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보크 1위' 커쇼의 경이로운 손익계산서

조회수 2017. 7. 21.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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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이었다. NL 디비전 시리즈에서 다저스와 내셔널스가 맞붙게 됐다. 특히 1차전은 세계적인 관심거리였다. 클레이튼 커쇼와 맥스 슈어저의 매치업 때문이다.

플레이볼 몇 시간 전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자욱하던 홈 팀 덕아웃에는 기자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그들 중심에는 내셔널스의 더스티 베이커 할아버지가 담담한 표정으로 온갖 귀찮은(?) 질문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묘한 화두 하나를 툭 던졌다. 특유의 느릿하고 묵직한 말투였다.

“정말로 솔직하게 말이야. 우리 주자가 나갔을 때, 심판이 보크 1, 2개만 잡아줬으면 좋겠어. 그 친구 세트 모션에서 조금 애매한 동작이 있는데, 좀체로 (심판들이) 잡아주질 않거든. 내가 알기로는 그 친구가 한번 (보크를) 선언당하면 엄청나게 흥분한다고 하더라고.”


여기서 ‘그 친구’는 물론 상대 선발인 커쇼다. 기자들이 물었다. “심판들한테 그런 로비를 하셨어요?” 물론 여기서 로비(lobby)란 음성적인, 뭐 그런 뜻이 아니다. 그냥 진정을 하거나, 유심히 봐달라고 요청했냐는 뜻이었다. 노 감독의 대답은 “아니, 안했는데”였다. 하지만 아니다. 그가 직접하지는 않았다. 다만 1루 코치가 그 일을 했다. 데이브 로프스 코치는 주자만 나가면 1루심을 귀찮게 했다. “견제 모션 좀 꼼꼼히 봐줘요.” “저거 봐봐. 발이 이상하잖아.” 등등.

당시 커쇼에게 보크가 선언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4-3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하지만 베이커 감독의 심리전은 효과가 있었는 지 모른다. 겨우 5이닝 동안 8피안타를 맞으며 3실점으로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크 선언에 진짜로 폭발한 에이스  


엊그제(한국시간 19일) 시카고 경기였다. 원정 팀의 1회 초 선제점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3회 말 2사 후. 홈 팀의 4번 아비사일 가르시아가 우중간 안타로 진루했다. 다음 맷 데이비슨 타석 때였다. 카운트가 1-2로 몰렸다. 공격 팀이 뭔가 변화를 모색할 타이밍이었다.

마운드의 투수가 그걸 놓칠 리 없다. 번개 같은 견제구가 1루로 날아들었다. 2루로 스타트하려던 주자는 꼼짝 없이 걸려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1루심 제프 켈로그가 양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낙담한 채 어깨를 늘어트린 주자에게 2루로 가도 된다고 안전 진루권을 부여했다.

다음 순간, 더스티 베이커 할아버지가 얘기한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그렇게 매너 좋고, 조신하던 피의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펄펄 뛰면서 25년 경력의 심판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살벌한 표정으로 ‘내가 뭘 잘못했냐’며 거친 샤우팅을 내뱉기 시작했다. 다행히 1루심은 참을성이 웬만한 것 같다. 2013년 이후로 아무도 퇴장시키지 않은 온건파였다.


1루심의 보크 선언에 딴사람이 된 커쇼. 격렬하게 반발하며 항의하고 있다.             mlb.tv 화면 


그래도 만에 하나 모르는 일이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불을 꺼야 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번개같이 달려나왔다. 예전 밤비노의 저주를 벗어나게한 ‘더 스틸(The Steal)’이 생각나는 스피드였다. 심판과 몇 마디를 나누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정반대, 보크 대신 견제사

또 한번 주목해야 할 상황은 7회에 찾아왔다. 여전히 1-0의 스코어. 2사 후 팀 앤더슨이 좌익수 앞으로 안타를 치고 진루했다. 이거 굉장히 골치 아프게 됐다. 1회에도 한 차례 2루 도루를 성공시켰던 주자였기 때문이다.

타석에는 멜키 카브레라. 카운트 1-1에서 투수가 이상한 낌새를 챈 것 같다. 족히 100마일을 될 것 같은 강력한 견제구 하나를 1루로 쐈다. 주자가 번개같이 리턴, 베이스를 향해 날렵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뱅뱅 타이밍이었지만 1루심은 끝까지 비협조적이다. 세이프 판정이었다.

