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토리] '잠실'의 함정에 빠진, ERA 1위팀 LG트윈스

조회수 2017. 9. 28. 11: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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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전설의 명감독 코니 멕은 “피칭이 야구의 75%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MLB 통산  최다승(3731승) 감독이며 월드시리즈 5번 우승, 아메리칸리그 7번 우승, 필라델피아 50연승 기록을 남기며 1937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이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도 우리에겐 익숙하다.

올 시즌 KBO리그 최강의 투수력을 가진 팀은 ERA 4.30(1위) LG트윈스다.  하지만 팀 성적은 그렇지 못하다. 67승69패3무로 5할 승률을 밑돌고, 팀순위 7위로 5강 경쟁에서 밀려났다.

1982년부터 2016년까지 35년 동안, 역대 팀ERA 1위팀은 정규시즌 승률 1위가 18번으로 절반이 약간 넘는다. 다음으로 2위가 9번, 3위가 4번, 4위가 4번이다. 5위 이하의 순위는 한번도 없다. LG가 남은 시즌 전승의 기적을 연출한다 해도 ERA 1위팀의 최저순위 기록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물론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그 자체로 옳진 않다. 상대팀보다 득점이 많거나 실점이 적으면 이기는게 야구이고 따라서 득점과 실점이 승패에 차지하는 비중은 같다.

‘투수놀음’이던 시절도 있긴 있었다. 1983년 장명부는 427.1이닝 30승을 기록했다. 소속팀 삼미의 전체이닝 중 47%, 전체 승리 중 58%였다. 이듬해 84년,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40.0이닝을 던지며 4승1패(4완투)를 해냈다. 팀 이닝의 65%, 팀 승리 전부를 혼자 거뒀고 롯데를 그 해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2017년에 그런 야구는 없다. 해서 야구는 투수놀음인 만큼 타자놀음이다. 

ERA 1위 팀의 성적 만큼 타격이 강한 팀의 성적도 좋았다.  OPS 1위팀의 정규시즌 승률순위는 35년 동안 1위가 17번, 2위가 7번, 3위가 4번, 4위가 7번, 5위가 1번(96롯데)이다. ERA 1위팀의 역대 성적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ERA 1위팀이 받아든 7위라는 성적은 여전히 기괴하다. ERA 1위 팀 중 OPS 리그평균 이하였던 경우가 9번 있었다.

1위 - 83MBC, 11삼성(2번)
2위 - 87해태 (1번)
3위 - 89태평양, 14NC(2번)
4위 - 86OB, 95해태, 96현대, 06KIA (4번)

리그평균 이하의 타격이라도 투수력 1위인 팀은 최소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둬온게 KBO리그의 역사다. 그렇다면 2017년의 엘지트윈스는 뭐가 달랐던 것일까.

달라진 득점환경 - 스몰볼은 홈런을 이기지 못한다.

평균 이하 팀OPS로도 ERA1위, 팀승률 1위를 동시 달성했던 경우는 83MBC, 11삼성 두 팀이다.

83MBC의 OPS는 6개 팀 중 5위였다. 잠실을 홈으로 쓴 팀 답게 홈런은 삼성 90개(1위)의 딱 절반인 45개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팀 득점은 리그평균 4.02점보다 높은 4.12점이었다. 타격 이외의 다른 득점루트 덕분이다.  도루 128개로 해태 131개(1위)에 근소하게 뒤지고 롯데 76개(3위)에 압도적으로 앞선 2위였다.  도루성공률은 65.6%로 해태 59.0%보다 휠씬 높았다. 희생번트 70개, 희생플라이 30개로 합계 100개의 기록상 진루타로 리그 2위였고 병살타는 58개로 리그 최저였다.  약한 공격력을 다양한 득점루트와 '상황에 맞는' 타격으로 보완한 셈이다.

11삼성은 리그평균 이하의 OPS였지만 실제로는 거의 중위권 공격력의 팀이었다. 팀OPS .719가 리그평균 .727과 큰 차이가 아니었고 공격1위 롯데의 OPS .781과도 격차가 멀지 않았다. 역시 도루 158개로 8개팀 중 1위의 기동력을 발휘했고 특히 75.6%라는 경이적인 도루성공률을 달성했다. 결과적으로 실제 팀 득점은 리그평균 4.53점보다 높은 4.70점이었다.

평균 이하 OPS를 가지고도 ERA 1위, 팀승률 1위를 동시달성한 두 팀은 실은, 종합적 공격력에서 리그 평균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17LG도 83MBC나 11삼성처럼 도루, 진루타를 활용한 득점생산으로 약한 타격을 만회했다면 1위도 노릴 만 했을까.  그럴 수 없다.  득점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역대 평균 이하 타격을 가진 ERA 1위팀들이 겪은 9시즌의 경기 당 평균득점은 4.25점이다. 반면 올해의 경기당 득점은 그보다 1.07점 많은 5.32점이다.  그 9시즌 중에는 경기당 4.2점 이하의 시즌이 7번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극단적 투고시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루, 희생번트, 진루타로 짜낸 1-2점이 승패를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타가 지배하는 지금의 KBO리그에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투수력에서 만들지 못한 격차 

투수력이 팀 순위를 끌어올리려면 경쟁팀과의 '상대적 격차'가 필요하다.  같은 ERA 1위라도 경쟁팀 대비 우위가 얼만큼이냐가 관건이다. 

2017년 KBO리그 5강 도전권이었던 승률 0.490 이상 7팀을 비교했을 때, 팀실점 1위와 7위 사이 격차는 경기당 0.71점이고 팀득점 1위와 7위 격차는 1.43점이다. 7위 이내 팀끼리 공격력 격차가 투수/수비력 격차보다 2배 이상 컸다. LG가 투수력으로 만든 격차의 2배 만큼을 공격력에서 까먹었다는 뜻이 된다.

