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민기자 코리안 드림]달려라 달려, KIA 버나디나

민훈기 입력 2017.08.16. 12:40 수정 2017.08.16. 13:25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목소리도 조용조용하고 늘 미소를 짓는데다, 선한 느낌을 주는 눈에서 그의 심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야구 경기가 일단 시작되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 여러 곳에서 야구를 했는데 KBO리그는 또 좀 다를 텐데.

그러나 몸값 경쟁에서 큰 차이가 없어진 요즘이라, 팀과 선수가 서로 원한다면 버나디나의 광주 생활은 꽤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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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부진 딛고 3번 타자와 외야수로 뛰어난 활약 펼치며 팀 1위 질주에 기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목소리도 조용조용하고 늘 미소를 짓는데다, 선한 느낌을 주는 눈에서 그의 심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야구 경기가 일단 시작되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시즌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후로는 테이블 세터에서 팀의 중심 타자 3번으로 자리 매김하며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 시즌 KIA 타이거즈의 무서운 상승세에는 기여한 선수가 많지만 그 중에 이 선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남미의 작은 섬 큐라소 출신으로 메이저리그를 거친 로저 버나디나(33)의 야구 인생을 들어봤습니다.


성실함이 가장 돋보이는 강점이라는 로저 버나디나는 공-수-주에서 맹활약으로 KIA 타이거즈의 주력 멤버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 본명이 꽤 특이하고 어렵다. Rogearvin Angelo Bernadina 라는데 어떻게 발음을 하나?

▶라저빈 앙헬로 베르나디나 라고 발음한다. (웃음)


 - 라저빈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 스페인어인가 아니면 네덜란드어?

▶ 나도 궁금해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독특한 이름은 원하시는 어머니가 내 고향 큐라소 섬나라 말에서 기인한 이름을 지으셨다고 했다. 뜻은 없고 그냥 이름이다. 그래서 내 미국 이름도 비슷한 로저(Roger)가 됐다.


 - 큐라소 출신의 MLB 선수가 꽤 있다, 앤드루 존스를 비롯해서.

▶ 그렇다. 가장 유명한 선수가 앤드루 존스이고, 제일 먼저 MLB에 간 선수는 헨슬리 뮬린스(WBC 네덜란드 팀 감독)로 한국에서도 1년 뛰었다고 들었다. (큐라소 출신 MLB 선수는 버나디나 포함해 지금까지 총 14명입니다.)


 -큐라소는 작은 섬나라로 아는데 야구가 인기인 모양이다. (2017년 1월 현재 16만337명) ▶ 아주 작은 나라다. 그리고 야구가 가장 인기다. 축구나 다른 해양 스포츠도 하지만 야구가 가장 인기다. 인구는 적은데 네덜란드령이라서 이중 국적을 갖는다.


- 네덜란드에서 성장했다고 들었다.

▶ 큐라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10살쯤에 네덜란드로 갔다. 거기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 메이저리그와 계약했다.


- 17살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계약했는데 그럼 큐라소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다니다 계약한 건가?

▶ 그건 아니고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엑스포스와 계약했다. 스카우트가 나를 계속 지켜보다가 계약하게 됐다.


- 그럼 네덜란드에서도 야구를 했다는 건데, 야구는 별로 인기가 없지 않나?

▶ 그렇다, 축구가 인기다. (웃음) 그런데 난 큐라소부터 야구를 했고, 네덜란드 가서도 계속 야구를 했다. 아버지가 야구 선수였고, 어머니도 소프트볼 선수였다. 그래서 나도 계속 야구를 했던 것 같다. 엑스포스가 매년 네덜란드에서 야구 캠프를 열었는데 14살 때 처음 캠프에 참가했다. 그때 나를 본 스카우트가 계속 나를 주목했고, 결국 엑스포스와 17살 때 계약했다. 5만 달러인가 계약금을 받았다.


- 마이너리그 기록을 보니 정말 빨랐나보다. 40도루 넘는 시즌도 있고.

