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류현진 부상에 반응 속도 1위는..

조회수 2017. 9. 25.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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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모습을 로버츠 감독이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mlb.tv 화면

1-1 동점이던 4회였다. 크리스 테일러가 친 타구는 유격수 땅볼이었다. 순간 2루 주자의 어이 없는 주루 플레이가 나왔다. 무모한 3루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누가 봐도 아웃 타이밍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유격수 송구가 빗나가면서 주자는 세이프 됐다(야수 선택).

공격 쪽은 횡재였다. 1사 1루가 될뻔한 상황이 무사 1, 3루로 뒤바뀐 것이다. 세상에 없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벤치가 사색이 됐다. 우르르, 사람들이 달려나온다. 트레이너부터 감독, 코치까지 3루로 모여든다. 그리고는 주자의 안위를 조심스레 살핀다. ‘어디 이상한 데 없어?’ ‘정말, 괜찮아?’ ‘뭐하러 그렇게 무리했어?’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웃으며 “암 오케이(I’m OK)”를 연발하는 3루 주자를 보니 그럴만도 했다. 바로 클레이튼 커쇼였다.

생각해 보시라. 부상에서 복귀한 지 겨우 2번째 경기였다(9월 13일 샌프란시스코전). 슬라이딩 하다가 아픈 허리가 삐끗이라도 하면…. 29년만의 우승? 언감생심이다. 그걸로 팀의 운명도 끝이다.

게다가 앞 슬라이딩이었다. 태그 피한다고 빙그르~ 돌아 왼손으로 베이스를 찍었다. 혹시 어느 손가락 하나라도 시큰거리면, 무릎에 타박상이라도 생기면….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전력질주로 달려나올 법하다.

커쇼가 슬라이딩 하는 장면. 달려나간 로버츠 감독과 트레이너가 이상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mlb.tv 화면

다음 타자 코리 시거는 중견수 쪽 깊숙한 플라이를 쳤다. 이번에는 3루 주자가 안심하고 들어올만한 거리였다. 1-1의 균형이 깨졌다. 다저스의 11연패가 끝나는 결승 득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커쇼 6이닝 2실점 승리투수.) 


숙취가 걱정되는 날의 선발 등판

하필이면 숙취가 걱정되는 날이었다. 극과 극에서 오락가락 하던 끝에 어렵사리 우승이 확정됐다. 파티는 밤 늦도록 이어졌다. 클럽하우스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샴페인에, 맥주에, 온 몸이 흥건해지도록 퍼붓는다. 어디 겉으로만 뿜었겠나. 가끔은 저장 위치가 ‘내 문서(뱃속)’가 되기도 한다. 큰 일이다. ‘저렇게 마시고 노는데, 내일은 잘들 치려나….’

라인업도 성에 차지 않는다. 아무리 회식 다음 날이라도 그렇지, 주전들이 왕창 빠졌다. 저스틴 터너, 코디 벨린저, 야스마니 그랜달, 체이스 어틀리 등등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J.T. 파머(1루수) 찰리 컬버슨(2루수) 같은 신출내기들이 기회를 잡았다. 아니 어쩌려고. 이것도 혹시 멕이는 건가? 저쪽은 매드범(매디슨 범가너)이 나온다는데.

2구째 커브(73마일)였다. 바깥쪽으로 잘 떨어졌다. 그런데 타자도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냈다. 배트에 걸린 타구는 94마일의 맹렬한 속도로 날아갔다. 투수 쪽이었다. ‘짝-.’ 어딘 가를 때리는 강렬한 파열음이 울렸다.

공은 멀리 가지 못했다. 투수 몇 걸음 앞에 떨어졌다. 재빨리 잡아서 우아한 턴, 그리고 1루수 가슴에 안겨주는 정확한 딜리버리가 이뤄졌다. 역시 투격수(뚱격수)였다. 매끄러운 아웃 1개가 완성됐다. 하지만 다음 순간이었다. 류격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맞은 부위는 왼쪽 팔뚝이었다. 심각한 고통이 밀려왔다. 더 이상은 무리다. 던지는 팔 아닌가. 퀵 후크가 어쩔 수 없다.

“야구 하면서 팔에 맞은 것은 처음이라서 긴장했다. (X레이 촬영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금방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터 봐야 할 것 같다. 일단 공을 괜찮게 던지느냐가 중요하다. 여기 통증이 얼마나 빠르게 치료 되느냐가 문제다.” 경기 후 미디어들에게 밝힌 얘기다. 


