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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경의 포토카툰] 이동국이 전하는 '설수대 축구화' 뒷이야기

조회수 2017. 7. 26. 14: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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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 한동안 포효하는 법을 잊은 듯 조용했던 라이언킹 이동국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 지난 23일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FC서울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것을 비롯해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1골 2도움)를 올렸다. '어쩌면 200호 골을 못 넣고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겠다'고 걱정했다는 이동국은 서울과의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개인통산 196호 골을 기록,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시원하게 떨쳐냈다. 

경기 종료 후 수훈 선수 인터뷰를 마치고 홀로 전북 원정팬을 찾은 이동국
전북팬들이 솔로 오오렐레(세리머니)를 하자는 요청에 미소를 보이는 이동국
팬들의 성화가 심해지자 돌아선 이동국  
망설임 끝에 이동국은 팬들과 함께 신명나는 솔로 오오렐레를 펼쳤다. 

역시 이동국이다. 그러나 벤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이동국이 다시 팬들 앞에서 환하게 웃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냈는지 알고 있다면 '역시 이동국'이 아닌 '그래서 이동국'이라는 탄성이 나올 것이다.

전반기 이동국은 그라운드가 아닌 그라운드 옆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부상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본인도, 보는 팬도 마음이 불편했다. 컨디션이 제법 돌아왔지만 여전히 선발 명단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어떨 때는 90분이 모두 지나도록 부름 받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4월23일, 포항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출전을 기다리던 이동국이 부름을 받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서른 여덟 베테랑 선수에게 출전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교체로 몸을 풀다가 끝까지 경기장에 못 들어간 것은 전북에 와서 거의 처음 겪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떨 때는 마지막까지 생각했다. '운동을 너무 오래했나' '올해가 마지막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생각이 깊어진다. 이 팀에 더 이상 내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운동장에서 뛰는 것보다 머릿 속으로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았던 이동국은 괴로웠다. 출전기회가 줄면서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도 생겼다. 아이들이 정성껏(?) 마련해준 손떼 묻은 축구화였다.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캡처. 아빠 이동국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설아, 수아, 시안이가 새 축구화에 낙서를 하면서 탄생하게 된 일명 '설·수·대 축구화'  
낙서 축구화에 당황한 이동국은 아이들에게 '축구화는 아빠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설명한 뒤 앞으로 아이들의 낙서가 그려진 축구화를 신고 골을 넣으면 모두 함께 골을 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동국은 실제로 아이들의 낙서가 담긴 축구화를 신고 경기에 출전했다.  

아빠 이동국은 방송 이후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 경기 낙서가 가득한 축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시기가 좋지 않았다.

교체로 출전을 준비하며 축구화를 바라보는 이동국
약속대로 아이들의 낙서가 담긴 축구화를 착용하고 경기에 출전한 이동국
지난 6월21일, 강원전 경기종료 후 축구화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이동국. 전북이 4-1로 대승을 거뒀지만 후반 교체 투입된 이동국의 공격 포인트는 없었다.  

5월초 대구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시즌 1호골은 기록했지만 좀처럼 필드골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동국의 시름은 깊어갔다. 경기가 안 풀릴 때 눈앞에 아른거리는 축구화는 이동국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설수대 축구화를 신고 몸만 풀다가 돌아간 날은 그중 최악이었다. 

5월27일, 후반 교체출전을 준비하며 몸을 풀고 있는 이동국  
후반전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한 이동국이 벤치로 돌아가고 있다. 

후반 교체출전을 준비했지만 최강희 감독은 마지막 교체카드로 공격수 에델과 수비수 임종은을 택했고, 경기종료 전까지 몸을 풀던 이동국은 씁쓸하게 벤치로 돌아갔다. 

교체아웃 된 이승기와 대화를 나누던 이동국은 조용히 축구화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라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이동국  

24일 오후 <스포츠 공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동국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거(설수대 축구화)를 신고 몸을 풀다가 벤치에 다시 앉아 축구화를 벗는데 아이들 생각이 났다. 좀 많이 속상했다. 속상한 것보다 미안했다. 그때 속으로 '이제는 이거를 못신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아이들이 아빠한테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다. 교체 때는 신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체출전이 익숙하지 않은 이동국에게 지난 4, 5, 6월은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었다. 포기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심은 묵묵한 노력과 기다림이었다.

