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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8실점, 누가 감히 이동현에게 돌을 던지랴

조회수 2017. 9. 20. 10: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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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눈에 밟히는 장면이 있다.

열흘 전이다. 그러니까 9월 9일이었다. 잠실이 뜨거웠다. 오래된 라이벌 간의 대결 탓이다. 양 팀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막판 순위 싸움에 쫓고-쫓기는, 물고-물리는 사슬 속이었다. 당연히 서로가 절대 놓칠 수 게임이었다.

특히나 줄무늬 팀이 절박했다. ‘오늘 지면 나락이 코 앞이다.’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 게임, 한 게임이 단두대 매치 같은 날들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에이스나 다름 없는 선발을 내세웠다. 장원준이었다.

3-3 동점이던 6회였다. 뜻밖의 곳에서 한 방이 터졌다. 8번 타순의 유강남이었다. 장원준의 105번째 공, 132㎞짜리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향하자 용서없는 스윙이 번쩍였다. 왼쪽 담장 너머 관중석 한 가운데까지 날아가는 대형 아치가 그려졌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노심초사. 4-3 한 점을 지키기 위한 지극 정성은 9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아웃카운트 3개가 남았다.

추격팀의 첫 타자 허경민의 타구가 유격수 쪽으로 굴렀다. 조금 강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런데, 아뿔사. 오지환이다. 경기를 지배하려는 본능이 발휘됐다. 글러브 아래로 공을 빠트린 것이다. 어이 없는 실책이었다. 게임의 흐름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당사자의 웃음이었다. 고개를 조아리고, 세상 모든 죄를 다 짊어진 표정이어도 용서가 될까말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환한 얼굴이라니….

실책한 오지환을 달래주던 이동현의 모습.                       SkySports 중계화면

이유가 있었다. 마운드의 투수 때문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유격수를 향해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글러브 낀 손으로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 그런 얘기였을 것이다. “괜찮아.” “기 죽지마.” “걱정마. 내가 다 막아줄게.”

그런 다독임 덕분일 것이다. 어색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웃음을 지킬 수 있었다. 땅으로 한 없이 가라앉을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안쓰러운 애씀이었다.

그 덕분일까. 트윈스 내야진은 곧바로 기막힌 트릭 플레이를 성공시켰다. 피치 아웃으로 주자를 잡아낸 것이다. 런다운에 걸린 허경민을 마지막에 쫓아가 태그 아웃시킨 것은 실책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기죽지 말라”던 투수는 나머지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아내며 무사히 승리를 지켰다.

텅 빈 불펜, 혼자 남은 책임감

7회까지는 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예고편에 불과했다. 진짜는 8회부터였다. 엄청난 천둥과 벼락, 그리고 격랑이 춤을 췄다. 공격이 바뀔 때마다 승부의 추는 달라졌다.

8회 초. 1-3으로 뒤지던 꼴찌의 반란이 시작됐다. 5점을 쏟아부으며 일거에 승패를 뒤집어버렸다. 와중에 53분이나 우천 중단이 있었다. 홈 팀에게는 너무나 길고 지겨운 이닝이었다.

그래도 가을에 대한 집념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함은 곧이은 말 공격에서 기적적인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형종의 3점포가 터지면서 재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수원에서 배달된 특제 캡사이신의 맵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9회 초, 빅뱅이 폭발했다. 출연한 타자만 12명이었다. 쳤다하면 총알같은 라인드라이브였다. 마치 프리 배팅하듯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홈런 1개를 포함해 7안타를 터트렸다. 실책 1개가 결정적인 촉매제로 작용했다. 무려 9점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상대는 그대로 넉아웃됐다.

고스란히 폭격의 대상이 된 것은 오직 한 명이었다. 1점을 지키기 위해서 올라온 34살짜리 노장이었다. 9회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쓸만한 투수들은 모두 소모된 상태였다. 진해수, 신정락, 정찬헌, 김지용이 마운드를 다녀갔다. 남은 것은 오로지 18번 혼자였다.

불펜은 텅 비었다. 부담은 오로지 혼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오는 족족 난타 당했다. 실책에 대한 내성도 이전 같지 않았다. 와르르 무너지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고 말았을 뿐이다. 9타자를 맞아 8점을 잃었다. 로하스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나서야 공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세번의 수술, 팔꿈치를 바치다

워싱턴 DC가 발칵 뒤집혔다. 행성 최강의 투수가 만루 홈런을 맞아서다. 친 타자(애런 올테어)도 깜짝 놀랐다. “좋은 공을 치게 해주신 신께 감사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하긴 옳은 말이다. 그게 어찌 인간계에서 가능한 일이겠는가. 통산 290경기만에 처음 나온 신기한 기록이었다.

물론 짐 파머 같은 투수도 있다. 서비스 타임 20년 동안 4천 이닝 가까이(3,948) 던지면서 한번도 그랜드 슬램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

반면 아닐 것 같은데, 뜻밖에 그런 투수도 있다. 바로 이동현이다. 2001년 입단 이후 공백기 빼면 12시즌째다. 그동안 600게임(866이닝) 넘게 등판하면서 만루홈런의 경험은 한번도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올해 2번이나 맞았다. 첫번째가 8월 31일 넥센전이었다. 9회 고종욱에게 당했다(3-5 역전패). 그것 때문에 스스로 표현대로 ‘죽일 놈’이 됐다. 그러다가 간신히 체면을 되찾은 게 앞서 얘기한 두산전이었다(9월 9일). 8회부터 등판해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아웃 카운트를 5개나 잡았다. 물론 오지환의 실책도 덮어주는 호투였다.

하지만 명예 회복은 오래가기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할 지 모른다. 팀의 형편이 형편 아닌가. 벼랑 끝에 몰린 채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천길 낭떨어지다.

바로 어제(19일) 같은 날이 그렇다. 평생 안맞던 만루홈런을 몇 주 사이에 2번이나 허용했다. 게다가 그 중요한 게임의 온갖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혼자 모두 뒤집어 써야 했다. 블론 세이브에 패전 투수까지.

숫자로만 보면 그렇다. 불과 0.1이닝 동안 8실점이나 했다. ‘배팅볼’ ‘동네 야구’ 운운하는 비아냥이 댓글창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다. 적어도 <…구라다>는 그렇게 믿는다. 과연 누가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나. 그의 팔꿈치, 가슴 아픈 칼자국을 보면서 말이다.

그의 팀은 무려 10년간의 암흑기를 겪었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유광 점퍼를 꺼낼 수 있었다. 그 때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은 여전히 팬들이 가슴 속에 울림으로 남았다.

“세 번의 수술을 하고도 LG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마다 내 팔꿈치는 LG에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중략) 포스트시즌에만 나갈 수 있다면 나는 다시 팔꿈치가 끊어지더라도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플러스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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