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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코리안 리포트]류현진 100이닝 돌파, 또 5이닝 교체

민훈기 입력 2017.08.20. 12:24 수정 2017.08.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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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점 호투에도 불구하고 5이닝 후 다시 교체 아쉬움, 승패 무관했지만 미래를 보는 포석이기도

 ‘초구 패스트볼 89마일, 143.2km’


어느 투수든 그렇지만 류현진은 특히 경기에서 가장 먼저 던진 패스트볼의 구속을 보면 그날 내용이 대략 가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의 컨디션이 좋은 날은 1회부터 시속 93마일, 150km가 찍히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어김없이 과감한 호투가 이어집니다. 반대로 초구가 88, 89마일이 찍히면 그날 경기가 쉽지 않게 풀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신중한 승부를 펼친 20일 디트로이트전이었지만 5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의 효과적인 피칭으로 승리에 기여한 류현진. 0-0에서 교체되 승패와 무관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다저스SNS

그런 의미에서 2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전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약간 어두운 느낌도 있었습니다.

까다로운 선두 타자 이언 킨슬러에게 던진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 그런데 구속은 143km 정도에 그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커터와 체인지업과 패스트볼을 번갈아 섞어 던지며 킨슬러를 공략했지만 첫 타자 볼넷. 이어서 지난 6월 이후 3할3푼7리로 AL 3위이자, 지난주까지 5경기 멀티 히트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2번 마이키 마툭을 만났습니다. 전날도 2안타를 친 마툭을 맞은 류현진은 속구 2개 후 4구째 129km 체인지업으로 완전히 타이밍을 빼앗았습니다. 1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 여기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된 점은 역시 오른손 타자에게는 춤추는 체인지업이 제대로 먹힐 것이라는 희망. 특히 타이거즈 타자들은 류현진을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전날 2홈런과 2루타 등 4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한 3번 저스틴 업턴과의 대결은 특히 관심을 끌었습니다. 업턴은 후반기 OPS가 1.080으로 텍사스 조이 갈로에 간발의 차로 뒤진 AL 2위일 정도로 이 팀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입니다. 류현진은 초구 몸쪽으로 낮게 파고드는 커터(140km)로 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후 볼카운트 2-2에서 6구째 이번에도 138km 커터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습니다. 단 이번에는 몸쪽이 아니라 바깥쪽 높은 코스에 꽂히는, 스트라이크 같은 볼로 유인구를 던진 것에 업턴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올해 다소 부진한(그래도 홈에서는 3할9리로 강세) 4번 미겔 카브레라를 2구만에 역시 커터로 중앙에 뜬공 처리하며 1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더 이상 빠른 구속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해진 무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생존법을 터득한 류현진임을 1회에 다시 봤습니다.

물론, 역시 힘 있는 속구로 윽박지르지 못할 경우는 다양함과 정교함에 의지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습니다. 과감한 경기 운영이 아닌 조심스런 운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예전처럼 마음 놓고 편히 볼 수 없는 경기들이 앞으로도 중간 중간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구속과는 무관하게 공에 제대로 힘이 실리고 있어 맥없는 장타 허용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7월 이후 5경기 피홈런 1개) 그리고 무엇보다 류현진의 월등한 야구 IQ와 대담한 경기 운영을 가능케 하는 자신감의 회복도 눈에 띄는 믿음직한 부분입니다. 때문에 간혹 흔들리는 날은 있을지 몰라도 무너지는 날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어깨 수술 전의 신뢰를 다시 보낼 수 있습니다.

2회는 선두 5번 카스테야노스 안타가 나왔지만 최근 5경기 4할4푼4리의 빅토르 마르티네스를 유격수 땅볼 6-4-3 병살 처리하며 주자를 지운 류현진은 7번 매캔도 2루 땅볼로 쉽게 잡았습니다.

위기는 3회였습니다.

전날 마이너에서 올라온 8번 자코비 존스가 3루쪽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습니다. 이날 3루수를 맡은 포사이드가 몸을 날리며 공을 잡아 1루로 힘껏 던진 공은 외야쪽으로 약간 벗어났지만 돌아온 1루수 아드리안 곤살레스가 원바운드로 이 공을 잘 잡았습니다. 그러나 1루심 크리스 시걸의 판정은 세이프.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원심은 뒤집어지지 않았습니다.

1사 후에 킨슬러에게 이날 두 번째 볼넷, 그리고 2사 후에 업턴에 다시 볼넷으로 주자는 만루가 됐고, 여기서 4번 타자 미겔 카브레라를 만났습니다.

34세의 카브레라는 MLB 15년차 베테랑입니다.

올해는 2할5푼6리에 13홈런 54타점으로 명성에 비해 부진하지만 전날 다저스 전에서도 2안타 1타점을 올리며 역대 33위인 1607타점을 기록한 타자입니다. 2012년 AL 트리플 크라운(타격, 타점, 홈런 모두 1위)을 비롯해 올스타 11번, AL MVP 2번, 실버슬러거 7번, 타격왕 4번, 홈런왕 2번, 타격왕 2번 등을 차지한 당대 최고의 오른손 타자입니다. 459홈런(역대 35위), 2618안타로 81번째로 2600안타 고지 돌파, 그리고 40번째로 1000 장타 돌파 등 숱한 기록을 쌓아나가며 명예의 전당을 예약했다는 평가를 듣는 대타자입니다.

