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앞만 보고 달린 최강희 감독 폭탄발언, 그 배경은?

김진회 입력 2017.09.22. 05:59 수정 2017.09.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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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상주전이 끝난 직후 전주월드컵 기자회견장. 최강희 전북 감독(58)의 폭탄 발언에 취재진은 술렁였다.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날 200승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분명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올 시즌 나의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팀이 안정이 되고 윤곽이 나오면 (거취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했다." 평소 대화에서도 농담을 즐기는 최 감독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최 감독은 2016년 전북과 5년간 재계약 했다. 2020년까지 전북을 이끈다. 계약기간이 3년이나 더 남았다. 게다가 전북은 명실상부한 1강이다. 지난해 ACL 우승에 올시즌도 리그 1위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구단 역시 감독을 경질할 명분이 없다. 그럴 마음도 없다. 최 감독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승권 전북 단장과 내년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준비를 위한 선수 구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랬던 최 감독이 느닷없이 거취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구단도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최감독의 깜짝 발언. 그 안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우선 개인적 고충이다. 지칠 대로 지쳤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1998년 수원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지난 20년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특히 지난 8년간은 K리그와 ACL을 병행하면서 쉴 새 없는 살인 일정을 소화했다. 술과 운동만으로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몸도 많이 상했다. 최 감독은 "검사도 받아봐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침침하다.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리적, 정신적 피로감을 극복할 동기부여도 문제다. 선수와 마찬가지로 지도자도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힘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최 감독은 아시아 지도자가 해낼 수 있는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2005년 여름 부임하자마자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ACL 두 차례 우승(2006년, 2016년), K리그 4차례 우승(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을 이뤄냈다. 더불어 김정남 감독과 김 호 감독, 두 명만 보유하고 있는 K리그 통산 200승 기록에도 1승만 남겨뒀다. 최단기간, 그것도 단일팀에서의 200승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지난 시즌 ACL 정상에 서면서 최 감독의 가슴을 뛰게 할 새로운 동기부여 대상은 아직 없다. 마지막으로 최 감독이 바라는 것은 K리그 우승반지 5개다.

경기력적인 흥미도 반감됐다. 2013년부터 'K리그 절대 1강'으로 올라서면서 전북은 경기장 안팎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만나는 상대 팀들이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맞서면서 항상 최 감독은 늘 밀집수비를 뚫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의 희열보다는 한국 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도자로서의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여기에 빅 클럽이란 이유로 집중되는 외부의 차별적 시선과 부정적인 요인들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것도 이제는 힘에 부치다.

또 하나, 운명을 달리한 차종복 전 전북 스카우트에 대한 마음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차 전 스카우트가 심판 매수 사건으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할 때 금전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더 따뜻한 말을 해주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품고 있다.

최 감독은 조만간 자신의 거취에 대해 입을 열겠다고 했다. 분명 최 감독은 자신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거나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등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넓다. 다만 아쉬운 건 최 감독이 모두가 예상하는 그 결심을 공표하게 되면 K리그는 최고의 지도자 한 명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강 전북의 사령탑이자 '봉동이장'이 뿜어대는 매력만점의 살아있는 컨텐츠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축구팬들의 관심을 찾아 헤메는 K리그로서는 늘 스토리텔링에 목 말라 있다. 최 감독은 스타선수 못지 않은 관심을 불러 모으는 K리그의 스토리텔러다. 리그 발전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 중 그의 퇴장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27년간 맨유를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처럼 '한국판 퍼거슨'으로 남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최 감독. 그가 모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물러날 고민을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최강희 감독의 마음이겠지만 분명한 점은 그의 마음이 돌아서길 바라는 여론이 절대 다수라는 사실이다.

전주=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