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도어의 홈스틸과 조연 추신수의 역할론

조회수 2017. 8. 17. 10: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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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의심스럽긴 하다. 이번에는 메이웨더가 진짜 화끈한 복싱을 보여줄 지 말이다. 자신도 찜찜한 지 인정하고 들어간다. “난 파퀴아오와 경기에서 빚을 졌다.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절대 방어적인 경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맥그리거를 잡으러 들어갈 것이다.”

다음 주말 세기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격투기 팬들의 눈은 모두 라스베이거스로 몰릴 것이다. 그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2루수 말이다.

작년 5월이었다. ESPN의 간판 프로그램 'Sports center'는 야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방송하다말고 갑자기 전화로 전문가 한 명을 초대했다. ESPN 복싱 해설자인 테디 애틀라스였다.

첫 마디부터 격찬이었다. “농구나 풋볼, 하키 선수들 싸우는 것 많이 봤다. 대부분은 참 안쓰럽다. 마음만 급해서 허둥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제대로다. 깨끗한 카운터 블로가 안쪽으로 파고 들며 정확하게 적중했다. 체중이 실린 완벽한 동작이었다. 틀림없이 프로에게 레슨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복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을 것이다.”

                                                                                                                                                                                       ESPN 중계화면

자기보다 14살이 많은 베테랑을 한 방에 보냈다. 23살짜리는 그 한 장면으로 일약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그가 이번에는 다른 종목에 도전했다. 스프린트(단거리 경주)다.

어제(한국시간 15일) 텍사스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나온 그의 홈 질주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물론 구심 존 텀페인이 보크를 선언하면서 도루 기록은 지워졌다. 하지만 그냥 놔뒀어도 완벽한 세이프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포수가 공까지 놓쳤으니….

이 장면의 주인공은 당연히 3루 주자였다. 기상천외하고 기습적인, 그리고 과감한 시도였다. 하지만 타석에 있던 타자 역시 가볍지 않은 롤(역할)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조연급은 충분했다는 얘기다.

추신수 타석에 바뀐 투수가 초래한 오류들

7회였다. 홈 팀이 5-3이다. 하지만 뒤가 따갑다. 추가점이 절실한 대목이었다.

선두 타자 오도어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9구 실랑이 끝에 얻어낸 결과다. 다음 타자 때 2루 훔치기에 성공했다(시즌 12호). 여기에 포수의 송구 실책이 겹치며 기회는 무사 3루 확장됐다. 이제 스치기만 하면 점수다. 그런데 맘대로 안된다. 삼진, 그리고 너무 짧은 외야 플라이뿐이다. 주자는 3루에서 꼼짝 못하고 잡혀 있다.

2사가 됐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다. 차이를 벌리지 못하면 흐름은 바뀔 것이다. 2점 우세는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다. 위기 탈출, 분위기 전환을 확신한 원정 팀은 타임을 부른다. 그리고 마운드 교체를 알린다. 하지만 이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이 초래할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서 말이다.

새로 올라온 투수는 좌완 다니엘 스텀프였다. 상대가 백넘버 17번을 단 좌타자의 차례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당연한 선택이었다. 스텀프는 올 시즌 32게임에서 ERA 2.7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한 가지 변수가 작용했다. 등 뒤에 주자를 두고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 투수들은 뒤에 있는 주자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커버가 가능하다. 그러나 스텀프는 조금 문제가 있다.

첫번째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 오른발의 위치다. 세트 모션에서 보통의 투수는 두 발을 나란히 놓는다. 하지만 그의 자세는 다르다. 오른발이 앞쪽, 그러니까 1루쪽으로 많이 나간다. 밸런스를 잡는 데 유리할 것이다. 또 타자에게는 일종의 디셉션(숨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헛점이 있다. 몸이 너무 2루쪽으로 틀어진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고개를 돌려 3루 주자를 체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견제는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두번째는 양 손의 멈춤 동작이다. 세트 모션에서는 의무적으로 한 번의 정지 동작이 있어야 한다. 스텀프는 여기서 이상한 버릇이 있다. 멈춤이 2단계에 거쳐 이뤄진다는 점이다. 즉 1차로 스톱했다가, 잠시 후 두번째 정지 동작을 갖는다. 그러니까 1차 멈춤은 주자에게 스타트 하라고 사인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3루수가 베이스를 오픈한 이유

 아무리 헛점이 보인다 해도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상대의 의심은 기습의 적이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그래서 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초구에 비명이 터졌다. 95마일짜리가 얼굴 쪽으로 날아들었다. 간신히 피한 타자는 투수와 한차례 눈싸움을 벌인다. 아마 그 순간 스텀프는 흠칫했을 것이다. ‘아차, 바로 등 뒤에 오도어가 있구나.’ 바티스타의 선글라스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이 떠올랐을 지 모른다.