만루에서 카브레라를 만난 류현진의 승부는 과감했습니다.

과거 기록은 2타수 1안타 1타점 1삼진이었는데 이날 첫 대결은 외야 뜬공 처리. 그리고 절체절명의 만루 위기에서 류현진은 카브레라를 상대로 114km짜리 낙차 크게 떨어지는 느린 커브를 초구로 선택했고, 절묘한 곡선을 그린 공은 스트라이크존 위쪽에 내려앉았습니다. 2구째는 140km의 커터가 스트라이크존 낮은 곳을 통과하는 것을 카브레라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높이가 절묘했습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곧바로 정면 승부를, 그러나 스트라이크존을 비켜가는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고, 카브레라가 힘차게 휘두를 방망이는 허공만 갈랐습니다. 이날 류현진이 던진 89개의 공 가운데 가장 빠른 150km짜리 포심 패스트볼이었습니다.

류현진은 4회말도, 5회말도 모두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여전히 0-0이던 5회에는 1사 후에 킨슬러가 2루타를 치고 나가 위험했지만 2번 마툭을 유격수 땅볼로 잡은 후 업턴을 다시 패스트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다른 경기에 비해 조심스런 승부가 많았고, 유인구 승부가 많았지만 꼭 필요할 때는 과감한 공격의 기운을 잃지 않았던 류현진이었습니다. 변화구가 살짝 살짝 빠지면서 볼넷이 4개 나왔지만 고비마다 잡은 삼진 4개가 컸습니다.


20일 디트로이트전에 앞서 몸을 푸는 류현진. 승패없이 5이닝 무실점 후 교체됐고, 25일 피츠버그와 원정 경기에 등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저스SNS


 그런데 6회말 류현진은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투구수 89개에, 특히 5회는 투구수 11개, 4회도 17개로 점점 페이스가 좋아지는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AL 원정 경기라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것도 아니었는데.

올 시즌 류현진의 경기를 복기해보면 18번 중에 100구 이상을 던진 경기는 4번뿐이었습니다. 심지어 5이닝 이상 잘 던지는데 80구 이하에서 교체된 경기도 3차례나 있었습니다. 선발 투수가 효과적인 피칭을 하고 있는데도 빠른 교체를 하는 것은 사실 로버츠 감독의 올 시즌 운영방식이기도 합니다. 커쇼나 우드가 아닌 나머지 선발들은 5이닝 후 교체가 꽤 빈번합니다. (마에다 5이닝 후 교체 10번, 힐 8번) 불펜의 힘도 워낙 강하고, 개인의 승리보다는 팀의 승리가 우선인 운영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류현진의 경우 큰 수술 후 복귀한 시즌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당장 1승도 물론 소중하지만 긴 시즌을 치러야하고, 포스트 시즌까지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리고 더 길게 보면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8년에 제대로 실력발휘를 해야 FA 시장에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붙이면 다르빗슈까지 DL에 간 마당에 4일 휴식 후 피츠버그에서 등판해야 한다는 점까지 감안한 교체였다는 로버츠 감독의 설명에는, 다소 속상해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다저스가 이날도 류현진 교체 후에 득점을 하면서 결국 승리해 팬들의 아쉬움은 더 컸습니다.


올 시즌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에서 득점 지원은 4.28점으로 NL 84위로 최하위급이고, 특히 마운드에 있는 동안은 2.7점에 불과합니다. 해석이 불가능하지만 매 시즌 보면 선발진 중에 유독 득점 지원이 안 되는 투수가 한 명씩 나오는 현상이 있는데, 아쉽게도 올해 다저스 로테이션에서는 류현진이 그 불운의 사나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기 교체, 득점 지원 부재 등의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류현진이 올 시즌 100이닝을 돌파했다는 점은 대단히 반가운 부분입니다.

사실 불안한 시즌입니다. 팔꿈치 수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재기 확률이 떨어지는 어깨 수술을 받고 2년만의 재기 시즌입니다. 통증이 재발한다든지, 다른 부상이 온다든지, 혹은 구속이 완전히 저하되거나 아님 전혀 효과적인 피칭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류현진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 관계자, 팬들이 갖고 있던 공통된 불안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반을 넘어서면서 류현진은 투구 동작이나 공을 채는 동작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150km도 넘는 구속도 어렵지 않게 찍습니다. 이제 육체도 정신도 부상과 수술의 공포와 미지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이날로 3년 만에 100이닝을 돌파한 시즌을 기록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승수 쌓기에 어려움이 더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실리적으로는 성적과 기록 등은 2018시즌에 쌓아 가면 됩니다. 남은 시즌 건강하게 던지면서 이렇게 팀 승리에 기여하다보면 류현진에 대한 다저스의 신뢰는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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