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아~ 가을축구 몰라요~"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어라
맛깔나는 야구 해설로 유명했던 故 하일성 씨는 자신이 중계하는 경기가 뒤집어질 때면 "아~야구 몰라요~"라는 말로 야구의 극적인 반전을 표현했다. 축구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감탄이다. 골을 만드는 과정이 워낙 어렵다 보니 야구처럼 극적인 반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K리그를 보고 있자면 이 말이 딱이다. "아~ 가을축구 몰라요~" 휘슬이 울릴 때까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끝장승부가 매 경기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번주 가장 뜨거웠던 경기는 추가시간에만 3골이 터진 상주상무와 광주FC의 경기였다. 90분이 흐를 때까지도 뒤에 이런 반전이 있을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던 상무상주의 짜릿한 반전 드라마
1-1 무승부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는 추가시간에만 3골이 더 터졌다. 후반 46분 상주 주민규의 득점으로 다시 불이 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 조주영이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상주의 포기하지 않은 뒷심은 끝내 휘슬이 울리기 전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그저 그렇게 끝날줄 알았던 경기가 선수들의 투지로 3-2 펠레 스코어로 뒤바뀐 것이다.
<9월17일, 상주상무vs광주FC 골모음 영상>
#'정신력 깡패' 강원FC, 먹어도 먹어도 흔들림 없는 나무
최근 3경기 연속 3골을 기록중인 강원FC는 그야말로 '정신력 깡패'다. 3골이라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지난 8월19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강원은 시작과 동시에 선제골을 터트리며 가벼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반 41분 수원 산토스에게 동점골을 내주었고, 후반 어렵게 추가골에 성공했지만 또 다시 수원에 골을 내주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시작은 좋았으나 오히려 더 맥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나 강원에 포진된 베테랑 선수들의 정신력은 강했다. 후반 막판 끝내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승리를 만든 것이다. '얻었다'기 보다 '만들어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노력으로 일궈낸 승리였다.
다음 라운드 전북과의 경기도 비슷했다. 전반 시작과 함께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이내 4골을 내리 내주며 강호 전북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이승기의 해트트릭도 모자라 전반 45분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간 상태에서 들어간 에두의 골까지 비디오 판독결과 골로 인정되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1-4로 바뀌었다.
전반에만 4골을 내주었으니 속된 말로 '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경기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45분이라는 기회가 남아있었다. 후반 강원FC는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두 골을 만회했고, 스코어는 1-4에서 3-4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동점까지도 가능해보였다. 끝내 경기는 4-3 전북의 승리로 끝났지만 정신력 만큼은 강원의 승리가 확실했다.
전북은 이날 4골을 기록했지만 팬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고, 전북 서포터스는 승리시 선수단과 함께 하는 '오오렐레'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후반전 경기력에 실망한 것이다. 반면 강원은 원정팬들로부터 졌지만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번 주말(16일) 전남과의 경기에서도 강원은 '정신력 깡패'의 위력을 선보였다. 0-2로 끌려가던 경기를 후반전 3-2까지 가져간 것이다. 후박 막판 동점골을 허용하며 3-3 무승부가 되긴 했지만 이번 경기 역시 팬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승부를 떠나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뛴 그들 자체가 감동이었다.
<후반38분, 이근호의 투지 넘치는 역전골>
#노력이 만든 기적, 후반 43분 펼쳐진 인천의 '시우타임'
17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펼쳐진 K리그 29라운드 경기에서도 드라마 같은 반전이 있었다. 0-0으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던 양 팀은 각각 박주영과 송시우를 투입시키며 승부수를 띄웠다.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 공격수 박주영과 프로 2년차 신인 공격수 송시우의 대결. 데이터는 박주영에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인천축구전용구장의 후반전 세리머니는 '시우타임'의 주인공 송시우에게 더 어울렸다.
<후반 42분 결승골을 터트린 송시우>
#챌린지에서도 "아~ 축구 몰라요"
예상했던 결과가 뒤집히는 상황은 K리그 챌린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16일) 성남FC와 서울이랜드의 경기 역시 후반전에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성남은 경기시작 3분 만에 선제골을 터트렸고, 전반 43분 추가골까지 만들어내며 승리에 쐐기를 박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전 서울이랜드는 끝없는 반격으로 2골을 모두 만회하는데 성공했다. 끝내 경기는 2-2 무승부로 마무리 됐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최치원의 멀티골>
서울이랜드는 동점에 그쳤지만 결국은 역전 승리를 일궈낸 팀도 있다. 챌린지 꼴찌 대전이다. 16일 경남과의 경기에서 대전은 이랜드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전반전 경남에 선제골을 내준 것도 모자라 장원석의 퇴장으로 후반전을 10명으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명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았던 그림을 대전은 두 번이나 만들어내며 끝끝내 2-1 승리에 성공했다.
<후반 44분, 짜릿한 역전골 성공시키는 대전시티즌>
한 축구해설자는 흥미진진한 경기양상에 "마치 단일 대회 결승전을 보는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 경기 결승전처럼 온힘을 다해 뛰어주니 보는 입장에서 고마울 따름이다. 이럴 것 같은 경기가 이렇게 끝나고, 저렇게 끝날 것 같았던 경기가 저렇게 끝나는 것처럼 따분한 것도 없다. 그런데 모두가 악을 쓰고 달려드니 골이 많이 터지는 것은 물론 드라마 같은 반전까지 깜짝 선물로 등장하고 있다.
상·하위 스플릿 라운드가 코앞으로 다가온데다 선선한 날씨까지 거들어주니 젖먹던 힘을 짜내서라도 물 건너간 승리를 되찾아오는 것이다. 이제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뉘어지기까지 딱 5경기가 남았다. 상위권 팀은 반갑지 않은 응원이겠지만 남은 라운드 하위권 팀의 대반전을 기대한다. 이번 라운드에서 직접 확인했듯 '가을축구', 정말 아무도 모른다.
희망을 잃은 이에게 '할 수 있다' '하면된다'는 진부한 구호대신 이들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추천한다. 후반 45분에도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면 정말로 할 수 있다.
글= 구윤경(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사진=구윤경, 한국프로축구연맹, 강원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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