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이동국의 숙면과 김남일의 곰탕, 쉬는 건 훈련이다

임성일 기자 2017. 7. 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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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여전히 슈퍼맨처럼 필드를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잘 쉬기 때문이다. (전북현대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7월말 8월초.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남녀노소 모두 기다리는 때인데, 마냥 좋은 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무렵 가장 많이 들리는 푸념이 "왜 이렇게 휴가는 빨리 지나갈까"다. "왜 쉬었는데 더 피곤할까"도 익숙한 레퍼토리다. 사실 답은 알고 있다. 심리적인 영향도 있지만 너무도 바쁘게, 쉬지 않고 놀면서 휴가를 보낸 까닭이다. 에너지를 채워야할 때 노느라 강행군했으니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

쉬는 것, 그래서 충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잘 비워내야 다시 잘 담을 수 있다.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몸이 무기'인 운동선수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점점 더 못 쉬는 모양새다. 발전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면서 '쉬는 법'은 퇴보하는 느낌이다. 보고 배워야할, 귀감이 되는 선배들이 하나같이 '잘 쉬는 것'에 일가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대충 쉬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이동국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즌 초만해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부상과 슬럼프가 겹쳐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았는데, 스스로도 "이제는 선수 생활을 접어야하는 것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다"고 말할 정도로 답답했다. 하지만 묵묵히 기다리고 준비해 결국 찾아온 기회를 잡아냈다. 최근 경기력만 본다면, 다시 대표팀에 발탁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무리는 아니다.

1979년생. 동료는 물론 후배들까지도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나이다. 만약 이동국이 신태용호에 합류한다면 후배인 차두리 코치(1980년생)와의 어색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현역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니 박수가 아깝지 않다. 타고난 재능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른여덟까지 잘하고 있는 것은 '관리'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똑같이 야간경기를 해도 회복 속도가 다르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 그래도 이틀은 필요한데, 이동국 아저씨는 하루만 푹 자도 원상 복귀가 된다"며 혀를 내두른 적 있다. 하늘이 선물한 축복받은 체질이기도 하다. 여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푹 자도'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 롱런의 비결이다. 밤에만 잘 자는 게 아니다.

이동국을 옆에서 지켜본 전북의 후배 이재성은 "동국이 형을 보면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우게 된다. 특히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면서 "정해진 시간에는 무조건 불을 끄고 취침에 들어간다. 절대 늦게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낮잠 시간도 칼 같이 지킨다"며 그가 아직 팔팔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축구 게임을 하느라 전화 통화를 하느라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느라 늦은 밤까지 몸을 굴리고 점심 식사 후 오후 훈련 때까지 눈 한 번 붙이지 못하는 젊은 후배들이 보기에는 그저 '노친네' 같은 행동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게 비결이다.

역시 마흔이 다 될 때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김남일 대표팀 코치의 현역시절 '쉬는 법'도 후배들이 귀담을 만하다. '진공청소기'나 '터프가이'라는 수식어, 2002월드컵 당시의 '대회 후 나이트에 가고 싶다' 발언 등으로 김남일은 왠지 화끈하게 놀 것 같은 이미지다. 음주도 즐길 것 같다. 하지만 전혀 의외다. 체질적으로도 잘 맞지 않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훈련 외 쉬는 시간은 거의 '아줌마' 같은 코스를 즐겼다.

노는 것을 즐겼을 것 같은 김남일은 누구보다 잘 쉬었던 선수였다. (전북현대 제공) © News1

지난 2013년, 그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을 때의 일화다. 당시 34세였던 김남일은 거의 매일 경기장 근처의 한 곰탕집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단일 메뉴인 곰탕 주문이 들어가면 주인 할머니가 '한땀 한땀' 고기를 썰고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담아내는 그야말로 '슬로우 푸드'였다. 김남일은 그 곰탕을 마치 약처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아주 가끔은, 국물을 뜨다가 속에서 '욱'하고 올라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워낙 많이 먹어 질릴 때도 있었다는 뜻이었다. 거의 '복용' 수준이었던 셈인데, 그래도 먹었다. 자기관리 때문이었다. 입에 좋은 음식들은 많으나 몸에 좋은 음식들은 적다. 일과가 끝난 뒤에도 잘 놀 것 같은 김남일의 잘 쉬는 삶은 이어졌다.

당시 김남일은 "점심 때 곰탕 먹고, 자주 가는 카페에서 차(커피가 아닌)를 마시고 훈련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다시 차를 마시고 그리고 사우나에 간다"는 일상을 전했다. 인천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마지막 시즌이던 2014년 전북현대에 입단했을 때 그는 "봉동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이 주위에 괜찮은 사우나 알아보는 것이었다"며 웃었다. 그해 전북 선수들의 주요 취미생활 중 하나는 사우나였다.

관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어렵다.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꼭 밟아야할 계단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일단 '잘 먹고 잘 쉬는 것'만 실천해도 훌륭한 수준의 관리가 될 수 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여가 시간에 뭐하냐는 질문에 "요즘 후배들을 보면 운동 말고도 하는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축구 오락도 진짜 잘한다. 우리는 게을러서 못한다. 그냥, 잘 먹고 잘 자는 게 제일 좋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말을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세상에 못 노는 사람은 없다. 쉬는 것도 훈련이다. 아니, 쉬는 것은 아주 중요한 훈련이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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