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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불문율과 오재원의 연속 도루, 그리고 김재호의 사구

조회수 2017. 10. 19. 09: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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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기울었다. 7회 13-7이었다. 그러고도 기회는 계속됐다. 1사 1, 3루였다. 다음 타자가 초구에 번트 동작을 취했다. 공은 몸쪽 높은 곳으로 날아들었다. 번트를 대려고 숙이는 타자의 가슴팍 부근을 강타했다. 피해자는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 배트를 내동댕이치며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마운드 쪽을 바라보며 뭔가를 소리치기도 했다.

그라운드에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벤치 클리어링은 아니더라도, 그 몇 발짝 앞까지는 갔다. 중계 방송하던 캐스터가 걱정스러워했다. “평소에 저러지 않는 선수인데요.” 곁에 있던 투수 출신 해설자도 한마디 거든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질 수 있어요. (고의성이 있는 지) 던지는 투수의 그립을 보면 답을 빨리 찾을 수 있어요. 변화구를 던지다 보면 손에서 빠질 수가 있거든요. (느린 화면을 보더니) 예, 싱커성 그립이네요(132㎞짜리였다).”

그 때였다. 홈 팀 덕아웃에서 누군가 달려 나왔다. 한 판 붙으려나?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기네 편을 말리고, 상대편 벤치를 향해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한다. 주장 오재원이었다.

김재호의 분이 풀리기도 전에 곧바로 박건우도 맞았다(136㎞ 싱커). 역시 인상은 조금 썼지만, 사태를 확대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들이 양 쪽 덕아웃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캐스터의 한마디가 걸린다. “아무래도 이제 스코어가 벌어져 있고, 그리고 앞서 오재원이 도루를 연속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5점차, 7회 말의 연속된 도루 시도

12-7, 5점 차이였다. 7회 말 홈 팀의 공격이다. 지고 있는 상대편에게는 이제 기회가 2번 밖에 없다. 따라가는 쪽에서는 멀게 느껴지고, 도망가는 사람은 여전히 안심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의 약간은 애매한 차이였다.

1사 후였다.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타자는 헛스윙으로 장단을 맞춰줬다. 마음이 급해진 포수는 공을 떨어트렸다. 그 바람에 서서 들어가도 충분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주자가 그것까지 볼 여유는 없었다. 전력을 다한 앞 슬라이딩에 벨트가 끊어졌다.

새 것을 허리에 차는 동안 숨이나 돌렸을까. 그 다음 공에 또다시 스타트를 끊는다. 3루에서 아슬아슬한 세이프. 불과 공 2개 던지는 사이에 베이스 2개를 뺐었다. 1사 1루가 1사 3루로 변했다. 그리고는 큼직한 2루타 때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13번째 득점이었다.

이 때의 훔치기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아니다.' '그게 빌미가 돼서 김재호와 박건우에게 연속 사구가 간 것이다/아니다.' '최금강이 사과를 했다/안했다.' 논쟁은 사건 관계자들의 캐릭터 탓에 확대된 측면도 없지 않다. 1차 피해자는 ‘김ㅋㅋ’ 아닌가. 웬만해서는 그런 표정 짓지 않는 순둥이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그렇게 화를 냈겠냐’는 동정론이 많았다.

물론 원인 제공자(?)인 도루의 주인공에 대한 평소 인상들도 여론에 반영됐다. 화이팅 강하고, 튀는 개성 탓에 자주 화제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다. ‘식빵’에서 ‘열사’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의 별칭을 소유한 성격파의 거장이다.

과연 그의 도루는 오버였을까. 그래서 상대를 자극하는 시도였을까.

수비도 충분히 도루에 대비하고 있었다

불문율의 관점에서 보자. 과연 7회 연이은 도루 2개는 문제 있는 행동이었나. 즉 리그에 소속된 선수들끼리의 규범이나 도의, 약속을 저버린 플레이였나를 따져보자.

이걸 점수 차이라는 기준에 맞추면 판단이 어려워진다. '7회 말 5점 차이'에 대한 견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객관적인 근거를 위해서는 수비 쪽을 살펴봐야 한다. 과연 도루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었냐, 아니냐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미 어렵게 됐다’고 생각한다면 경계를 늦춘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훔치기를 감행했다면 불문율에 저촉된다.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적어도 그들끼리는 말이다.

위 장면은 2루로 가기 직전이다. 보시다시피 1루수는 베이스에 딱 붙어 있다. 만약 (이미 승부에 큰 상관없으니) 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면 굳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즉 평소와 같은 A의 위치쯤에서 자리잡았을 것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최금강은 한껏 웅크린 세트 모션이다. 여차하면 견제구도 던질 태세다. 무엇보다 빠른 슬라이드 스텝으로 투구하겠다는 뜻이 보인다. 베이스 하나를 공짜로 주겠다는 선심은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2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유 있는 리드폭을 주지 않으려는 수비의 노력이 곳곳에 배어있다. 2루수가 가까이 붙어서 감시 중이다. 심지어 픽 오프를 위해 베이스로 들어가려는 페이크 동작까지 수시로 보였다. 그만큼 주자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수비가 완패를 인정하며, 준비 태세를 풀고 있는, 무저항 상태에서 자행한 비신사적인 플레이는 아니라는 반증이 충분하다.

전선 확대를 막은 현명한 노력들

한 달쯤 됐다. 더스틴 니퍼트가 2루로 뛴 박해민을 향해 삿대질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도 야구판이 시끌시끌했다.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던 팀에서 한 도루가 무슨 문제냐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해민과 삼성 쪽에서는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하면서 서둘러 일을 마무리지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팬들도 있었다.

당시 니퍼트의 주장은 이랬다. “이미 14-1로 큰 차이가 난 게임이었다. 그러자 삼성 쪽이 먼저 수비를 뒤로 뺐다(1루수가 베이스에 붙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팀 선수들은 당연히 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박해민이 출루했을 때, 우리도 수비를 뒤로 뺐다. 그럼 그도 2루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른바 불문율에 관한 논쟁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비록 내야 수비 포메이션은 주자를 타이트하게 묶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2루, 3루를 거푸 훔치는 게 영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짢고, 감정이 상할 지도 모를 일은 분명하다. 말했다시피 5점 차이에 대한 쌍방은 물론, 개인 각자의 인식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몸쪽으로 향한 공의 의도성에 대한 심증으로 삼기는 충분치 않다. 여기에 대한 진실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확대시키지 않고, 진정시키려 노력한 오재원과 김재호, 그리고 두산 측의 마인드 컨트롤은 현명한 것이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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