순간 원정 팀 덕아웃이 바빠진다. 인터폰을 들고 비디오 분석팀에 급전을 때린다. 숙고의 시간이 흐른 뒤, 항소(비디오판독)를 요청했다. 물론 아시다시피, 판정은 뒤집어졌다. 견제 아웃(pick off). 그것으로 7회가 종료되며 선발 투수의 책임 이닝이 종료됐다.


여기서 급격한 궁금증 하나가 밀려든다. 3회는 보크였는데, 7회는 왜 아니었느냐는 의문이다.

정지 화면상으로는 오른발의 각도 차이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mlb.tv 화면 

그의 견제 동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오른발의 각도다. 즉, 투구 때는 오른발이 홈 쪽으로 향해야 하고, 견제 때는 1루로 향해야 한다. 보통은 그 45도 각도 쯤을 경계선으로 삼는다. 그런데 커쇼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는 게 반대측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견제할 때도 오른 발이 너무 홈 쪽으로 치우친다는 뜻이다. 작년 NLDS 때 베이커 감독뿐 아니었다. NLCS에서 상대했던 컵스의 조 매든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어쨌든. 위 그림처럼 두 상황을 비교해봐도 차이점은 구별이 쉽지 않다. 어떤 근거로 하나는 반칙이고, 하나는 괜찮은 지 납득이 어렵다.

또 다른 주장은 어깨의 움직임이다. 마치 홈쪽으로 던질듯한 동작으로 주자를 속인다는 얘기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긴가민가다. 그러니 똑같은 동작이라고 억울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깨를 비롯한 상체 움직임에서 보크의 원인을 찾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mlb.tv 화면 

리그 최고와 어울리지 않는 ‘보크 1위’ 투수

물론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보크냐, 아니냐. 그 복잡한 걸 왜 우리가 따져야 하는가. 돈 많이 받는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알아서들 잘 하겠지. 다만, 그의 보크는 다른 측면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거기서 파생되는 손익을 살펴볼 필요성 말이다.

첫번째 팩트는 보크의 숫자다. 그는 현역 투수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투수다. 리그 최고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 최다 보크 (현역)


본래 보크라는 게 어설픈 투수들이 저지르는 실수로 인식되기 쉽다. 또 대부분은 그게 맞는 얘기다. 하지만 커쇼의 경우에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실 그 정도급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지 보크를 피할 수 있다. 견제 동작에서 오른발 각도를 조금만 덜 벌리면 그만이다. 그럼 억울한 판정에 폭발할 일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치열하다. 결코 타협하지 않고 본래의 각도를 유지한다. 왜? 그건 주자를 압박하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몇 인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조그만 차이로 인해 주자의 판별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물론 이 점은 아주 엄격한 산술 계산을 근거로 한다. 따져 보자. 그가 1년에 범하는 보크의 숫자는 2~3개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현역 선수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하지만 그로 인한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바로 전혀 반대 분야에서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픽오프(pick-off), 즉 견제로 주자를 잡아내는 부분이다.


◇ 최다 픽오프 (현역)

계산기를 두들기면 금방 답이 나온다. 1시즌에 평균 1.9개의 보크를 선언당한다. 반면에 5.8개의 주자를 견제구로 잡아내고 있다. 3배 이상을 보상받는 셈이다.

단순히 이것만이 아니다. 파생되는 효과도 상당하다. 주자에 대한 억제력이다. 워낙 구별이 어려운 견제가 날아오기 때문에 1루 주자의 움직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건 곧 도루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앞서 제시했던 최다 보크 상위 랭커들의 도루 저지율을 대입시켜보자. 커쇼의 경우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도루 저지율을 보이고 있다. 리그 최상위 수준이다.

약간 MSG를 섞어서 표현하면 이렇다. 커쇼 앞의 1루 주자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존재다. 잘못 까불다가는 횡사하기 십상이다. 감히 2루를? 그건 실패할 확률이 절반이나 된다. 국으로 잠자코 지내는 게 장수하는 길이다. 


◇ 최다 보크와 도루 저지율


사실 대부분의 특급 투수들에게 보크는 창피한 일이다. 때문에 몇 년에 한번 할까말까다. 서비스 타임이 20년이나 된 바톨로 콜론은 평생동안 5번 밖에 하지 않았다. 제러드 위버나 아담 웨인라이트 같은 대투수들도 3번이 고작이다. 존 레스터는 딱 1번 뿐이다. 아리에타, 사마자, 이와쿠마 같은 투수들은 아예 ‘제로’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커쇼는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다. 그보다 훨씬 큰 보상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오른발은 여전히 치열한 격전지에 방치돼 있다. 상대 팀과 1루심의 따가운 눈길 속에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도 치열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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