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전수은의 포커스in] '100% 이글스맨' 이정훈, "억척스러워야 좋은 신인 뽑는다"

전수은 기자 입력 2017.10.17. 14:49 수정 2017.10.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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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야구 유니폼을 벗고, 스카우트 팀장으로 변신한 한화 이글스 레전드 타자 이정훈(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 한화 이글스 '레전드' 이정훈은 현역 시절 '악바리'로 불렸다. 잔뜩 흙이 묶은 유니폼을 입고서 죽기살기로 승부에 임했기 때문이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노트북을 든 스카우트 팀장으로 변신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야구인들은 여전히 그를 '악바리 스카우트'로 부른다. 좋은 신인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까닭이다.
 
“우리 스카우트들, 한여름 무더운 날씨 속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2018 신인 드래프트’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구단 사장, 단장, 미디어 종사자, 야구계 인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지만, 이 남자는 '눈치 보기'는 고사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소신껏 10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이 남자는 바로 한화 이글스 레전드이자 ‘원조 악바리’ 이정훈이었다. 
 
이정훈 “이글스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
 
신인 드래프트에서 성공적인 선수 지명으로 타 구단을 놀라게 한 한화 스카우트팀(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지난해까지 한화 퓨처스팀을 도왔던 이정훈은 올해 한화 스카우트 팀장으로 변신했다. 성과는 컸다. 올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는 9개 구단으로부터 "한화 스카우트팀에 허를 찔렀다"는 놀라움과 함께 "알짜배기 선수들을 지명했다"는 호평을 동시에 들었다.
 
특히 한화가 2차 1라운드에 뽑은 좌완 투수 이승관과 내야수 정은원, 김민기 등은 다른 구단에서 내심 탐내던 유망주들이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한화가 정은원을 먼저 데려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꼭 뽑고 싶은 선수들을 한화가 앞 순번에서 지명해 헛물만 삼켰다”고 말했다. 
  
신인 드래프트를 무사히 끝낸 이정훈 팀장은 “정말 행운이 따랐다. 1번부터 10번까지 모두 우리가 뽑고자 했던 선수들을 뽑았다. 지금부턴 신인선수들이 쑥쑥 성장하도록 잘 가르치는 일만 남았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한화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정도의 만족감을 나타낸 건 오랜만의 일이다. 미래가 밝은 유망주들을 트레이드, FA(자유계약선수) 보상 선수 등으로 대거 내주며 한화 퓨처스팀은 몇 년간 엄혹한 시간을 보냈다. 가뜩이나 지난해는 현장 코칭스태프의 결정으로 애초 점찍었던 선수들 대신 다른 선수들을 지명하는 '대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 팀장이 스카우트 파트를 맡고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면 반드시 데려온단 원칙으로 '선수 영입 메뉴얼'을 재정비했다. 주변 스카우트들로부터 "왜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었지만, 이 팀장은 그런 핀잔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스카우트들이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들리면 좋은 신인선수 영입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팀의 미래는 스카우트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억척스럽다'니요? 세상에 억척스럽게 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일이 있습니까? 억척스럽다는 평가가 제겐 칭찬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 팀장의 말이다.  
 
신인 드래프트가 있기 한 달 전부터,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밤낮 없이 선수 분석에 매달린 한화 스카우트팀의 열정 때문이었다. 그 노력의 결실은 고스란히 신인 드래프트 결과로 이어졌다. 
 
“피가 무슨 색입니까? 빨간색이죠? 제 몸에 흐르는 피는 빨간색이 아니에요. 헛소리가 아닙니다. 전 몸에 주황색 피가 흐르는 '100% 이글스인'입니다. 한화는 제게 제2의 고향이자 제 가족이자 제 몸이에요. 이 한 몸 던져 한화가 강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어딨겠습니까.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24시간 잠도 안 잘 수 있어요.” 피로로 충혈된 이 팀장의 눈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정훈 한화 스카우트팀장 "난 100% 이글스맨. 내 몸엔 주황색 피가 흐른다"
 
서산 한화 퓨처스 감독 시절 이정훈(사진=엠스플뉴스)
 
한화 박종훈 단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정훈을 스카우트 팀장에 앉힌 것이었다. 박 단장은 이 팀장에게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스카우트까지 총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선지 한화 안팎에선 "박 단장의 재임 기간에 스카우트 팀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스카우트 업무에만 올인하지만, 이 팀장은 과거부터 한화 감독이 바뀔 때마다 '감독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던 이다. 실제로 이 팀장은 2015시즌을 앞두고, 유력한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김성근 전 감독의 등장으로 대권을 잡지 못한 기억이 있다.
 
한화 관계자는 “이 팀장은 확실히 범상치 않은 분이다. 천안 북일고와 한화 퓨처스 감독 등을 거치면서 육성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훌륭한 성과를 냈다. 여기다 풍부한 현장 경험까지 갖추고 있다”며 “원체 승부욕이 강한 분인 만큼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바로잡는 덴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팀장은 감독 자리엔 욕심이 없다. 정작 그가 욕심을 내는 건 '이글스의 강팀 도약'이다. 
 
“1군 감독이요? 시켜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잘할 자신이야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예요. 구단 비전인 ‘뉴챌린지(New Challenge)’을 실천하려면 육성이 정말 중요합니다. 1군 감독도 중요한 자리지만, 저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아직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한 젊은 선수들과 함께할 사람도 분명 필요합니다. 전 지금의 제 역할에 더 충실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2007년 이후 한화는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런데도 많은 팬이 해마다 시즌 전이면 한화의 비상을 꿈꾸는 건 이정훈 같은 이가 여전히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팀장은 "나보다 우리 스카우트들이 더 많이 고생한다. 그걸 꼭 강조해달라"고 거듭 부탁한 뒤 "지역 중학교 야구부 아이들을 보러 가야 한다"는 말로 서둘러 인터뷰를 끝냈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