▶ 어려서부터 빠르기도 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야구와 주루 플레이 등에 대해 많이 배웠다. 한 시즌 40도루, 41도루를 한 적이 있다. 스피드는 어려서부터 나의 강점이기는 했다.


- 2008년 MLB 데뷔 이야기를 해 달라.

▶ 정말 경이로운 날이었다, 평생을 기다렸던 날이었고. 그러나 시작은 좀 희한했다. 그 시즌에 앞서 워싱턴 내셔널스가 나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처음 MLB 캠프에 갔는데 1주일 만에 마이너로 보내 정말 실망했었다. 그리고 시즌을 더블A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하루는 경기를 하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4회인가 나를 경기에서 뺐다. 그러더니 빅리그로 간다고 하는 것 아닌가. 야수가(래스팅스 밀리지) 갑자기 부상이라 내가 올라가게 됐다고 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음날(2008년 6월28일) 아침 일찍, 4시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갔다. 볼티모어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였는데 낮 1시35분 경기인가 그랬다.


- 그날 바로 뛴 건가?

▶ 그렇다.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했더니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웃음)


- 첫 타석 기억도 생생하겠다.

▶ 물론이다. 얼마 전에 은퇴한 제레미 거스리가 볼티모어 선발이었다. 나는 1번 타자 중견수로 나갔다. 메이저리그 경기는 처음이었고 4만 명도 넘는 팬들이 압도적이었다. 볼티모어와 워싱턴은 같은 지역 라이벌전이다. 1회말 첫 타석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본 후에 2구째 스윙을 했는데 우익수 쪽으로 라인드라이브 안타였다.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 가족이나 친지들이  많이 왔었나?

▶ 곧바로 연락했지만 갑작스런 승격이어서 그날 경기에는 올 수 없었다, 모두 네덜란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다음날 부모님과 형이 모두 경기장에 왔다.


- 2009년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슈퍼 캐치에 이은 큰 부상을 입었다. (4월의 시즌 3번째 출전 경기였습니다.)

▶ 댄 어글라인가 외야로 큰 타구를 보냈다. 추격해서 높이 뛰어올라 공을 잡았는데 떨어진 곳이 평평하지가 않았던 것 같다. 발목이 부러졌고 스크루 두 개를 박는 수술을 받았다. 나중에 하나가 튀어나와 제거했고, 여전히 스크루 하나가 발목에 있다. 그래서 그 시즌 내내 재활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젊을 때였고 다음 시즌에 복귀할 수 있었다.


- 외야 호수비를 종종 펼쳤기에 ‘상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 그 별명을 얻은 것 다음 시즌이었다. 팬들은 내가 늘 다이빙 캐치를 하고 수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상어가 물고기나 먹잇감을 추격하는 것 같다며 그런 별명을 지어주었다. 양팔을 벌렸다 접었다하며 응원을 해주었다. (웃음)


- 그 후로 필라델피아, 신시내티, 다저스 등에서 뛰었지만 빅리그에 정착하지 못했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 결국은 기회의 문제였다고 본다. 백업으로 한 달에 20타석 정도에서 실력 발휘를 해야 했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경쟁도 정말 치열하고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다보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다.


- 그리고 지난 2년간 콜로라도와 뉴욕 메츠의 AAA에서 뛰었는데 어떻게 KIA 타어거즈와 계약이 된 건가?

▶ 지난 오프 시즌 11월쯤 꽤 일찍 KIA에서 연락이 왔다. 과거에도 일본이나 한국들이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고 나도 외국에서 뛰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KIA에서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서 계약을 원했다.


- 원래 생각이 있어서 쉽게 결정을 한 건가?

