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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UFCexpress]코리안 파이터에게는 더욱 깜깜했던 싱가포르의 밤

조회수 2017. 6. 22. 09: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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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파이트 나이트 111' 코리안 파이터 리뷰

지난 토요일 개최된 UFC 싱가폴 대회에 출전했던 대한민국 파이터들이 모두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UFC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세 명이나 함께 출전하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 많은 기대가 몰려 있었기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 클 수 밖 에 없었죠. 우리 선수들의 이날 경기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메인이벤트는 홀리 홈과 벳지 코헤이아의 대결이었습니다. 


김지연 vs 루시 푸딜로바

싱가폴에서 UFC 데뷔전을 치렀던 김지연 선수는 오랫동안 한국 여성 격투기의 강자로 군림해 왔습니다. 그 전 대회에서 UFC 데뷔전을 치른 전찬미 선수가 패기에 가득 찬 진짜배기 신예라면, 김지연은 모든 격투 관계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맏언니’ 같은 느낌이죠. 복싱, 킥복싱, 주짓수 등 다양한 격투기 종목에서 경험을 쌓아왔고 종합격투기 전적은 무패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김지연 선수의 모습

상대 루시 푸딜로바는 체코 최초의 여성 UFC 파이터로, 올해 3월 UFC에 발을 디뎠습니다. 데뷔전 상대는 2015년 말 타 단체에서 푸딜로바를 이겼던 리나 랜스버그였는데, 이번엔 푸딜로바가 타격으로 경기를 압도했지만 부심들이 랜스버그의 승리라 채점해 논란이 있었죠. 얼굴이 엉망이 된 랜스버그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푸딜로바가 이긴 경기라 깨끗이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왼쪽이 승자 랜스버그, 오른쪽이 푸딜로바입니다.

타격의 강자들끼리 만난 만큼 둘의 경기 대부분은 타격전 양상으로 흘러갔습니다. 초반에는 긴 리치를 이용한 푸딜로바의 잽이 잘 먹히는 듯 했지만, 김지연이 그 타이밍에 익숙해지며 2라운드 여러 차례 펀치 공격을 성공시켜 푸딜로바를 당황하게 만들었죠. 한 라운드씩 나눠 가진 상황이었던 마지막 3라운드, 푸딜로바가 리치를 살리는 걸 포기하고 노골적으로 클린치로 밀고 들어와 김지연을 케이지 쪽에 가두며 점수를 따 결국 승리는 푸딜로바에게 돌아갔습니다.


비록 판정패했지만, 김지연은 이날 꽤 좋은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라운드에 김지연의 펀치가 들어갈 때마다 일그러지는 푸딜로바의 표정이었습니다. 푸딜로바는 굉장히 터프한 선수입니다. 이전 경기의 상대 리나 랜스버그는 ‘엘보우 퀸’이라 불릴 정도로 팔꿈치 공격이 뛰어난 선수인데, 푸딜로바는 그 팔꿈치를 맞아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김지연의 펀치에는 상당히 힘들어했습니다. 그만큼 김지연의 펀치가 아프게, 좋은 타이밍에 들어갔다는 얘기죠. UFC 옥타곤에 좀 더 익숙해져 본인의 리듬을 완전히 살릴 수 있게 되면, 김지연의 펀치는 대부분의 상대에게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여성 밴텀급은 미국에야 선수들이 잔뜩 있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별로 없는 체급입니다. 선수들의 체격이 그만큼 크거든요. 현 챔피언 아만다 누네스나 전 챔피언 론다 로우지, 홀리 홈 등을 생각해 보시면 될 겁니다. UFC 여성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급이기도 하니, 김지연이 다음 경기에서 본인의 특기인 복싱을 살려 화끈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생각보다 빨리 주목을 받고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반대로 간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니, 김지연 선수의 미래를 위해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곽관호 vs 러셀 돈

이어 남성 밴텀급의 곽관호 선수가 UFC 첫 승 사냥에 나섰는데, 많은 팬 여러분들이 함께 보신대로 잘 풀어나가다가 기습 공격에 걸려 아쉽게 KO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곽관호가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하며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뭇 기대를 했었기에 더욱 아쉬운 패배였네요.

상대 러셀 돈은 최근 4연패를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 빠져 있었지만, 어쨌든 UFC 무대에서는 2014년 초부터 활약해 왔고, 총 전적도 20전 이상으로 곽관호보다 경험에서 앞선다는 게 큰 강점으로 꼽히는 선수였습니다. 역시 베테랑들은 한 방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되네요.


곽관호는 초반 스피드의 우위를 활용해 경기를 주도했습니다. 상대 킥을 잡아 테익다운도 한 번 빼앗았고,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킥을 여러 차례 적중시키기도 했죠. 원거리에서 거리를 한 번에 좁힐 수 있는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눈이 있기에 이런 전술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돈이 갑자기 피치를 올리며 곽관호의 빈틈을 파고들어갔습니다. 3분 30초 동안 마치 발톱과 송곳니를 감추고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조용히 곽관호를 추격하던 돈은 갑자기 강력한 타격 연타를 토해 내며 KO승을 가져갔습니다.

