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한준희 칼럼]응원하고 싶은 대표팀이 돼야 한다

최용재 입력 2017.09.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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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최용재]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라는 '간판'이나 '지위'만으로 국민들의 무조건적 성원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시대다. 국민들이 국가대표팀을 성원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 국민들로 하여금 응원하고 싶게끔 하는 매력을 제시해야 하는 의무가 바로 대표팀에 있다.

이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및 선수단 모두가 정확히 인식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란전, 우즈베키스탄전을 통해 우리 대표 선수들은 적잖은 고생을 했다. 근년의 이란은 근본적으로 강한 팀이며, 우세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은 언제나 힘든 곳임에 틀림없다.

실상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한 골이라도 허용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패자부활전' 같은 플레이오프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더라도 우리 축구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흔들리는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물론 시리아가 이란을 이겼다면 플레이오프마저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극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대표팀은 어쨌든 살아남았다. 가슴을 쓸어내리기는 했으나 목표를 달성했고, 이에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유사한 맥락에서, 신태용 감독에게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가혹한 것이 사실이다.

3년에 가까웠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재임 기간에 대표팀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퇴보했다. 코치를 역임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팀을 신태용 감독이 삽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예상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웠다.

선수들이 갑자기 브라질, 스페인, 독일 선수들처럼 변할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슈틸리케 시절과 획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비판은 그 자체가 무리한 요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은 왜 적잖은 국민들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를 곱씹어 봐야 한다.

우선, 요즈음 국민들의 분노는 여러 해에 걸친 누적의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세 명의 감독을 갈아 치웠던 2014 브라질월드컵이 그 과정과 결과 모두에 있어 난맥상을 거듭하며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외국인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하며 순간적인 기대감을 높였으나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 준 행태는 유능한 지도자, 책임 있는 리더의 면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동안은 '보여 주기식 정치'에 열중했고, 종국에는 '남 탓'으로 일관하다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위기의 정도가 이미 수위를 넘은 상황에서 부랴부랴 수장이 교체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축구 눈높이'가 높아진 국민들의 실망감은 이미 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 발생했던 여러 문제들이 온전히 감독 혼자만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근본적으로 슈틸리케의 공허한 '이미지 정치'를 주선한 책임은 대한축구협회에 있다.

예를 들어 요즈음 국민들이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는 감독의 사진에 감동하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협회는 선수들의 결속력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든지, 코칭스태프의 역량과 역할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과 같은 중요 사안들에 대해서는 뾰족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이 갈수록 의심받고 있었음에도 이에 따른 체계적 대안 수립에 소홀했다. 행정력이 강한 선진국이라면 현 감독에 대한 비상 대안들을 미리 연구하고 목록을 작성해 둔다. 실수와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합리적으로 복구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다.

이번 두 경기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과 논란들에 있어서도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칭스태프, 협회가 모든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먼저 여러 유형들의 인터뷰 논란에 관해 시끄러웠던 이야기들을 여기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은 지금은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실로 '엄중한 시기'라는 점이다.

이는 월드컵 본선을 걱정하던 때나 지금이나 혹은 앞으로도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는 짧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더욱 신중해야 한다. 축구뿐 아니라 다른 분야, 축구 바깥의 세상에서도 다 그렇게 한다. 축구는 사회적 상식과 통념을 넘어서는 특권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것이 어긋날 때 국민들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헹가래' 사태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헹가래를 쳤던 정확한 시점이 언제였냐가 아니다. 헹가래 자체가 불씨였다. 지금까지의 제반 상황들을 고려할 때, 이번 본선 진출은 '안도의 한숨' 혹은 '조용한 격려'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았다. 선수들 및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다시 실망스러운 것은 협회다.

당시 현장에는 협회 관계자들도 자리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헹가래를 자제시키는 조언을 했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한 적절한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지구촌 모든 민족과 각국 국민들의 성원을 먹고 자라 온 스포츠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날 전 세계 축구협회, 선수, 감독들이 적잖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만약 국민의 성원이 없어진다면? 그때는 지금과 같은 스폰서도 없고, 중계도 없으며, 따라서 지금과 같은 수익도 없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국민들로 하여금 응원해야 할, 응원하고 싶은 국가대표팀이 되게끔 해야 한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아주대학교 겸임교수) 정리=최용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