▶ 가장 중요한 것 내가 야구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와는 다르지만 윈터리그에서도 뛰어봤고, 나의 열정인 야구를 외국에서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과거 베네수엘라에서 야구를 할 때는 겁이 난 적도 있었지만(웃음)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KBO에서 뛸 수 있다는 아주 좋은 기회가 왔고,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KBO리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

▶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과거 나와 뛰었던 친구들이 KBO리그에서 뛰며 정보를 보내주기도 했다. 릭 밴덴허크도 이야기를 해줬었고, 윌린 로사리오가 올리는 동영상 등을 보면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콜로라도 AAA에서 함께 뛴 적이 있는데 그 후에 KBO로 갔다. 그때부터 KBO리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자도 주고받고 정보를 얻었다.


- 한국 대표팀을 상대한 적도 있다.

▶ 그렇다! 2012년 WBC에서 한국 팀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차우찬에게 2루타를 쳤고, 한국은 네덜란드에 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KBO리그에서 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웃음) 삶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 여러 곳에서 야구를 했는데 KBO리그는 또 좀 다를 텐데.

▶ 그렇다, 분명 차이가 있다. 어떤 면은 윈터리그와 조금 비슷한 점도 있다. 윈터리그에서는 매일 승리해야 하고, 매번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데 그건 좀 비슷하다. 그렇지만 KBO리그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 야구도 다르지만 팬도 다르다. (웃음)

▶ KIA팬은 경이롭다. 야구에 완전 몰입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 때로는 쇼핑몰에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호응해주시고(웃음) 승패와 상관없이 응원을 해준다. 한 번도 야유를 들은 적이 없고, 늘 선수들을 성원해준다. 내가 평생 어디를 가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 올스타 경기에도 출전했다.

▶ 내겐 프로 첫 올스타전이었다. 과거 더블A 있을 때 한 번 뽑혔는데 빅리그로 승격돼 못 갔다. KBO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함께 한 것은 영광이고 정말 뜻 깊은 경험이었다.


- 20홈런-20도루도 눈앞에 왔다. (인터뷰 당시 18홈런)

▶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도루는 충분했지만 홈런이 모자라곤 했다. 2년전 트리플A에서 15홈런-20도루를 한 것이 가장 근접했던 것 같다.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인터뷰 직후 버나디나는 연속 경기 홈런을 치며 20홈런 고지를 넘었을 뿐 아니라 KIA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시즌 초반은 상당히 고전했다.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 경기 비디오도 열심히 보고 노력했다. 결국은 적응 아닌가. 투수들의 패턴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등을 반복해서 살펴보며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특정 구종에 홈런을 치면 다음 경기에서는 다른 구종이 날아든다. 투수들은 매 경기 다른 접근법으로 나를 상대하고, 나 역시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 스윙도 약간 변화를 줬고, 타석에서의 마음 자세도 적극적으로 가져간다.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버나디나는 타격, 득점, 홈런, 도루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팔방미인의 능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 화제인 홈런 세리모니, 헬멧에 손을 얹고 뛰는 건 예전부터 하던 건가?

▶아니, 과거에는 전혀 안 하던 것이다. (웃음) 내가 쓰는 헬멧은 오키나와부터 사용하는 것이다. 당시는 내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워싱턴 시절 헤어디자이너인 친구가 와서 헤어를 짧게 다듬었는데 그 후론 달리면 헬멧이 흔들리고 벗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홈런을 치고 달리는데 헬멧이 흔들려 손을 잡고 뛰었다. 하고보니 나쁘지 않아 계속 했는데 팬들이 가장 먼저 알아채고 반응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동료들도 따라하고. (웃음) 전혀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진 세리모니다. 그래서 헬멧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웃음)


-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서 타격도 좋아졌다는데 사실인가?

▶ (웃음)그런 것도 같다. 근데 LG와의 시리즈부터 타격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때 당신과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난다. 그 인터뷰 이후 잘 치는 것 아닌가 싶다. (웃음) (이 인터뷰 후에도 20-20과 사이클링히트를 기록 ^^)


- 팬들의 질문 몇 가지도 있다.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는 누구인가?

▶ (서)동욱이 가장 장난도 잘 치고 그러지만 친하지 않은 동료가 없다. 모두 동료로 친구로 잘 대해준다.


