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박찬준의 발롱도르]'하얀' 손흥민과 '빨간' 손흥민은 어떻게 다른가

박찬준 입력 2017.09.14. 10:26 수정 2017.09.14. 13:24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AFPBBNews = News1
불과 일주일여 밖에 되지 않았다.

'빨간색' 유니폼(대표팀)을 입은 손흥민은 시종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호쾌한 드리블 돌파와 특유의 파워풀한 슈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리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후유증이 남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았다. 손흥민의 침묵 속에도 대표팀은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지만, 이란-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한골도 넣지 못했다.

'하얀색' 유니폼(토트넘)으로 갈아입은 손흥민은 우리가 아는 그 모습 그대였다. 손흥민은 14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와의 2017~2018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전반 4분 선제골을 기록했다. 시즌 1호골이었다. 골 뿐만이 아니었다. 손흥민은 시종 날카로운 모습으로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빨간' 손흥민과 '하얀' 손흥민. 등번호 7번에, 왼쪽 공격수라는 포지션까지 같다. 하지만 둘은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다르다. 같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플레이를 펼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는 신태용 감독에게, 본선에서의 선전을 갈망하는 축구팬들에게 '손흥민 팩터'는 무시할 수 없다. 대표팀만 오면 작아지는 '손흥민 딜레마'. 월드컵까지 남은 9개월 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대표팀' 손흥민과 '토트넘' 손흥민의 가장 큰 차이는 '스프린트(전력질주)' 여부에 있다. 도르트문트전 첫 골 장면을 보자. 왼쪽 측면에 자리한 손흥민은 해리 케인이 볼을 잡자 쏜살같이 뒷 공간을 파고 들었다. 지체없이 패스가 연결됐고, 손흥민은 과감한 돌파에 이은 폭발적인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후반 5분, 케인이 오른쪽을 돌파하는 상황에서 손흥민은 중앙으로 침투해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슈팅이 빗나갔지만, 골과 다름없는 장면이었다. 후반 15분 역시 케인의 스루패스를 받아 상대 배후를 공략했다.

연급한 세 장면의 공통점은 손흥민이 공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는 점이다. 반면, A대표팀에서는 이런 상황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정적인 상태에서 볼을 받았다. 어쩌다 속도가 붙더라도 뒷공간이 아닌 2중, 3중으로 된 상대의 수비진과 맞서야 했다. 알려진대로 손흥민의 장점은 스피드와 슈팅이다. 속도가 붙은 손흥민은 유럽 톱클래스의 공격수다. 공간까지 주어진다면 그 어떤 수비수도 막기 어렵다. 폭발적인 스피드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인데 슈팅까지 좋다. 오른발, 왼발 가리지 않고 때리는 손흥민의 슈팅은 정확도와 파워를 겸비했다. 하지만 공간이 좁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손흥민은 터치가 좋은 선수는 아니다. 돌파력은 좋지만 드리블이 뛰어나지는 않다. 스피드가 붙으면 속도로 상대를 제칠 수 있지만, 볼이 멈춰져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의 압박을 이겨낼만큼 발기술이 좋지는 않다.

결국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어'를 올려줘야 한다. 본인 스스로 플레이에 '템포'를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손흥민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득점 기회가 많이 생긴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오히려 스스로 템포를 죽였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태킹 서드(경기장을 3등분한 영역 중 상대 골문이 포함된 부분)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는 미들 서드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볼을 잡아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팀이 다르니 단순 비교는 어렵다. 토트넘에서는 케인을 비롯해, 이날 도르트문트전에서는 징계로 뛰지 않았지만 델레 알리 등 상대가 신경써야 하는 특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손흥민이 상대 견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뒤에서도 공간만 생기면 빠르고, 정확하게 찔러줄 수 있는 크리스티안 에릭센, 무사 뎀벨레, 에릭 다이어 등과 같은 미드필더들이 있다. 분명 토트넘에서는 손흥민이 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전술적으로 '빨간' 손흥민을 '하얀' 손흥민으로 바꿀 길은 분명히 있다. 일단 이날 도르트문트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의 손흥민 사용법은 주목할만 하다. 손흥민은 왼쪽에 있었지만 사실상 투톱에 가깝게 움직였다. 케인이 움직이면 그 공간을 손흥민이 차지했다. 포워드라고 해도 무방했다. 반면 A대표팀에서는 손흥민을 미드필더에 가깝게 활용한다. 차라리 위로 끌어올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손흥민 활용을 극대화 하기 위한 세밀한 접근법이다. 토트넘은 손흥민을 활용했지만, A대표팀은 손흥민만 바라봤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뽑아내려는 것보다 한가지를 확실하게 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