문에 2루수가 더 어울린다던 선수였다. 그냥 마이너리그에 흔하디 흔한 유틸리티 맨 정도였다.


그러나 듣보잡의 활약은 시즌 내내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의 공동 MVP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스테이지만을 남겨두고 있다. 겨우 50만 달러짜리 땜빵 외야수는 그 중에서도 맨 앞에 서 있다. 29년만의 월드시리즈 정상을 꿈꾸고 있는 팀에서 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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