곽관호의 상대였던 러셀 돈

곽관호의 경기를 보면 밴텀급의 선배인 강경호, 더 나아가서는 웰터급의 전설 조르쥬 생 피에르가 떠오릅니다. 이들은 다 천혜의 운동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통 튀는 탄력과 뛰어난 운동 신경에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기술 습득 능력은 덤이죠.


그런데, 이런 타입의 선수들은 ‘타고난 운동선수’지만 ‘타고난 싸움꾼’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격투기에서 이런 ‘천생 운동선수’를 만난 상대는 기세등등하게 주먹을 휘두르며 들어오거나 붙잡고 때리는 등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기술을 차례로 교환하는 깔끔한 싸움으로는 답이 없으니까요.


곽관호 입장에서 이렇게 들어오는 상대에 대한 카운터로 가장 좋은 게 바로 레슬링을 섞어주는 겁니다.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상대들은 주먹이나 발을 힘껏 휘두르며 들어오기 때문에 중심이 앞으로 잔뜩 실릴 수 밖 에 없습니다. 이 순간 당황해 뒤로 빠지려 하면 위험합니다. 오히려 앞으로 한 스탭 더 들어가며 카운터 태클을 치거나, 일단 클린치를 잡은 후 케이지로 밀어놓는 전술이 잘 먹히죠. 조르쥬 생 피에르의 전성기 시절 필승 패턴을 살펴보면 참고할 만 합니다.


1.원거리에서 빠른 스피드와 우월한 풋워크를 사용해 움직이다가 긴 리치를 활용한 잽으로 상대 얼굴을 두들긴다.

2.잽에 맞은 상대는 흐름을 뒤집기 위해 밀고 들어오며 라이트 펀치 등 큰 공격을 날린다.

3.이를 예상하고 있던 생 피에르는 그 순간 태클을 시도해 힘을 들이지 않고 테이크다운을 얻어낸다.

조르쥬 생 피에르의 멋진 태클 장면

곽관호의 UFC 선배인 강경호도 과거 일본 무대에서 몇 차례 패배를 맛본 후 레슬링을 집중 보강해 이런 패턴을 잘 활용한 바 있습니다. 곽관호는 아직 젊고 운동 능력도 출중한 선수기 때문에 이번에 돈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밀고 들어올 때의 유연한 대처법을 기르는 데 주력한다면 다음 경기에서는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단, 첫 KO패의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클 수도 있기에, 푹 쉬며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훈련에 복귀하는 게 좋겠죠.



김동현 vs 콜비 코빙턴

메인 카드에 나선 ‘맏형’ 김동현 선수 또한 신예 콜비 코빙턴에게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코빙턴은 경기 전부터 본인은 랭킹 안에 이름을 못 올리고 있지만 챔피언 감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장담한 대로 만만찮은 실력을 갖고 있더라고요. 김동현의 패배에 대한 아쉬움만 좀 밀어두면 이번 경기는 저 같은 업계 종사자들이 보기에 케이지 활용이란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공방을 보여줬던 경기입니다. 다만 그걸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지루할 수 있으니 이해하시기 편하도록 최대한 쉽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김동현의 이번 상대였던 콜비 코빙턴

프라이드에서 UFC로 종합격투기의 중심이 넘어오며 선수들의 경기 장소가 링에서 케이지로 바뀌었고, 케이지를 이용하는 기술은 종합격투기 기술 발전의 최고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종합격투기를 케이지 안에서 실제로 훈련해 보지 않으면 레슬링 선수든 유도 선수든 절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엘리트 레슬러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벽에 기대서 레슬링을 한 후에 다들 혀를 내두릅니다.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해 보니 너무 다르다는 거죠. 거기에 종합격투기 글러브를 끼고 타격을 섞으면 그 차이는 더 심해집니다. (오해하실까봐 덧붙인다면, 어느 쪽이 더 낫거나 강하다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다르다는 겁니다.)


케이지 이용의 진화과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원래 레슬링 디펜스의 기본은 ‘스프럴’ 동작으로, 버피 점프를 하듯이 양 손을 땅에 짚으며 두 다리를 뒤로 쭉 빼는 겁니다. 상대가 다리를 잡으려 달려드니 그 다리를 빼서 못 잡게 막는 거죠. 하지만 뒤쪽이 케이지로 막혀 있으면 이 동작이 안 되니 케이지 쪽으로 몰리면 태클을 막는 쪽이 무조건 불리하다는 게 초창기의 견해였습니다.

