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포커스] 프로야구 선수에게도 '출산휴가'를 許하라

안준철 2017. 7.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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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지난달 24일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간의 2017 KBO리그 경기가 열리는 잠실구장에 나타난 롯데 포수 강민호(32)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런 강민호에게 관계자들은 물론, 두산 선수들도 일부러 찾아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강민호의 부인인 신소연씨가 전날(6월23일) 3.1kg의 건강한 딸을 출산했기 때문이다. 강민호는 기자에게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된 딸 사진을 보여주면서 “저 닮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두상은 작습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역시 딸을 둔 아빠인 기자도 마치 동지를 만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게 다들 딸바보가 되는 듯싶어 절로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아빠 강민호가 자신의 딸과 만나는 일정은 고단했다. 그는 출산 전날인 22일 수원에서 열린 kt위즈와의 원정경기에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경기 후 숙소로 돌아간 강민호는 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산통을 겪는 아내 곁에서 꼬박 밤을 새운 강민호는 출산을 함께 한 뒤, 딸을 품에 안아보고 서둘러 오후 4시5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날부터 롯데가 잠실에서 두산과 3연전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 시간이 6시30분이라 강민호는 경기 중간에 더그아웃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국 이날 강민호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김사훈(30)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안방을 지켰다.

지난달 23일 득녀한 롯데 강민호가 딸을 품안에 안고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만약 강민호가 도착하기 전에 김사훈이 부상을 당해 경기에서 빠져야 된다면 롯데로서는 아찔할 수밖에 없었다. 백업포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의 선수가 포수로 들어가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민호가 도착한 뒤에 부상 상황이 나온다 하더라도 문제다. 경기 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고, 밤을 새워 아내의 출산을 함께 한 강민호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더구나 강민호는 수비는 물론, 롯데 타선에 없어서 안 될 타자다. 안 그래도 몇 년 전부터 강민호에 대한 과부하가 롯데의 고민거리이다.

그렇다고, 1군 엔트리에서 빼서, 휴가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1군에 등록하려면 10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실상 백업포수가 없었던 23일 경기에서 롯데는 두산에 패하고 말았다.

강민호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출산을 포함한 경조사를 제대로 챙길 수 없다. 매일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자녀의 출산과 돌잔치, 부모상 등으로 시즌 중 경기를 빠지기는 어려운 형편인 게 사실이다. 자녀 돌잔치의 경우,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주로 치를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조사는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때문에 구단의 배려 없이, 선수가 자리를 비우기는 어렵기만 하다. 강민호의 팀 동료인 손아섭(29)의 경우 2년 전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유로 휴가를 요청했지만, 임종 직전에야 팀을 떠날 수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주도로 선수들에 대한 공식적인 경조사 휴가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제도화 된 것은 없는 실정이다.

◆ 한국·일본, 外人과 차별?…미국은 ‘당당한 권리’

가까운 일본 프로야구도 별도로 선수 경조사에 대한 공식적인 휴가는 없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 문화가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이어서인지, 시즌 중 선수가 팀을 이탈하는 행위는 이례적인 일이나, 튀는 행동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특히 일본에서는 감독부터 팀의 중심을 잡느라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 전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건너뛴 것은 물론 부인상도 알리지 않았다. 2003년 한신 타이거즈 사령탑에 맡았을 때는 팀에 18년 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에야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외부에 알렸다. 팀의 우승이 먼저라는 생각에 장례식도 불참했다. 호시노 감독은 주니치 드래곤스 사령탑이던 1997년에도 암으로 타계한 부인의 사망 소식을 숨긴 채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세계의 홈런왕으로 불리는 오 사다하루 전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도 1980년대 초반 부친상을 당하고도 장례식장은커녕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이들을 두고 일본 언론과 팬들은 “남자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SK와이번스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는 KBO리그 데뷔전을 4월 후반에야 치를 수 있었다. 개막 무렵 첫 아이의 출산때문에 휴가를 받아 미국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하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외국인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강민호와 대조적으로 SK와이번스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31)는 올 시즌 개막 무렵 첫 아이의 출산 때문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구단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는 경조사 휴가를 묵인해 주고 있다. 지난 시즌 NC 에릭 해커(34), 2015년 삼성 타일러 클로이드(30) 역시 당당히 시즌 중 출산휴가를 썼다. 롯데 송승준(37)의 경우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인 2010년 출산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긴 했지만, 말 그대로 배려였을 뿐 대부분의 선수들은 출산을 함께 하지 못한다.

메이저리그는 출산 및 가족상 등에 대한 공식적인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출산휴가는 2011년 선수노조와 사무국의 단체교섭을 통해 예외없이 3일 간 쓸 수 있도록 도입했다. 구단들은 출산 휴가를 위해 자리를 비운 선수의 로스터 자리를 짧게는 24시간부터 길게는 72시간까지 다른 선수로 메울 수 있다. 롯데 이대호(35) 역시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던 지난해 시범경기 기간에 아무런 부담 없이 출산휴가를 떠났다. 2003년 도입된 장례휴가는 가족이 세상을 떠났거나 위독한 상태일 때 선수가 팀을 떠나 상주가 되고, 조문을 하거나 위문을 할 수 있다. 3일에서 최대 일주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역시 이 기간 동안 임시적인 로스터 변동을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야구선수 이전에, 아빠로서 또는 아들로서 가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 유격수 앨비스 앤드루스가 지난 6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수단을 이탈했다. 이유는 바로 출산때문이다. 지난 2011년 출산휴가가 공식 도입된 메이저리그에서는 앤드루스처럼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팀을 이탈하는 게 죄짓는 행위로 치부되지 않는다. 사진=ⓒAFPBBNews = News1
◆ 국내 프로야구, 경조사 휴가 도입은 시기상조인가

국내에서도 선수들의 ‘당당한 권리’는 항상 화두다. 언제까지 구단의 배려(?)에만 의존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정은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많은 선수에게, 가족의 존재 자체가 바로 야구를 계속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의 경조사조차도 챙기지 못하고 오직 팀을 위한 희생을 강요받는 선수에게, 과연 야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히 선수들 스스로도 FA(자유계약선수) 경력 인정 문제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다. 선수협 김선웅 사무총장은 “과거 선수들의 경조사에 따른 공식적인 휴가 인정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며 “현재 국가대표에 한해 소집기간을 FA일수에 포함시키지만,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경조사에 따른 휴가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FA일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부터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보편적 인권보장이 시대의 흐름이 됐다는 점이다. 외국인 선수에게도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정작 국내 선수들이 누리지 못하는 현실 모순도 고쳐야 할 점이다. 한 전문가는 “‘선수가 무슨 출산휴가며, 경조사냐? 야구만 잘하면 되지’라는 인식자체가 그릇됐다. 야구만 잘해서 지금 야구계 전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바뀔 건 바뀌어야 한다”며 “선수도 선수 이전에 사람이다. 가족의 경조사에 관해서는 적어도 선수의 입장과 의지가 전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릇된 풍토가 관행으로 방치된다면, 이게 적폐가 아니고 뭔가”라고 강조했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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