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본 '0-0' 본선행의 가치..1400억원 짜리 무승부

2017. 9. 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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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본선진출 90억+준비금 17억 일단 확보 우승상금 356억…16강만가도 돈방석 연 280억원 넘는 기업 후원유지엔 도움 1000억 중계료 낸 지상파3사 특수 기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마지막 경기가 끝난 9월 6일(한국시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 유난히 길었던 90분 혈투의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VIP석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본 대한축구협회 정몽규(55)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긴 축구는 처음이다. 조마조마하고 정말 떨렸다. 이렇게 어렵게 월드컵에 올라가 정말 송구스럽다.” 라커룸을 빠져나와 믹스트존을 거쳐 선수단 버스로 이동하는 태극전사들과 일일이 손을 마주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정 회장의 표정도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협회의 임직원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야말로 전부 옷 벗을 각오를 하던 터였다. 남더라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역시 불가피했다. 부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쉬웠지만 적어도 잃어버린 4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0-0 무승부의 가치는 상상 초월이다.

타슈켄트 현장에서 손톱을 뜯으며 경기를 관전한 대표팀 스태프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타고 러시아의 꽃길을 향하게 됐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국축구는 우선 무형의 가치를 선물 받았다.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에 10번째 진입이라는 값진 역사와 명예,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올린 전통을 지켜냈다. 전통과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가치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유형의 가치도 있다. 다양하고 엄청난 규모다. 우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받는 월드컵 배당금을 일찌감치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월드컵 본선진출 상금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2014브라질월드컵 때는 본선출전 32개국에게 FIFA는 950만 달러를 분배했다. 조별리그 출전 수당으로 90억원을, 출전 준비금 명목으로 17억원을 추가로 줬다.

그 출전 준비금으로 각종 A매치 평가전 시리즈를 기획하고, 사전 전지훈련 캠프를 운영할 수 있었다. 물론 107억원은 기본이다.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에 오르면 껑충껑충 상금이 뛴다. 우승 상금 3400만 달러(약 356억원)는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겠지만 16강∼8강 라운드에만 진입하면 엄청난 액수를 확보할 수 있다.

스폰서와의 관계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축구협회가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건 결국 돈에 있다. 자금이 있어야 힘도 얻는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큰 돈을 지불하며 후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월드컵 특수다. 협회는 현재 나이키, KEB하나은행, KT, 현대자동차, 아시아나, 교보생명, 코카콜라, 서울우유, 네이버 등 9개사와 후원계약을 맺었다.

이들 기업들의 연 평균 후원금만 해도 28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나이키는 현금 600억원(연간 75억원)에 현물로 비슷한 규모를 지원한다.

물론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고,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해도 당장 후원을 중지하기는 어렵겠으나 적어도 계약연장 과정에서 협회는 대폭 줄어든 금액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 처지가 될 수 있었다. 본선에 못나갔다면 협회의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오랜 권위의 FA컵을 비롯한 각종 대회 운영비는 축소되고, A매치 역시 만족하지 않는 상대들과의 대결로만 채워질 가능성이 컸다.

아마추어 풀뿌리 육성 프로젝트도 실패할 수 있다.

태극전사들도 달달한 선물을 받는다. 2017년 7월 개정된 ‘국가대표 축구단 운영규정’제18조(격려금)에 따르면 대표팀 구성원(선수·코칭스태프·지원스태프 등)에게 협회는 대회 규모 및 예산, 성적, 공헌도 등에 따라 협회 이사회에 보고한 뒤 격려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월드컵 본선이 걸린 최종예선도 해당된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약 20억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허정무 감독(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이 1억2000만원을 받았고 선수는 A급 8000만원부터 F급 500만원까지 총 6등급으로 구분해서 나눠가졌다.

2014브라질월드컵 때는 임시 사령탑으로 최종예선을 책임진 최강희 감독(전북현대)이 1억5000만원을 받았고 수석코치 1억2000만원, 나머지 코치들이 8000만∼1억원을 나눠 받았다. 선수들은 최종예선 기여도에 따라 A급 1억원부터 D급 4000만원 까지 각각 받았다. 최종예선 기간 중 최소 1경기 이상 출전했거나 4회 이상 소집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

본선 중계권을 보유한 공중파 방송3사도 웃고 있다. 이미 1000억원대의 거액을 이미 FIFA에 지불한 상황에서 한국이 빠진 월드컵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400억원을 초과하는 중계권료를 나눠 부담한 방송사들은 0-0 무승부가 그래서 반갑다. 다만 월드컵 최종예선을 독점 중계한 JTBC는 결과가 아쉬울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끌려갔더라면 더욱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플레이오프를 지켜봐야하기 때문에 수입이 많아질 수도 있었다.

월드컵 본선에 오른 우리 선수단을 향해 경기장에 끝까지 남았던 일부 우즈베키스탄 팬들은 환호와 격려의 갈채를 보내줬다. 기자회견장에서 현지 취재진도 축하의 박수를 쳤다. 우리가 부러웠을 것이다. 타슈켄트의 비단길에서 한국축구는 0-0 무승부로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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