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classic.told] 수원이 얻은 게 더 많은 것이 '팩트'다

정재은 입력 2017.10.2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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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정재은(서울월드컵경기장)]

라이벌 사이에서 나오는 '설전'은 언제나 흥미롭다. 잉글랜드에서는 조제 모리뉴와 아르센 벵거의 싸움이 경기의 열기를 확 끌어올렸다. 도르트문트 시절 위르겐 클롭은 "언제나 이기는 걸 보고 싶다면 바이에른 뮌헨을 응원하라"며 잔뜩 비꼬았다. 불난 라이벌전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국내 최고의 라이벌, FC서울과 수원삼성 사이에서도 그런 '설전'이 나왔다.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를 앞두고 있었다. 미디어데이에서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팩트는 3년 동안 수원이 (리그에서)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수원을 도발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할 말이 없었다. 대신 경기 당일인 21일, 그라운드에 입장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팩트는 경기 후에 말씀드리겠다.”

그렇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과 수원이 만났다. 하나은행 KEB K리그 클래식 2017 스플릿 2라운드였다.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다. 이날의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이용래가 골을 넣자 데얀이 동점골을 넣었고, 윤일록이 역전골을 넣자 조나탄이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결과는 2-2. 황선홍 감독의 ‘팩트 지론’은 맥을 이어갔다. 서 감독은 “아쉽게 비겼다. 순위 싸움과 AFC 챔피언스리그(ACL) 싸움에서 서울보다 좋은 위치로 갈 수 있다는 게 고무적”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번 슈퍼매치에서 수원이 얻은 게 더 많다는 게 그가 말하고 싶은 '팩트'였다.

# ACL 가능성: 수원>서울

서울은 상위 스플릿에 있다. 순위는 5위. 1위 전북현대와 승점이 10점 이상 차이가 나며 우승권에선 진즉 멀어졌다. 그들이 설정한 올 시즌 목표는 ACL이다. ACL 진출권은 리그 1위부터 3위까지 받을 수 있다. 승점 직접 경쟁자인 수원(4위)과 울산현대(3위)를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먼저 잡아야 할 팀은 수원이었다. 승점 2점 차였다. 그래서 슈퍼매치는 순위를 한 단계 높일 좋은 기회였다. 마침 팀 분위기도 좋았다. 11경기 무패행진을 달리며 승점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황 감독은 “서울은 마지막에 강한 팀”이라며 스플릿 라운드를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3점을 몽땅 가져와야 할 경기에서 승점 1점을 나눠줬다. 수원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황 감독은 “울산전 승리 못 하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한층 더 차가워진 현실을 마주했다. 조나탄은 “서울이 따라와야 하는 입장인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신세가 처량해졌다.

수원의 ACL 진출 가능성은 서울보다 크다. 울산과의 승점차는 1점. 얼마든지 순위를 올릴 수 있다. 정규 리그에서 부상 당하기 전까지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였던 조나탄도 돌아왔다. 스플릿 라운드에서 매 경기 골을 넣는 중이다. 무엇보다 FA컵까지 손에 쥐고 있다. FA컵 챔피언이 되면 ACL 티켓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수원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18일(수) 부산아이파크와 결승전 티켓을 놓고 겨룬다.

# 분위기: 수원>서울

경기 종료 후 두 팀 분위기는 반대였다. 수원은 서로 수고했다며 격려했고, 서울은 일제히 이동준 주심에게 달려가 판정 항의를 했다. 양한빈은 화를 참지 못해 골키퍼 장갑을 땅에 던졌다가 불 필요한 옐로 카드까지 받았다. 수원은 아쉽지만 승점 1점을 얻어 다행이었고, 서울은 다잡은 승리를 놓쳐 아쉬웠다.

선수들이 빠져나가는 공동취재구역 분위기는 그날 경기 사정을 말해준다. 홈팀의 공동취재구역에 취재진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수원을 만나기 위해 원정팀 공동취재구역에서 수원을 기다렸다. 동점 골의 주인공 조나탄, 수원에서 4년 만에 골 맛을 본 이용래, 막판 PK를 얻어낸 김은선 등이 각각 취재진을 상대했다. 모두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조나탄은 “(서울이) 파티를 열고 싶었을 텐데, 그걸 망쳐서 죄송하다, 하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조나탄은 인터뷰하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경기 소감을 묻자 “전반전에는 세컨드 볼도 많이 따냈고 팀이 찬스를 많이 만들어 내서 정말 너무 행복했다”고 답했고, 라보나킥을 복기하며 “갑자기 생각나서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페널티킥이 선언된 순간도 열심히 설명했다. “심판 선생님이 비디오판독(VAR)하러 갔을 때 내가 어떻게 찰지 생각했다. 수원에서 함께 뛰었던 (이)상호가 아마 양한빈 골키퍼에게 내가 어느 방향으로 찰지 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최근에 내가 두 차례 찬 PK를 떠올렸다. 모두 골키퍼 왼쪽으로 찼다. 그 반대로 차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제골을 넣은 이용래도 마찬가지. 부상, 경기력 저하 등 수원에서 겪은 아픔들을 뒤로한 채 골맛을 본 그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비난을 받고 질책을 받는 게 당연했다. 팬들한테 운동장에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 말했다. 골 넣은 상황을 떠올리며 “아, 또 눈물이 나려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 전략 싸움: 수원>서울

전략 싸움에서도 수원이 미세하게 앞선다. 서울이 2-1로 앞선 상황, 황선홍 감독이 김한길을 투입하더니 4분 후 임민혁까지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김한길은 올해 데뷔한 신인이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 뛰었다. 임민혁도 지난해 데뷔해 총 여섯 경기를 소화했다. 아직 경험이 무르익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사생결단의 경기에 투입된 것이다. 당연히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황선홍은 “감독의 미스”라며 교체 투입에 관해 설명했다. “후반전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미들에서 소유권을 잡고 싶어 미드필더를 투입했다.”

임민혁은 막판 실점의 빌미까지 만들었다. 서울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김은선을 수비하다 PK를 내줬다. 그에겐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황 가독은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실점을 허용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임민혁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엔, 슈퍼매치는 너무 중요한 경기였다.

수원도 교체 카드가 적중했던 것은 아니다. 대신 이용래가 있었다. 서 감독은 수원의 슈퍼매치 선발 라인업을 두고 고민했다. 서울의 중원이 탄탄하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경기 전부터 “중원 싸움”을 언급할 정도로 그는 서울의 미드필더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용래의 라인을 끌어올렸다. 공격형 미드필드 자리에 세웠다. 이용래가 설명했다. “원래는 밑에서 뛰었는데 일주일 동안 슈퍼매치를 준비하며 그 자리에 섰다. 서울이 미드필드에서 강하다길래.”

이용래의 포지션 변화가 완벽히 통했다. 전반전 초반 골대 좌측에서 두 차례 연이는 슈팅으로 양한빈을 괴롭혔다. 후반전 같은 루트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서 감독은 “미드필드뿐만 아니라 섀도우 역할도 할 수 있다”며 흡족해했다.

이제 수원은 나흘 후 열릴 FA컵을 준비한다. 슈퍼매치에서 얻은 성과, 분위기 등을 토대로 결승전 티켓에 도전한다. 나아가 아시아를 바라본다. 서울은 이르다. 아시아까지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일주일 후 치를 울산전에서 벼랑 끝 심정으로 뛰어야 한다. 이번에도 수원이 슈퍼매치에서 이기지 못했지만, 얻은 건 수원이 더 많은 게 이날의 ‘팩트’다.

사진=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