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황재균과 동네야구 코치, 그리고 문하생 3루수들

조회수 2017. 7. 3. 08: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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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덕 래타 : 야구 연습장 주인. 보습학원 선생.

황재균 : 임시직 3루수, 샌프란시스코 거주.

저스틴 터너 : 로또 맞은 3루수. LA 거주.

강정호 : 주한 미국대사관 취업비자 대기자.

혹시 그를 기억하시는가. 덕 래타(Doug Latta)라는 특이한 성을 가진 사람이다. 작년 말에 <…구라다>가 한 번 소개했다. ‘백수가 된 저스틴 터너, 재야의 은둔 고수를 만나다’라는 제목이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LA 인근에 챗스워드(Chatsworth)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그는 거기서 ‘BallYard’라는 야구 연습장을 하고 있는 업자다. 근처 학생들 야구나 소프트볼을 가르치는 보습학원 원장쯤으로 보면 된다. 특별히 알려진 경력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 출신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화제가 됐다. 별 볼 일 없던 저스틴 터너가 그를 만난 뒤 빅클럽의 중심타자로 급성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요즘 들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새로운 문하생이 생긴 탓이다.

터너가 래타 선생을 다저스 구장으로 모셨다.       더그 래타 SNS.

레벨 스윙이여 안녕, 어퍼컷 스윙의 세계로

아무튼 잘 난 것들이 문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갖 아는 척, 지적질에 피곤하기 짝이 없다. 평화롭던 야구계가 딱 그렇다.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몰려들며 판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기기묘묘한 디지털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감각과 경험에 의존하던 인문학은 이제 저만치 멀어졌다. IT와 통계, 물리학이 지배하는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야구인들이 평생을 신봉하던 사실들은 하나씩 검증대로 올랐다. 그리고 명문대 출신 천재들이 발견해낸 간단한 숫자 몇 개로 반박되는 일이 이제는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타격 이론이다. 달인으로 불리던 백인천 씨 같은 사람은 그걸 유도의 ‘업어치기’ 동작에 적용해 설명했다. 아마 일본식 이론의 기초로 여겨진다. 즉, 야구의 기본인 ‘투구’와 ‘타격’이 모두 업어치기와 흡사한 동작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머리(정확하게는 귀) 부근에서 시작되는 동작에 가장 크게 힘을 쓸 수 있다는 게 논리적인 근거다.

대부분 타자들이 여기에 따른다. 준비 동작에서 양 손은 모두 머리 옆으로 올라간다. 래타 선생의 새로운 문하생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야구 배운 이후로 10년 넘게 그런 폼이었다. 올 초 미국에 가서도 줄곧 그렇게 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라졌다. 슬그머니 손이 내려왔다. 이제는 어정쩡하게 가슴 부근에서 시작한다. 


아시다시피 마이너리그 생활은 참담하다. 그가 쓰레기 통에 넣은 야구화를 “쓸만한 데 왜 버리냐”며 동료가 집어갈 정도라니 오죽하겠나. 어디 먹고, 자고, 입는 것뿐이겠나. 배울 곳도, 사람도 없다. 그의 팀에 코치라고는 달랑 2명이다. 그나마 한 명이 아플 때는 선수들이 1루 코치로 나간다지 않나. 누굴 가르치고 말고 할 환경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아쉬움이 커졌다. 야구 선진국이라는 미국에 왔는데 정작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마이너리그 내려가서 스스로 폼에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지만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래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처음에는 화상 통화였다. 간단한 원 포인트 레슨으로 시작했다가 얘기가 깊어졌다. 결국 스승이 직접 찾아갔다. 문하생이 있는 새크라멘토까지는 380마일, 600㎞가 넘는 거리다. 빨간 펜 선생님은 6시간이나 직접 차를 몰고 달려갔다.

손의 위치가 내려오면서 타격의 본질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귀에 피가 나도록 배운 스윙의 목표는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레벨 스윙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흔히 ‘찍어치기’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르침은 ‘공을 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낮은 데서 출발하는 게 편하다. 그래야 밑에서 위로 어퍼 스윙이 자연스럽다. 물론 최대한 앞쪽에서 히팅 포인트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몸쪽이나,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한 대응이 좋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생긴다. 이후로 문하생의 장타 생산력이 부쩍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터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메츠 시절은 평범했다. 다른 타자들처럼 양 손을 헬멧까지 올렸다. 게다가 레그킥도 들쭉날쭉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코치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다리 들면 빠른 볼에 못 따라가.’ 아니라고 따질 여지도 없다. 눈 밖에 나면 끝이다. 언제 방 빼라고 할 지 모를 미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츠는 2013시즌이 끝난 뒤 방출됐다.)

그러다가 우연히 래타 선생을 소개받았다. 그는 터너가 망설이던 레그킥에 확신을 심어줬다. 몇 가지 간단한 수정을 거쳐 업그레이드 버전을 제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을 가슴께로 내리고, 히팅 포인트를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30살에 실업자가 된 터너는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그리고 깜짝 놀랄 변신에 성공했다. 다저 스타디움에는 ‘터너 타임’을 외치는 함성이 가득했다. 결국 지난 겨울 계약서를 새로 썼다. 4년간 6,400만 달러짜리였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한 것이다. 

래타 선생의 또 다른 문하생 

어제(2일) 자이언츠의 피츠버그 원정 경기 때였다. 중계 방송하던 홈 팀 아나운서가 황재균이 나오자 발군의 취재력을 발휘했다.

“마이너리그에서 갑자기 올라와 데뷔전에서 홈런을 친 선수입니다. 한국에서는 빅 타임 커리어를 갖고 있구요.” 얘기는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 와서 정호 강을 못 만나 실망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강은 아직도 한국에서 비자를 받지 못해서 절차를 밟고 있지요. 둘은 현대 유니콘스라는 팀에서 17살 때부터(실제는 19살 때부터) 함께 뛰던 팀 메이트였습니다.”

곁에 있던 해설자가 한 마디 거든다. “강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요?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예, 모르지요. 아무도 모릅니다.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강정호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피츠버그 관중의 모습.    mlb.tv 화면

묘하게도 래타 선생의 문하생 중에 3루수가 많다. 황재균, 저스틴 터너 외에도 한 명이 더 있다. 작년까지 해적선을 타며 ‘킹(King)’으로 불리던 동양인이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레그킥의 신봉자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가 래타 선생을 찾은 것은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던 작년 8월이었다. 마침 LA 원정 기간 동안 챗스워드의 연습장을 찾아갔다. 몇 가지 스윙을 교정받고 돌아갔다. 2할 3푼대에서 헤매던 타율이 이후 2할 7푼대까지 올라갔다.

그는 레슨을 마치고 돌아가며 아쉬워했던 같다. 다음 수업을 예약했다. ‘내년 2월에 다시 오겠다. 스프링캠프 들어가기 전에 며칠간 머물며 집중 수업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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