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D-200] 올림픽 뒤 냉동창고 제안 받아 .. 1264억 강릉 빙상장의 굴욕

박린.김지한.김원 2017. 7. 26. 01: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창올림픽 D-200 <하> 빙상 메카 꿈꾸는 강릉의 한숨
철거하려다 최순실 관련 존치 의혹
대회 뒤 매년 20억 이상 적자 예상
하키센터는 대명그룹서 관리 포기
"인구 22만 도시에 빙상장 3개 무리"
내년 2월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철거와 존치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4월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마땅한 사후 활용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올림픽이 끝나면 애물단지가 될 우려도 있다. [강릉=김경록 기자]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면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냉동 물류창고로 쓰고 싶다.”

지난 2월 한 물류단지 조성업체는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강원도에 보냈다. 총사업비 1264억원을 쏟아부은 올림픽 시설에 동해산 수산물을 보관하겠다는 황당한 제안이었다.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사후 활용 방안이 없는 올림픽 경기장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평창 올림픽 개막을 200여 일 앞둔 지난 18일 본지 취재팀은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위치한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찾았다. 지상 2층, 지하 2층인 경기장은 400m 빙상트랙과 8000석의 관람석을 갖췄다. 기둥이 없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경기장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이곳에서 ‘빙속 여제’ 이상화(28)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종목의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보름간의 대회가 끝나면 이 경기장은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다.

강릉시 포남동에 위치한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전경. 지난 2월 한 물류단지 조성업체는 강원도에 올림픽이 끝난 뒤 이 경기장을 냉동창고로 활용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강릉=김경록 기자]
총 사업비 1264억원을 들여 조성된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총 면적 37,485㎡, 지상 2층(지하 2층) 규모의 이 경기장은 8000석의 관람석을 갖췄다.기둥 없는 건축물(기둥 사이 거리 가로 240m, 세로 120m)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강릉=김경록 기자]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당초 올림픽이 끝나면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철거와 존치를 놓고 두 차례나 결정을 번복한 끝에 지난해 4월 존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청와대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설립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이 경기장의 운영권을 노리면서 존치로 결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올림픽 개막은 점점 다가오는데 여전히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민간에 분양해 컨벤션센터와 워터파크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일본의 삿포로돔처럼 실내축구장으로 개조해 프로축구 강원FC의 홈구장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태릉빙상장을 대신해 국가대표훈련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만만치 않은 운영비 부담과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김종 전 차관이 대명에 부당한 압력 의혹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관중석 모습. 철거가 용이한 알루미늄 구조물 위에 좌석이 설치돼 있다. [강릉=김경록 기자]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는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이벤트를 겸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강릉=김경록 기자]
한국산업전략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올림픽 이후 정상 운영할 경우 연간 32억5400만원의 비용이 든다. 반면에 기대 수익은 연간 10억원 정도다. 매년 20억원 이상 적자가 쌓여 가는 구조다. 홍진원 강릉시민행동 사무국장은 “애초에 인구 22만 명인 강릉에다 빙상경기장을 3개나 새로 짓는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최순실의 그림자가 드리운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역사의 비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강릉하키센터도 같은 신세다. 팔각형의 회백색 건물에는 올림픽 규격의 아이스링크(길이 60m, 폭 30m)와 1만 석의 관람석이 들어섰다. 1064억원의 건설비가 들었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무용지물이 될 처지다.

아이스하키는 애초 서울 분산개최와 원주 개최 등이 거론됐다가, 강릉 개최가 결정되면서 올림픽 후 경기장을 해체해 원주로 옮겨가는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경제성 문제로 결국 지난해 그냥 두기로 했다. 익명을 요청한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14년 '어젠다 2020'을 발표해 올림픽 경기 일부를 다른 도시나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분산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를 서울에서 개최하면 시설 사후활용·흥행 등 모든 면에서 이점이 많았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강원도 반대로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강릉하키센터는 당초 아이스하키 실업팀(대명 킬러웨일즈)을 운영 중인 대명그룹이 올림픽이 끝난 뒤 5년간 운영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대명이 협약을 취소하면서 사후 활용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강릉=김경록 기자]
지난 2월 강릉하키센터에서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II 그룹A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아래)과 북한 대표팀이 맞대결을 펼쳤다. [중앙포토]
‘최순실 게이트’의 어두운 그림자는 강릉하키센터에도 드리웠다. 지난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실업 아이스하키팀을 운영하고 있는 대명그룹에 강릉하키센터의 사후관리를 요청했다. 대명은 강원도와 5년간 경기장을 운영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이 이와 관련해 대명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대명은 최순실과 연관됐다는 부정적 이미지와 5년간 100억원에 달하는 운영비 부담 때문에 운영 대행을 포기했다.

허병규 강원도청 올림픽운영국 과장은 “지난 4월 대명 측이 협약 취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변동의 여지가 있어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진원 국장은 “올림픽이 끝나면 이 모든 게 시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강릉 아이스아레나만 향후 흑자 운영 예상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강원도와 평창올림픽조직위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6개 경기장을 신설했다. 그중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하키센터, 정선알파인스키 경기장 등 3개 경기장이 사후 활용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산업전략연구원은 올림픽 이후 전체 경기장 운영 비용이 연간 313억51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의 사후관리 방안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연간 171억7800만원 정도다. 매년 141억7300만원의 운영비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처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 이 곳에서는 지난해 12월 쇼트트랙 월드컵이 열렸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실내수영장 등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사진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향후 흑자 운영이 예상되는 유일한 시설이 강릉 아이스아레나다. 매년 2억원의 흑자가 예상된다.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열릴 아이스아레나는 올림픽 이후 실내수영장 등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고쳐 쓸 계획이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최순실 사태’의 여파로 처음 마련했던 경기장 사후 활용 계획이 모두 어그러졌다”며 “가장 큰 문제는 강원도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하키센터의 사후 활용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원도 측은 “사후 활용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경기장들은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강원도, 정부가 해결해 준다며 막연한 기대”

이대택 국민대 체육학부 교수는 “강원도는 경기장을 지을 땐 가만히 있다가 사후 활용이 어려워지자 국가가 떠안아 달라고 말하고 있다. 막대한 빚을 지자체가 떠안은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나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지자체가 대형 이벤트를 개최할 때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는 만큼 지자체가 책임있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던 리치먼드 오벌은 현재 빙상트랙을 걷어내고 주민들을 위한 복합체육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리치몬드 오벌]
리치먼드 오벌에서는 일반인과 엘리트 선수들이 함께 운동한다. 사진은 훈련 중인 캐나다 여자배구 대표팀. 리치먼드=장혜수 기자
시민들이 운동시설을 이용하는 가운데 리치몬드 오벌 내부로 농구코트 등이 보인다. 리치먼드=장혜수 기자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당시 빙상트랙이 설치되어 있던 리치먼드 오벌의 내부 전경. 현재는 빙상트랙을 걷어내고 복합 체육시설로 변모했다. 장혜수 기자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리치먼드 오벌’은 경기장 설계 단계부터 사후 활용방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올림픽이 끝난 뒤 빙상트랙을 걷어내고 농구·배구 코트와 체력단련장 등을 갖춘 지역 종합스포츠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연간 방문자만 90만 명에 달하고 매년 200만~300만 캐나다달러(약 17억~26억원)의 수익을 낸다. 또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렸던 선더버드 경기장은 콘서트홀로 사용 중이다.

강릉=박린·김지한·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