5회 2아웃에 공을 뺏긴 섭섭함 

아웃 카운트 겨우 1개가 남았다. 선발이라면 최소한 5회는 채워야 한다. 그래야 체면이 서는 것 아닌가. 그러나 매몰차다. 그리고 냉정하다. 아직 1점도 안줬는데, 교체라니. 5회 2사 후, 볼넷 2개를 주자 감독이 올라왔다. 더 던지겠다고 버텨봤지만, 공을 뺏겼다. 승리도 날아갔다.

이를두고 네티즌들이 분연히 일어섰다. 악행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가뜩이나 찬밥 대우 탓에 그동안 쌓인 분이 한 두개가 아닌 터. 출생과 가족력, 피부색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홍수를 이뤘다.

당사자는 며칠 뒤 어느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는 일기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로버츠 감독이 공을 뺏으러 나오신다면 그냥 도망칠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짜증과 투정이 왜 없겠나. 얼마전 <다음스포츠-조미예의 MLB현장>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조미예) “정말 도망갈 건가?” (류현진) “도망가야지. 공들고 센터로 뛰어가야지…(웃음)”.

하지만 턱도 없는 소리다. 로버츠가 누군가. 리그에서 손꼽히던 달리기 선수 아닌가. 30도루 이상만 6시즌이다. 보스톤 레드삭스 시절에는 밤비노의 저주를 푸는 역사적인 ‘더 스틸(The Steal)’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나이 차이를 감안해도) 공 들고 도망가면 몇 걸음 못가서 잡힐 게 뻔하다.



부상 순간에 대한 비디오 판독

다시 어제(한국시간 24일) 그 장면으로 돌아가자.

1루 송구, 아웃을 확인한 뒤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왼쪽 팔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들고 있던 글러브마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떨굴 정도였다. 그만큼 심각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사태가 간단치 않아보였다. 당연히 그라운드에는 놀람과 걱정 탓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홈 팀 벤치는 즉각 반응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우리 편 선수가 게임 중에 다쳤으니. 하지만 한가지 <…구라다>의 관찰력을 자극한 부분이 있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속도’였다.


놀랍게도 덕아웃에서 가장 먼저 뛰쳐나온 것은 45세나 된 벤치의 책임자였다. 역시 과거의 대도다웠다. 순발력이나 속도에서 단연 발군이었다. 뭐, 심판들만 하라는 법 있나. 우리도 할 수 있다. 이 장면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들어가보자.

라이언 일병을 향해 가장 먼저 첫 발을 뗀 것은 로버츠였다(외야수 출신답게). 99번의 등판 때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젊은 통역 이종민 씨도 따라가지 못할 스피드였다. 무엇보다 업무 담당자도 감히 어쩔 수 없었다. 수석 트레이너 닐 램피도 부랴부랴 뒤를 따라야했다. 램피는 결국 감독과 통역 사이를 밀치고 나가면서 현장에 도착했다.

3등으로 나타난 트레이너가 감독과 통역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mlb.tv 화면

물론 그렇다. 감독이 맨 앞에 달려나온 게 뭐 그리 대단하겠나. 놀라고, 안쓰러워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그걸로 애정이나 가치의 척도를 삼자는 건 지나치게 궁색한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 동안 느꼈던 홀대와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비하도 우아할 것 없다. 편견과 차별의 대상인 것처럼 비약할 필요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타박상은 심각하지 않은 수준으로 전해졌다. 본인도 빠른 시간 안에 복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렇다면 가을 고전의 배역에 대한 캐스팅은 여전히 유효한 일이다.

푸이그가 서서 들어가다가 아웃되는 장면. 덕아웃과 관중석의 팬들까지 머리를 부여잡고 말았다.      mlb tv 화면

어제 경기는 야시엘 푸이그의 2루 도루 실패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결정됐다. 슬라이딩도 하지 않은 채 서서 들어가다가 태그 아웃되는 이해할 수 없는 동작 탓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난했다. “우리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그런 팀에서 그런 플레이는 있을 수 없다.”

이튿날 푸이그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도루 시도 때 발목을 다친듯 부여잡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단치 않은 부상으로 알려졌다. 다만 로버츠 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믿을 수 있고, 이길 기회를 주는 선수들만 라인업에 올라갈 것이다.”

모든 부상이 팬들과 팀의 염려 대상은 아닐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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