잡념을 버리자. 승부에 집중하자. 아찔한 초구에도 타자는 녹록치 않다. 2구째 96마일 패스트볼에 단단한 스윙이 따라붙는다. 파울. 투수의 몰입도는 최고조로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3루 주자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설마 뛰기야 하겠어?’

카운트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빠지는 볼에 이어 슬라이더가 존 안으로 들어왔다. 문제의 두번째 스트라이크가 꽂힌 것이다. 이건 때가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일단 타자가 유리할 때 움직이는 건 실례다. 좋은 타격에 대한 기대 확률을 존중해줘야 한다. 하지만 카운트가 2-2로 변하면서, 여러 변화를 적용시킬 시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3루 코치가 슬그머니 주자 곁으로 다가선다. 슬쩍 한 두 마디를 건넨뒤 철수한다. 굳이 실행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결정적인 팩트에 대해 환기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핵심적인 것은 3루수의 위치다. 대개는 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베이스 바로 옆에 붙어 있는다. 실전은 완전히 오픈시켰다. 마찬가지로 ‘설마 뛰겠어?’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게다가 시프트의 영향도 있다. 17번 타자의 성향상 내야수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옮겼다. 넓어진 3ㆍ유간을 커버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베이스를 버려야 했다.

추신수의 완벽한 블러핑, 말 두 마리

모두가 ‘설마’ 하는 사이 작전은 결행됐다. 앞서 지적한 몇가지 헛점들이 빌미가 됐다. 3루가 오픈되자 슬금슬금 걸어나오기 시작했다(어차피 견제구는 없으니까). 그리고 스타트 신호가 있었다. (투수의) 이중 멈춤 동작의 틈새였다. 첫번째 멈춤 동작 무렵, 우사인 볼트 같은 폭발적인 스타트가 이뤄졌다.

와중에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이 있다. 타자의 역할이다. 아시다시피 좌타자다. 3루에서의 움직임이 훤히 시야에 있다. 반대로 투수는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면 힌트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대한 끝까지 타격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실전에서도 드러난다. 포수가 화들짝 일어설 때까지 타자는 블러핑 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아시다시피 보크였다. 물론 이것도 노림수에 포함된 부분이다. 첫번째 멈춤 무렵에 달리기가 시작됐다. 뒤늦게 깨달은 투수는 급한 마음에 두번째 스톱 모션을 완결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구심의 입장에서는 반칙 투구로 판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3월 캠프 기간중에 깜짝 놀랄 뉴스가 전해졌다. 이제 막 주전 자리를 잡기 시작한 23살짜리 2루수의 계약 때문이다. 레인저스의 마음씨 좋은 존 다니엘스 단장은 6년간 무려 4,950만 달러짜리 딜을 선물했다. 텍사스 팬들은 안심했다. “(단장) 다니엘스가 새로운 안전 요원을 조금 비싼 값에 고용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걱정없다.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면 모두 루기(루그네드 오도어의 애칭) 뒤에 숨으면 된다.”

의외의 계약에는 흥미로운 조항이 하나 따라붙었다. 말 2마리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옵션이었다. 당사자의 얘기는 이렇다. “어렸을 때부터 말타고 노는 것을 즐겼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무척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요즘도 시즌이 끝나면 베네수엘라의 외가(어머니 고향)에서 말들과 지내는 게 일상이다.” 그는 이미 그곳에  6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다. “언젠가는 텍사스에 넓은 목장을 짓고 가족과 말들을 모두 데려와 함께 사는 게 꿈이다.”

에반 그랜트 기자가 SNS에 올린 오도어의 말 사진. ‘이거 실화임(This is not a joke)’이라는 멘션이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즐기는 스포츠는 복싱일 것이라고. 아마 어제 경기의 상대 디트로이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오도어가 진짜 좋아하는 액티비티가 ‘말 달리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운드의 스텀프는 조금 더 그의 발소리에 신경 썼을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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