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한국오픈' 된 US여자오픈..관람하던 트럼프도 깜짝 놀랐다

입력 2017.07.17. 19:47 수정 2017.07.1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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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루키' 박성현 11언더파 역전우승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선수
아마추어 국가대표 최혜진 2위
트럼프 "무척 흥미롭다" 트위트
올 시즌 3개 메이저대회 한국인이 휩쓸어

[한겨레]

박성현이 16일(현지시각) 유에스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리더보드 맨 왼쪽은 전날 3라운드까지의 순위다. 박성현은 4위에서 우승을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미국골프협회(USGA) 제공

유에스(US)여자오픈인가, 한국여자오픈인가?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제72회 유에스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이 리더보드 상단을 거의 몽땅 점령해버리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세계 골프계를 경악시켰다. 그것도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소유의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였기에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아마추어 국가대표 에이스 최혜진(18·부산 학산여고3)이 4라운드 후반 한때 공동선두로 나서자 2라운드부터 경기장을 찾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유에스여자오픈 현장에 와 있다. 아마추어 선수가 몇십년 만에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무척 흥미롭다”는 글까지 남기며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놀라움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번홀 부근에 마련된 ‘프레지던츠 박스’에서 이 홀에서 단독선두로 나선 박성현(24·KEB하나은행)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에스여자오픈에서 2위로 선전한 아마추어 국가대표 최혜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누리집

17일 새벽(한국시각)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파72·6762야드)에서 열린 유에스여자오픈(총상금 500만달러·56억여원)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격적인 플레이로 ‘남달라’에 이어 새롭게 ‘닥공’이라는 별명을 얻은 박성현은 이날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이는 맹타를 선보이며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73+70+67+67)를 기록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전날까지 9언더파 단독선두를 달리던 중국의 펑산산과 최혜진을 제친 극적인 역전 드라마였다. 우승상금 90만달러(10억2000만원). 1라운드 공동 58위의 부진을 털어내고 3, 4라운드 각각 67타를 기록하며 얻어낸 값진 우승이었다.

박성현이 원정 응원을 간 ‘남달라’(박성현의 별명) 팬클럽 회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미국골프협회(USGA) 제공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7차례 우승(통산 10회)한 뒤 올해 미국 투어에 공식 데뷔한 박성현으로선 14번째 투어 대회 출전 만에 첫 우승을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유에스오픈에서 일궈내는 괴력을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1, 2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다 3, 4라운드에서 부진했고, 특히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려 연장전에 가지 못한 채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박성현은 경기 뒤 “솔직히 아직까지는 실감이 잘 안 난다.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1, 2라운드가 잘 안 풀렸는데 3, 4라운드에서는 제 샷이 나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전날 8언더파 2위에서 이날 15번홀 버디로 박성현·펑산산과 한때 공동선두로 나섰던 여고생 최혜진은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범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가 우승했으면 1967년 카트린 라코스트(프랑스) 이후 50년 만에 아마추어 챔피언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이 대회에서 공동 38위로 아마추어로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은 “최혜진은 김효주급의 유망주다. 체력도 좋고 멘탈도 강해 앞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 선수들은 최혜진이 2위, 세계랭킹 1위인 유소연(27)과 허미정(28)이 공동 3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위 랭커 자격으로 출전한 이정은(21)이 공동 5위를 기록하는 등 상위권을 점령했다.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선수였다. 펑산산은 18번홀 트리플보기로 공동 5위로 처졌다. 미국 선수들은 무명 마리나 앨릭스가 공동 11위(4언더파)를 기록한 게 최고의 성적이었고, 간판스타 렉시 톰슨과 스테이시 루이스는 공동 27위(1오버파)로 밀려 현장을 찾은 미국인들을 썰렁하게 했다.

박성현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에스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좋아하고 있다. 미국골프협회(USGA) 제공
박성현이 6번홀에서 샷을 하고 있다. 미국골프협회(USGA) 제공

이날 박성현이 우승하면서 한국 선수들은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2005년 김주연, 2008년 박인비, 2009년 지은희, 2011년 유소연, 2012년 최나연, 2013년 박인비, 2015년 전인지 등 유에스여자오픈에서 통산 9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또 올해 열린 세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4월 에이엔에이(ANA) 인스퍼레이션의 유소연, 최근 케이피엠지(KPMG) 여자 피지에이(PGA) 챔피언십 재미동포 대니엘 강(25)에 이어 이번에 박성현이 우승하면서 한국 및 한국계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점령’했다. 세계랭킹도 유소연 1위, 전인지 5위, 박인비 7위, 양희영 9위, 김세영 10위 등 한국 선수가 5명이나 톱10에 들어 있다. 유소연은 시즌 상금순위, 평균타수 등 여러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