"여름에 날이 더워지고 경기수가 많이지면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지나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 잡고, 감독님이나 선수들한테 티 내지 않고 혼자 묵묵히 준비했다. 더이상 물러날 데가 없으니까 기회가 왔을 때가 벼랑 끝 승부라 생각하고 임했다. 체력적으로도 괜찮고, 경기장에서도 괜찮은데 다만 경기에 나가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사자가 사냥을 기다리듯 이동국은 다른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여름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 6월28일 포항전에 선발출전 한 이동국은 홀로 2골을 뽑아내며 찾아온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무더위가 시작된 7월 경기수가 늘면서 그의 예상대로 출전시간이 늘어났다. 조용히 때를 기다린 이동국은 이번달 5경기에 출전해 1골2도움을 기록중이다. 묵묵하게 기다린 결과가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28일 포항전에 선발 출전해 기막힌 선제골을 선보인 이동국>


<7월23일, FC서울 원전경기에 선발 출전해 결승골을 터트린 이동국>


7월23일, FC서울과의 경기에서 후반 32분 결승골을 터트린 이동국이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조성환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이동국  

대표팀이 처한 상황 그리고 신태용 신임 감독의 부임과 함께 이동국에게 특별한 스포트라이트가 향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요란법석 달라진 것은 주위일 뿐이다. 이동국은 언제나 그랬듯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동국쯤 되는 선수가 아직도 여전히 이를 악물고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선수들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동국'은 '아직도 이동국'일 수 있다.   

다음은 이동국과의 전화 인터뷰 전문이다.


-힘든 시기를 딛고 다시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이번 FC서울전은 다시 한 번 이동국이라는 선수를 증명하는 경기였던 것 같다.

교체로 몸을 풀다가 못들어간 것은 전북에 와서 거의 처음 겪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떨 때는 '마지막'도 생각했다. '운동을 너무 오래했나' '올해가 마지막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생각이 깊어진다. 이 팀에 더 이상 내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그러나 여름에 날이 더워지고 경기수가 많이지면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지나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 잡고, 감독님이나 선수들한테 티 내지 않고 혼자 묵묵히 준비했다. 더이상 물러날 데가 없으니까 기회가 왔을 때 벼랑 끝 승부라 생각하고 임했다. 체력적으로도 괜찮고, 경기장에서도 괜찮은데 다만 경기에 나가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응원하는 분들도 힘들었을 것 같다. 나를 지지해주는 팬들도 경기장에서 뛰는 내 모습을 보고 싶을텐데 벤치에 다시 앉았을 때는 안타까웠을 거라 생각한다.


-요즘 설수대 축구화를 신지 않는데 이유가 있나?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면 축구화를 교체한다. 특히 여름에는 땀이 많이 나 축구화 교체시기가 더 빨라진다. 축구화 2개를 가지고 전반에 하나, 후반에 하나 신는다. 전에는 아이들이 준 축구화만 신었는데 불행히도 골이 나지 않았다. 그 축구화는 늘어나 못 신을 정도가 되서 교체했다. 그 축구화를 신고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신고 뛰었다는 것, 아이들과 같이 뛰고 있었다는 게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늘어나서 못 신고, 이제 전시를 해놓을 거라고 설명해줬다. 누구를 주기도 그렇고, 보관을 해야할 것 같다. 200호골을 넣을 때 신으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기회가 된다면 200호골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신어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세리머니도 준비했다고 들었다. 

개다리춤을 준비했다. 포항전 때 골 넣고 (조)성환이와 함께 개다리춤을 선보였는데, 카메라에는 안잡힌 것 같다. 


-지난 5월27일 수원전 때 교체출전을 기다리다 부름을 받지 못해서 그냥 설수대 축구화를 벗는 장면을 봤다.

그거(설수대 축구화)를 신고 몸을 풀다가 벤치에 다시 앉아 축구화를 벗는데 아이들 생각이 났다. 좀 많이 속상했다. 속상한 것보다 미안했다. 그때 이거를 못 신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아빠한테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다. 교체 때는 신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전 승리 후 팬들이 굉장히 많은 박수를 보냈다. 수훈 선수 인터뷰를 끝내고 따로 인사를 오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팬들은 나에게 너무나 큰 힘이된다. 전국 어디든 전북만큼 원정을 많이오는 팬을 못본 거 같다. 원정을 갔는데 홈팬보다 전북 원정팬이 많은 경우도 많았다.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혼자가서 인사를 하는 성격은 못되지만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팬들 요청으로 결국 혼자 솔로 오오렐레(세리머니)까지 했다.  

정말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안하려고 했다. 그런데 팬들이 멀리서 오셨고 뭔가 추억을 하나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왜 했을까 생각이 든다(웃음) 전북팬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몸을 풀다보면 욕설이 굉장히 많이 들리더라. 경기장에는 가족들끼리 오는 분들도 많다. 전북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경기장에는 아이들도 있고 가족팬도 많다. 전북이 강해지고 위상이 높아진 만큼 전북을 사랑하는 팬의 수준도 높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팬은 몰라도 전북팬은 안그랬으면 좋겠다. 자제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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