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열의 사커라운지] 한국축구, 비논리가 부른 '상처뿐인 영광'
축구는 둥근 공을 발로 다루는 운동이다. 불확실성, 우연성을 본질적인 속성으로 품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에 지배당하기만 한다면 축구는 스포츠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 패스를 저쪽으로 하지. 이쪽이 텅 비어있는데 말이야.” 아마 축구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올바른 패스의 방향, 타이밍, 속공과 지공의 선택, 상대 수비 뒤로 돌아들어가는 침투, 라인을 지키는 동료와의 조화, 맨투맨과 지역방어의 밸런스 등에 이르기까지 축구의 모든 장면을 의미있게 만들고 결정하는 게 바로 합리성이다. 이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움직임들이 쌓이고 이어질 때 비로소 골이란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강팀과 약팀, 독일과 한국축구의 수준 차이는 곧 합리성의 차이나 다름없다. 합리적인 플레이가 이어지면 축구는 쉬워진다. 독일을 보라.
반대로 비논리적인 플레이가 연속되면 답답할 정도로 엉키게 된다.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최악의 참사는 피하긴 했지만 상처뿐인 영광만 남았다. 축하보다는 실망과 분노, 비난의 목소리가 더 크다. 최근 한국축구가 걸어온 비논리적인 행보를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떤 비논리적인 선택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복기해 보자.
신태용 감독 선임 과정부터가 합리적이지 못했다. 기술위원들에 따르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국축구를 구해낼 국가대표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모인 기술위원들에게 던져진 자료는 감독 후보들의 이력서가 전부였다. 감독 후보자들의 장점(strengths)과 단점(weaknesses), 기회(opportunities), 위협(threats)을 분석해놓은 기본적인 스왓(SWOT) 자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기술위원들의 개별적인 경험과 기억, 막연한 선입견에 의존한 인상 비평만으로 국가대표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내세운 ‘소통’이라는 기준도 사실은 뜬금 없었다. 유소년이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라면 모를까 국가대표팀 감독의 덕목에는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 팀 장악력, 전술 전개력, 임기응변, 선수선발 능력, 체계적인 준비를 할 수 있는 능력, 큰 대회 경험 등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소통이라는 절대 기준 앞에 모두 묻혀버렸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지켜봤다.
신태용 감독의 행보도 모순의 연속이었다. K리그의 양보를 받아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일주일간 조직력을 맞추고도 장작 실전에선 유럽파를 중용했다. 이란이 한 명 퇴장당해 수적 우위를 잡았는데도 수비수를 교체하고 이동국을 종료 4분 전에야 투입한 것도 납득하기 힘든 경기 운영이었다. 20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에서 강호 포르투갈에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완패한 신 감독이 정작 모험적으로 나서야 했을 때는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상황 판단과 그에 따른 임기응변, 결단력에 의문이 제기된 것도 당연했다. 부상으로 수술을 해 쓸 수 없는 기성용을 엔트리에 뽑고 우즈베키스탄까지 동행시킨 것도 이상했고, 우즈베키스타전에서 익숙하지 않은 스리백을 들고 나온 것도 모험수였다. 무책임하게 대표팀을 떠난 차두리를 코치로 다시 대표팀에 불러들인 것도, 차두리에 이어 김남일까지 경험이 일천한 코칭스태프를 구성한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결정들이었다.
한국축구는 그라운드에서도, 피치 밖에서도 합리성이 부족했다. 아마 아시아 축구가 조금만 수준이 높았더라도 한국은 비논리적인 결정들에 대한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을 것이다.
열정, 믿음, 사랑은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자꾸 논리를 거스르다 보면 열정도, 믿음도, 사랑도 식기 마련이라는 것을 한국축구는 명심해야 한다. 참, 우즈베키스탄과 비기고도 신태용 감독을 헹가래 친 것도 논리적이진 않았다. 팬들은 ‘강제진출’이라고 눈을 흘겨보고 있으니 말이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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