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타슈켄트] 보여준게 없는 '신의 축구' 축배보다 반성이 먼저다

2017. 9. 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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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한국축구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이끈 신태용 감독 천신만고 끝 본선 진출했지만 여전히 물음표 연이은 졸전…이대로 가면 본선 최약체 불보듯 남은 준비기간 9개월…공격 수비판 새로 짜야 항상 유쾌하고 솔직하다. 눈가에 주름이 한가득 잡힐 정도로 웃음도 많고, 농담도 잘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냉정하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한다. 소신이 뚜렷하다. 방향이 잡히면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뚝심도 있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47) 감독이‘월드컵’이란 평생의 꿈을 이뤘다.

한국축구는 9월 6일(한국시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끝난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에서 0-0으로 비겨 조 2위의 성적으로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결과다.

자력은 아니었다. 이란이 안방에서 시리아와 2-2 무승부를 거뒀기에 승점 2의 격차를 유지한 덕분에 2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경기내용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8월 31일 홈 이란전도 이번 우즈베키스탄 원정도 똑같은 결과를 냈다. 연이은 0-0 무승부. 이 정도 플레이라면 본선에 가서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비난도 나온다. 분명 아쉬운 결과지만 그렇다고 마냥 폄훼할 필요도 없다. ‘신태용호’는 8월 21일에 출범한 새로운 배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최종예선 8경기에서 부진을 거듭한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과 결별한 대한축구협회는 7월 초 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는데, 실질적인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 대부분 시간을 선수 점검에 쏟았고, 손발을 맞출 시간은 몹시 짧았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6일(8월 21일∼9월 5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치른 2차례 중요한 전투였다. 만일 슈틸리케 감독과의 이별이 좀더 빨랐고 그래서 신 감독에게 보다 시간적인 여유를 줬더라면 이보다는 훨씬 상황이나 결과가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은 남는다.

타슈켄트에서 신 감독은 자주 상념에 빠져 있었다. 대표팀이 훈련장으로 사용한 분요드코르 스타디움 7번 보조구장에서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보냈지만 평소의 그답지 않게 쫓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신 감독이 과거 이끌었던 연령별(20세 이하·23세 이하) 대표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월드컵의 중압감에 당황했고, 멘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보냈다.

사실 운명을 건 전투를 앞두고 마음이 평온한 지휘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평정심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잠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얼굴이 핼쑥해졌다. 대표팀 스태프는 “감독님이 많이 힘드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대표팀 단장으로 원정길에 동행한 협회 김호곤(66) 기술위원장은 “(신)태용이가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일 거다.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기분이다. 열심히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대응을 준비하고 전략을 세워도 부족함이 느껴진다. 시시각각 바뀐 전황에 빠르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리더가 그래서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였기에 감내할 몫이다. 갑작스레 기회가 찾아왔던 것은 맞다. 슈틸리케 감독이 계속 머물렀다면 신 감독은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릴 아시안게임과 3년 뒤 2020도쿄올림픽을 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이 소용돌이쳤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6월 대표팀의 카타르 원정 직전, 분위기가 급변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떠나면 각급 대표팀 감독 선임을 전부 원점에서 논의하기로 협회 수뇌부가 입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제안이 왔다. 만약을 전제로 지인들은 “협회가 감독을 제의해도 받아들이지 말라”고 반대했다. 2경기에 남은 인생을 전부 거는 건 옳지 않다는 이들도, 잘못하면 이민가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때 영웅으로 추앙받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몰린 홍명보(48) 감독의 전철을 기억하라는 진심어린 조언도 있었다. 이 때 협회 안기헌(63) 전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해봅시다.”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자칫 일이 꼬이면 ‘역적’의 꼬리표가 평상 따라다닐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자신이 있었다. “대표팀 감독의 기회는 흔치 않다. 운명으로 여겼다. 긴 호흡에 따라 뽑힌 감독이 아닌 소방수지만 역할은 같다. 큰 꿈을 가장 큰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싶었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유독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신 감독이 밟아본 가장 큰 국제대회는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이었다. 국가대표로 나선 A매치는 23회(3골)로 많지 않다. 월드컵은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대신 선수는 어려워도 언젠가 지도자로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에 도전하겠다는 꿈은 잃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올해 U-20 월드컵에서 토너먼트에 오르자마자 조기 탈락한 신 감독이 중요한 경기에 약하다고 꼬집는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신 감독은 단기 레이스(조별리그)의 강자라는 얘기가 된다. 역대 원정 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목표는 16강 진출이고 그 이후의 성적은 행운의 영역이다.

닉네임만 그럴싸한 ‘그라운드의 여우’일 뿐, 공격에 치중하면서 균형적인 전략·전술을 갖추지 못한‘개살구’라고 헐뜯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경험과 지식은 비례한다. 쌓이고 쌓일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한 직후 “한국축구의 우수성을 본 무대에서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믿는다. 본선까지 남은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서 새로운 한국축구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뜨겁게 응원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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