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가 아니라 '레이몬드'가 와야 한국축구가 산다

윤태석 입력 2017. 9. 14.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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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에도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수준급 피지컬 코치가 보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내기 위해 정작 필요한 사람은 히딩크가 아니라 레이몬드다.”

최근 한국 축구에 불어 닥친 ‘히딩크 열풍’을 지켜보던 축구인의 말이다. 팬들은 여전히 거스 히딩크(71) 전 감독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지만 현재 한국 축구의 현실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히딩크는 정답이 아니라는 게 축구인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모여있다는 대표팀에 상대 수비수 한 명을 쉽게 제치는 선수가 거의 없는 게 현주소다. 패스가 조금만 빨라도 받는 선수 발에서 공이 1m 이상 달아난다. 결정적인 순간 슈팅은 항상 골대를 벗어난다. 히딩크가 아니라 알렉스 퍼거슨(7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감독이 와도 월드컵 개막 전까지 뜯어고칠 수 없는 영역이다.

박문성 SBS 축구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가 월드컵본선에 출전하는 32개국 중 최약체라는 점을 인정하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령탑의 탁월한 전략과 전술, 리더십으로도 객관적인 전력 차를 극복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상대보다 한 발 더 뛸 수 있는 강한 체력이 밑바탕 돼야 한다.

그래서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 옆에 수준급의 피지컬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대표팀에 이재홍(34) 피지컬 코치가 있지만 좀 더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보강돼야 한다. 여기서 피지컬 코치는 단순히 선수들의 체력만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경기 당일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컨디션까지 맞추는 이른바 ‘운동 능력 향상 전문가’를 뜻한다.

2002년과 2006년 한일, 독일 월드컵 당시 레이몬드. 아래 사진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 패해 아쉬워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레이몬드. 한국일보 자료사진

4강 신화를 쓴 2002년 히딩크 감독에게는 레이몬드 베르하이옌(46ㆍ네덜란드) 피지컬 코치가 있었다. 레이몬드는 월드컵을 6개월 앞둔 2002년 초부터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해 태극전사들의 체력을 몰라보게 향상시켜놨다. 혹독한 훈련에 혀를 내두른 선수들은 그에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레이몬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도 개막을 약 한 달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해 원정 첫 승(독일)과 원정 첫 16강(남아공)에 힘을 보탰다.

선수들의 체력, 컨디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실패로 끝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피지컬 코치는 일본인 이케다 세이고(57)였다. 세이고 코치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분야 전문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브라질에서 선수들의 몸은 기대 이하였다. 대한축구협회가 펴낸 ‘한국대표팀 브라질 월드컵 출전 백서’는 “대표팀의 기초체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효율성에서 뒤쳐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케다 세이고(왼쪽) 피지컬 코치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박주영을 지도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예방접종 시기가 문제였다는 분석도 있다. 예방접종은 비행 열흘 전 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지침을 외면하고 대표팀은 전지훈련지인 미국 마이애미 출국 하루 전 황열병 예방 주사를 맞았다. 마이애미에서 구토, 설사를 하는 선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팀 스태프 중 한 명은 “세이고 코치는 런던 올림픽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세이고 코치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에서 아픈 선수들이 생기면서 세이고 코치가 구상한 훈련 프로그램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첫 단추가 잘못돼 본선까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백서에도 예방접종 후유증이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나온다. 하지만 백서에는 “예방주사를 맞고 선수들이 몸살을 앓고 몸이 너무 무거워 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이번 월드컵이 망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조성됐다”는 대표팀 관계자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선수들 스스로 몸이 덜 만들어졌음을 느꼈고 이런 분위기가 퍼져있었다는 의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벨기에에 패한 뒤 고개 숙인 선수들. 대한축구협회 제공

대한축구협회도 현재 피지컬 전문가를 물색 중이다.

레이몬드의 경우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데다 아카데미를 직접 운영하며 관리를 주로 할 뿐 현장을 뛰지는 않아 그를 직접 영입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협회는 레이몬드에 준하는 전문가를 찾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후보군을 압축 중이다. 언제 합류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회는 이와 함께 전력분석 전담 요원과 심리상담 전문가 등도 뽑아 대표팀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복안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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