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의 '내 뒤에 공은 없다']러시아 가기 위한 '골키퍼들의 경쟁'이 재밌다

김현기 2017. 9. 14. 05: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승규와 정성룡, 김진현이 지난해 8월31일 파주 NFC에서 훈련하고 있다. 파주 | 강영조기자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현대 축구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가 이를 증명하지 않았나라고 생각된다. 필드플레이어로 뛰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발을 잘 쓰는 골키퍼는 이제 강팀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발 못 쓰는 골키퍼는 다 아웃되는 추세다. 토트넘의 위고 요리스 같은 선수는 골라인까지 내려가서 빌드업(공격 작업)을 시작하며 팀 플레이를 만들어내는데 적극적이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골키퍼는 단순히 골문을 지키는 것을 넘어 빌드업의 출발점이 되고, 10명이 아닌 11명이 어우러지는 축구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난 시대를 너무 앞서간 골키퍼(?)였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년 전 펼쳤던 플레이가 지금 세계 축구계에 펼쳐지는 것 아닌가! ㅎㅎ

물론 한국의 대표급 골키퍼 후배들이 노이어 수준 만큼 아니다. 한국에선 최근 몇 년 전까지 상대의 슛을 잘 막는 안정감, 수비를 잘 이끄는 리딩 능력 등 문지기의 기본 요소들이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이어 등이 하고 있는 새 패러다임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대표급 골키퍼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좋기 때문에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는 기대가 된다. 선의의 경쟁이 계속 되고 있어 긍정적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 호출 받았던 골키퍼들은 김승규(비셀 고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권순태(가시마 앤틀러스),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 조현우(대구FC), 구성윤(콘사도레 삿포로) 등이다. 여기에 최근 서울에서 잘 하고 있는 양한빈, 제주의 이창근 같은 K리그의 떠오르는 선수들도 기량이 만만치 않다. 이들의 특징은 경기력이 다들 고르다는 것이다. 각자 장점이 비슷하면서 큰 실력 차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차별점을 꼽는다면 김진현, 김승규, 조현우는 신장과 방어력으로 볼 수 있고 키가 작은 권순태는 순발력과 역습 때의 활용도가 뛰어나다. 정성룡은 각종 국제대회를 많이 소화한 경험이 장점이다. 그러다보니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나 신태용 현 감독도 경기마다 컨디션을 보고 투입을 결정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표팀 각 포지션 경쟁의 세기가 줄어들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골키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엔 김승규가 연달아 뛰었지만 소속팀 활약이나 향후 A매치 활약도에 따라 주전 구도가 뒤바뀔 수 있는 게 골키퍼 포지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표팀의 러시아 월드컵 준비 과정을 유심히 보는 팬들은 본선에서 과연 누가 골키퍼 장갑을 끼는가도 흥미로울 것이다.

김병지가 지난 2001년 1월27일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드리블을 하다가 상대 선수 구스타보 모리니고에게 볼을 빼앗기고 있다. (스포츠서울DB)

결국 조추첨 결과, 강팀과 치르게 될 A매치에서의 경쟁력 등 2~3가지 변수에 따라 3명의 골키퍼 엔트리, 그리고 누가 주전으로 뛰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한국이 지금까지는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해 약팀과 싸우지 않았나. 한 수 아래의 팀과 경기할 땐 각 골키퍼들의 단점이 드러나질 않는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은 다르다. 슛 타이밍이나 개인기, 킥의 능력 등이 훨씬 우월한 공격수들과 쉴 새 없이 붙는 무대다. 볼점유율부터 우리가 떨어진다. 페널티지역에서의 위기 관리 능력, 돌발 변수에 대처하는 임기 응변, 상대가 계속 공격하는 와중에 수비진을 정비할 수 있는 리딩, 최종 수비수로서의 요소 등이 이제부터 관찰될 것이다. 조추첨 역시 중요하다. 독일, 스웨덴, 잉글랜드 등 체격이 좋은 팀과 많이 붙게 되면 신장 좋은 골키퍼가 필요하다. 반면 중남미 팀들과의 경기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면 작지만 민첩한 골키퍼의 경쟁력이 상승한다.

대표팀은 내달 평가전부터 5월 유럽 현지에서의 최종 리허설까지 최소 11회의 A매치를 계획하고 있다. 한 명이 이를 전부 뛸 순 없고 복수의 골키퍼들이 테스트받을 것이란 뜻이다. 러시아로 가기 위한 후배들의 건투를 빈다.
전 국가대표·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Copyright © 스포츠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