- 한국말은 좀 늘었나?

▶ 쪼금(웃음), 아직 멀었다. 단어는 좀 배웠는데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


- 다언어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 영어와 네덜란드어, 큐라소 토속어인 파피아멘토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한다. 한국어를 배우면 5개 언어 째다. (웃음)


-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뭔지?

▶ 즐겨가는 식당이 두 곳 있다. 삼겹살과 갈비를 좋아한다. 매운 것은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는 누구인가?

▶ 솔직히 말하면 시즌 초반에는 모든 투수들이 어려웠다.(웃음) 음... 니퍼트는 까다로운 스트라이크를 아주 많이 던지는 투수이고, NC의 젊은 좌완(구창모)의 패스트볼은 은근히 힘이 있고, 두산 마무리(이용찬)의 포크볼도 아주 좋다. kt 너클볼 투수(피어밴드)도 상대하기 쉽지 않다.


- 김기태 감독님에 대한 생각은?

▶김감독님? 아주 재미있는(hilarious) 분이다. 특이한 안경도 자주 바꾸시고. (웃음) 정말 독특하고 아주 좋은 분이다. 경기 중에는 늘 집중하신다. 경기 후에는 선수들에게 정말 편하게 대해주신다. 많은 감독을 겪어 봤지만 가장 독특하고 성격이 좋으신 분이다. 내가 힘들었을 때도 늘 힘을 주셨다.


- 얼마나 오래 야구를 하고 싶은지.

▶ 그건 모르겠다. 내 몸이 버텨주는 한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 달릴 수 있고 스윙을 할 수 있다면 계속 할 것이다. 38살? 40살?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웃음) 내가 얼마나 건강하게 뛸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만 아직은 꽤 오래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의 나의 열정이고 15년째 프로로 뛰고 있다. 4-5년은 뛸 수 있지 않을까.


- KIA 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 우리 팀은 정말 강하고 잘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탄성이 나올 정도로 좋은 팀이다. 정규 시즌은 우리가 정말 끝까지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시즌은 좀 다른 시스템이라고 들었지만 우리 팀은 아주 강하다. 나도 건강히 마지막까지 좋은 성적으로 팀의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 나는 조금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은 시즌에 모든 걸 집중할 것이다.


- 3번 타자가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 전혀. 워싱턴 시절에도 내가 3번, 라이언 짐머맨이 4번, 애덤 던이 5번을 친 적이 있다. 3번이라고 특별히 부담은 없다. 어떤 타순이든 문제없다.


- 로저 버나디나에게 ‘코리아’는 어떤 의미인가?

▶음... 좋은 질문이다. (고민) 경험과 추억이라고 하고 싶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새로운 야구를 할 수 있는 경험과 많은 좋은 기억들. 코리아는 경험과 추억이다.


- 여기서 오래 뛰고 싶은 것 같은데. (웃음)

▶ 물론이다. 타이거즈 팀과 동료들이 정말 좋고, 팬들도 최고다. 광주는 작은 도시지만 사람들도 정겹고 음식도 맛있고 정말 마음에 든다. 어제도 아파트 근처에 처음 가본 정말 맛있는 식당을 찾았다.(웃음) KIA에서 오래 뛸 수 있으면 좋겠다.


 김기태 감독은 버나디나의 가장 장점으로 ‘성실함’을 꼽았습니다. 타격이나 주력이나 수비력이 아닌 성실함을 먼저 꼽았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뜻입니다. KIA 타이거즈 외국선수 최초의 20-20과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버나디나는 15일 현재 94득점으로 1위, 3할2푼4리로 타격 16위, 21홈런으로 8위, OPS .939로 14위, 79타점으로 9위, 21도루로 3위에 올랐습니다. 외야에서 보여준 하이라이트 필름의 수비도 계속 이어집니다.

일본리그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값 경쟁에서 큰 차이가 없어진 요즘이라, 팀과 선수가 서로 원한다면 버나디나의 광주 생활은 꽤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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