스프럴 모습


2단계 : 그런데, 어느새 선수들이 케이지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꽉 막힌 케이지 뒤로 다리를 뺄 순 없지만, 좌우로 다리를 벌려 중심을 넓게 깔면 태클을 막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이를 시작으로 케이지를 이용해 레슬링 태클을 방어하는 기술들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다리를 벌리는 방어 외에도 케이지에 기대 일어나는 ‘Cage Walk' 기술도 발전하고, 상체클린치에 강한 그레코로만 레슬링도 그 가치를 재평가받기 시작합니다.

케이지에 기대 다리를 벌려 태클을 막는 장면


3단계 : 케이지를 활용한 레슬링 방어법이 발전하며 조제 알도 같은 타격가들이 많이 강세를 보였지만, 요즘엔 그래플러들이 또 진화해 케이지를 활용해 상대를 괴롭히는 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데미안 마이아 등이고 이번에 김동현을 이긴 콜비 코빙턴도 이 전술에 능합니다.


여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끝도 없지만, 일단 시작은 상대가 태클을 막으면 케이지까지 밀어붙인 후 상대 뒤로 슬슬 이동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백을 타든지 잡아 넘어뜨리든지 하며 그라운드로 끌어들이는 거죠. 데미안 마이아 같은 주짓떼로들은 무조건 백 포지션을 잡아 바디트라이앵글을 감아놓는 게 최종 목표고,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나 콜비 코빙턴 같은 레슬러들은 상대를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해 놓고 두들겨 패다가, 일어나면 다시 번쩍 들어 올려 메쳐 그라운드로 끌고 갑니다. 뫼비우스의 띠에 가둬 놓은 느낌이죠.

케이지에 상대를 가둬놓았다가 끌고 나와 던져버리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김동현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그래플러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에서 고생했던 이유는 빈틈을 주고 상대 움직임을 받아먹는 김동현 특유의 스타일을 코빙턴이 잘 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밀면 보통은 같이 밀겠지만, 김동현은 상대가 밀면 밀리듯이 그 힘을 받아 돌리고, 겨드랑이를 파며 들어오면 같이 겨드랑이를 파기보다는 이미 들어온 상대 팔을 감고 넘기거나 흔드는 독특하면서도 까다로운 스타일입니다. 그렇게 공방을 유도하다가 결국 상위포지션을 잡게 되면 상대 입장에서는 지옥이 시작되죠. 거머리처럼 쭉쭉 상대 체력을 빨아먹으니까요. 하지만 코빙턴은 김동현에게 절대 상위 포지션을 내주지 않고, 김동현이 상대 힘을 받아 움직이는 애매한 연결고리를 틀어쥐고 계속 압박하며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과거 데미안 마이아도 코빙턴처럼 언더훅 포지션을 주듯이 하며 싸우는 김동현 선수의 스타일을 잘 공략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동현이 다시 코빙턴 같은 상대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론적인 설명이나마 조심스럽게 해 보자면, 그런 상대에게는 일단 밀리면 안 됩니다. 기본 레슬링 싸움으로 돌아가 상대가 태클을 치면 스프럴 동작을 재빨리 해 다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게 만들고, 겨드랑이도 최대한 파이지 말고 기본 팔 파기 싸움도 적극적으로 하며, 계속 손목 잡기 싸움에서 이겨 상대 레슬링을 차단해야 합니다. 전투로 따지면 김동현은 이제까지 레슬링 싸움에서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1-2-3진을 차례로 내주며 성 앞까지 유인한 후 거기서 궤멸시키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번에 성이 함락된 셈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선수들을 만나면 1-2-3진을 그냥 내주면 안 됩니다. 성까지 끌고 오기 전에 물리쳐 쫓아내는 싸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디테일을 하나만 짚고 넘어간다면 김동현은 이번 경기 매 공방에서 상대 머리를 컨트롤하려는 노력이 좀 적었습니다. 레슬링에서 머리는 제 3의 손입니다. 태클하는 입장에서 상대가 머리를 밀고 누르는 것만큼 짜증나는 건 없는데, 이번 경기에서 그런 부분이 좀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이제까지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기술로 상대를 괴롭혀 왔는데, 코빙턴이 예상보다 훨씬 타이트하게 밀고 들어오니 그런 움직임이 부드럽게 나오지 않았던 거죠. 이제 김동현의 상대들은 코빙턴의 전술을 모방하고 변형시켜 달려들 겁니다. 준비를 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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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려 하니,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밀려옵니다.

사실 저는 해설자로 일하고 있지만, 선수들에게 이렇게 해야 하니 저렇게 해야 하니 훈수를 두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제겐 그만한 실력이나 자격도 없을 뿐더러, 선수들도 그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상대 선수가 워낙 강하거나 뭔가 경기가 안 풀렸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제 글은 독자 여러분들께서 큰 의미를 두지 마시고 경기를 더 재미있게 보시기 위한 참고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 선수들은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이미 이번 패배를 교훈삼아 기량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을 겁니다. 해설자나 칼럼리스트가 아닌 대한민국 격투기 팬의 한 사람으로서, 세 선수에게 너무 고생했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푹 좀 쉬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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