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김원의 원샷 야구] LG 허프의 '커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원 입력 2017.09.14. 01:02 수정 2017.09.1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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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의 원샷 야구] 여덟 번째 이야기

'원샷--.'
LG의 호프, 데이비드 허프. [일간스포츠]
요즘 프로야구에서 LG 데이비드 허프(33·미국) 만큼 안정감을 주는 투수가 또 있을까.

허프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7이닝 5피안타·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6승(4패)째를 챙겼다. LG가 SK·넥센과 치열한 '5강 싸움'을 벌이는 중요한 상황에서, 허프는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지난달 16일 부상에서 돌아온 허프는 6경기에 나와 36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1.00(자책점 4점)을 기록 중이다. 허프가 등판한 경기에서 LG는 3승2무1패를 기록했다. 허프는 그의 별명처럼, LG가 가을야구로 가기 위한 마지막 '호프(hope·희망)'일지 모른다.

커터의 재발견.

스포츠 고글이 잘 어울리는 허프. [일간스포츠]

허프는 13일 경기 후 "빠른 공도 좋았고, 특히 컷패스트볼(커터)의 제구와 움직임이 좋았다. 롯데 타자들이 몸쪽 공을 많이 노리는 것 같아서 포수 유강남의 리드대로 바깥쪽 코스를 공략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허프는 직구·체인지업·컷패스트볼(커터)로 타자와 승부한다. 비율로 따지면 직구 50%, 커터 30%, 체인지업 20% 정도다. 상대와 그날 컨디션에 따라 5~10%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올 시즌에는 대체로 이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13일 롯데전도 그랬다. 이날 선발 등판한 허프는 7회까지 100개의 공을 던졌는데, 직구 53개, 커터 28개, 체인지업이 19개였다. 이날 허프는 최고 시속 150㎞의 빠른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커터는 주로 결정구로 썼다.

지난해 7월 스캇 코프랜드의 대체 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은 허프는 사실상 직구와 체인지업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에 가까웠다. 선발 투수치고는 구종이 너무 단조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허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구종으로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허프는 지난해 정규 시즌 13경기에서 7승2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왼손 타자에 약했다는 점이다. 허프는 왼손 투수지만, 지난해 오른손 타자(피안타율 0.203)보다 왼손 타자(0.288)를 상대로 더 고전했다.

평소 허프는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왼손 타자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커터를 들고 나왔다. 지난 7월 허프와 '커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허프는 "지난해에는 커터의 제구가 불안해 거의 던지지 않았다. 직구와 체인지업이 워낙 좋아서 던질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커터를 다시 던지기 시작했고, 비 시즌 동안 커터 연마에 힘을 썼다고 했다. 허프는 "왼손 타자와의 승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커터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조언.

허프가 안경을 벗은 모습도 나쁘지 않다. [LG 트윈스]
허프가 구사하는 커터는 시속 138~142㎞를 유지한다. 왼손 타자 바깥쪽 코스로 빠르게 휘어져 나가는 허프의 커터는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다. 양상문 LG 감독은 이 구종을 '고속 슬라이더'라고도 표현했다. 일반적인 커터와 스피드는 비슷하지만 휘는 각도가 더 크다고 했다.

커터를 결정구를 쓰기 시작한 올해 허프는 138명의 왼손 타자 피안타율을 0.252(2016년 0.288)로 크게 낮췄다. 피장타율 역시 0.348(2016년 0.432)까지 떨어졌다.

허프의 커터는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도 유효하다. 올해 오른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지난해와 같은 0.202다. 허프의 커터는 오른손 타자 바깥쪽 코스에 백도어성(홈플레이트 바깥쪽→안쪽)으로 휘어 들어간다. 허프는 오른손 타자 바깥쪽에서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도 던진다. 체인지업을 잔뜩 노린 타자들이 커터가 들어오면 당황하게 만든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올 시즌 중반부터 체인지업과 커터를 섞어 던져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재미를 보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허프의 왼손에 LG의 가을야구가 달려있다. [일간스포츠]
허프는 "내가 던진 커터를 왼손 타자들이 쉽게 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허프는 커터를 2013~14년 뉴욕 양키스에서 뛸 당시 동료였던 마리아노 리베라(48)에게 배웠다. 리베라는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 커터를 주무기로 통산 652세이브(MLB 역대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갑자기 휘는 커터는 좀 처럼 정타를 만들기 어려운 구종으로 꼽힌다. 되려 빗맞게 되면 배트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리베라의 커터에는 '전기톱날(buzz saw)'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리베라의 커터 때문에 2002년 한 해동안 부러진 배트가 44개에 이른다는 흥미로운 조사도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오죽했으면 부러진 배트로 의자를 만들어 리베라의 은퇴 투어 때 선물하기도 했다.

허프는 "리베라는 마운드 위에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투수(stone cold)였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정말 유쾌했다. 가장 친절한 선수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선수 중에서 리베라가 커터를 가장 잘 던졌다. 그래서 리베라에게 비법을 물어봤다"고 밝혔다.

허프는 리베라에게 커터를 어느 타이밍에 던져야 할지, 어떻게 하면 휘는 각도를 크게 또는 작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허프는 "리베라에게 커터를 배웠지만 내 것으로 발전시켰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팬들을 향해 하트를 날리는 허프. 메이저리그에서 8시즌 활약한 허프는 팬사랑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안다. [LG 트윈스]
그런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커터를 어떻게 던져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주위에서 '왜 커터를 던지지 않느냐'고 질문했지만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2014년 메이저리그에서 뛸 당시 허프의 커터 비중은 33%였지만 이후 크게 줄었다. 지난해 허프가 커터를 자주 던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커터를 던져봤는데 감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올해부터 일정하게 던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두 번의 부상.

허프는 지난 3월 무릎을 다쳤다. 시즌 개막을 코 앞에 두고 벌어진 일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퓨처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재활에 매진했다. 5월 12일(잠실 한화전)에야 시즌 첫 등판을 했다. 첫 등판에서 4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5월 세 차례 등판에서 3패를 당하며 평균자책점이 5.82까지 치솟았다. 양상문 감독이 "큰 기대를 걸었던 허프가 부진하자 선수들이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허프는 6월 1일 넥센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7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던졌다. 두 번의 완투승이 포함된 기록이다. 하지만 잘 나갈 때 또 한 번 부상이 찾아왔다. 한 달 가량을 쉰 허프는 더 완벽하게 돌아왔다.

지난 5일 KIA전 끝내기 안타를 친 김재율을 과격하게 축하해주는 허프. [일간스포츠]
LG는 지난 5일 KIA전에서 10회 말 터진 김재율의 끝내기 안타로 4-3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 승리 이후 상승세(4승1무)를 탔다. 승리 세리머니가 끝난 뒤 김재율의 유니폼은 반쯤 찢겨 있었다. 유니폼을 엉망으로 만든 범인은 허프였다. 허프는 누구보다 악착같이 김재율을 쫓아가 누구보다 과격하게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지금 LG에는 '승리의 맛'을 아는 허프가 필요하다.

'원샷--.' 야구 속 '한 장면'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