LG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15엘지는 ERA 2위로 승률 9위를 기록한 적 있다. 15LG의 경기당 득점은 리그 9위였다.  또 그해의 팀 순위는 ERA 2위팀이 기록한 KBO사상 최저 순위다.  이유는 같았다. 당시 팀 실점 1위와 10위 사이 격차는 1.02점, 팀 득점 1위와 10위 사이 격차는 1.78점이었다.  투수력 우위로 만든 경쟁팀 대비 격차로는 공격력 열세로 빼앗긴 격차를 메울 수 없었던 것이다.

'타고' 성향이 강해지면, 그걸 억누를 수 있는 투수력의 가치가 더 커질 것 같지만 지난 4시즌 중 3번은 공격력 격차가 투수/수비력 격차보다 더 컸다.  이런 환경이 되면 강한 투수력으로 만든 우위는 약한 공격력 때문에 생긴 열세를 상쇄시킬 수 없게 된다.  

LG가 쫓았던 유니콘, '잠실형 타자'

LG의 약한 공격력은 오랜 숙제였다.  전략은 있었다. 압도적으로 넓은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는 조건, 또 오랬동안 번번히 거포육성에 실패했던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타자육성의 새로운 관점이다.  

 2010년 이후 8시즌 동안 LG,두산 제외 원정팀 타자들의 100타수당 홈런은 잠실에서 2.0개, 비-잠실에서 3.1개다.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홈런을 노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잠실형 타자’란 펜스를 넘기는 거포를 지향하기보다 넓은 잠실의 외야로 라인드라이브타구를 날리며 많은 2루타를 생산하는 빠른 타자를 뜻한다.

그런데 이런 플랜이 성립하려면 잠실구장이 홈런에는 아니라도, 2루타에는 친화적인 환경이어야 한다.    잠실의 외야는 넓다.  그래서 홈런은 어렵지만 2루타를 많이 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잠실은 홈런친화적이지 않을 뿐더러 2루타 친화적이지도 않았다.

2010-2017년 (LG,두산 제외 8개팀 타자가 LG,두산을 상대한 경우, 100타수 당)

홈런 : 잠실 2.0개 / 비잠실 3.1개
2루타 : 잠실 4.4개 / 비잠실 5.4개

2010-2017년 (LG,두산 타자가 나머지 8개팀을 상대한 경우 , 100타수 당)

홈런 : 잠실 1.8개 / 비잠실 3.0개
2루타 : 잠실 4.7개 / 비잠실 5.0개

그렇다면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2루타 많이 치는 타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었을까.  물론 잠실구장이 2루타 친화적이지 않다고 2루타를 노리지 말아야 힐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홈런도 다를게 없지 않나.  

올해 350타석+ 타자 중 잠실에서 타수 당 2루타가 가장 많은 5명의 타자는 최형우, 박건우, 김태균, 김하성, 모창민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잠실형타자’일까.  이들은 '그냥 잘치는 타자' 처럼 보인다. 혹시 '그냥 잘치는 타자'와 구별되는 '잠실형 타자' 같은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잠실효과의 딜레마 

구장의 특성은 분명히 타자의 성적에도,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엘지트윈스는 누구보다 그것을 뼈아프게 경험한 팀이다. 하지만 홈런을 많이 못치지만 2루타를 많이 칠 수 있는 타자란 과연 존재할까. 

‘잠실형 타자’라는 아이디어에는 또다른 함정도 숨어있다.  LG가 ‘상상했던’ 잠실형 타자 육성에 정말 성공했다 해도 그것이 팀에 이롭지 못할 수 있다는 역설 때문이다. 

하나는 간단하다.  홈런 의존도가 낮아서, 잠실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타자가 있더라도, 그런 타자로 구성한 타선이 상위권을 노릴만한 수준이냐는 것이다.  아마 아니다.  잠실에 적합할 뿐 승리에 적합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좀 더 복잡한데, KBO리그의 독특한 구장 특성 분포 때문에 생긴다.  9개 구장이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잠실과 나머지 8개 구장 사이에만 확연한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LG,두산 외 8개팀은 자신의 홈구장에 최적화된 타선을 만들 경우 144경기 중 잠실경기 제외 128경기에서 팀 타선과 궁합이 좋은 구장을 쓰게 된다.  하지만 잠실팀이 홈구장에 최적화된 타선을 만들면 80경기를 이상적 조건의 구장에서 치르지만 64경기는 궁합이 나쁜 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KBO리그 실제 타자 중 잠실 친화적인 타자들과 그 반대 성향이 타자들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같은 전력이라도 144경기 동안 5승+ 의 차이가 나타난다. 

‘잠실형타자’의 롤모델은 암묵적으로 두산베어스의 타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두산의 타자들은 ‘잠실형’일까. 잠실형 타자의 이미지가 ‘홈런 대신 2루타로 생산성을 만드는’ 이라면, 16시즌 팀 홈런 1위, 17시즌 팀 홈런 2위팀이 ‘잠실형’일 리는 없다.

물론 잠실에 적합한 타자는 있다.  정확히 정의한다면, 잠실이라도 평소 성적을 유지하며 충분히 높은 득점생산성을 가진 타자다.  김현수, 박용택, 손아섭이 그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타자를 키워내는게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1년에 20홈런+ 를 치는 타자를 키우는 것보다 쉽다고 할 수 있을까.

리그최강의 투수력을 구축하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다. LG트윈스는 그걸 해냈다. 하지만 받아든 성적표는 가을야구와 멀어진 7위다. 이유가 뭘까.   같은 환경의 이웃 팀이 ‘그냥 잘치는 타자’를 키워내는 동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을 쫒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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