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포항에서 보고 부산에서 길을 찾다

박민하 기자 2017. 6. 1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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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숙 법제처장 인터뷰 전문


법제처 직원들이 분명했다.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다. “노동인권 변호사라고 해서 딱딱할 것 같았는데 소녀 같지 않아?”

인터뷰는 취임식 오후에 이뤄졌다. 법제처의 업무와 역할에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대화는 개인적인 관심사로 흘렀다.

- 어쩌다 노동, 인권 전문 변호사가 되었나?

포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당시 포항은 포철(포항종합제철)의 도시였다. 포철이 포항이고 포항이 포철이었다. 수많은 협력업체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삶의 애환을 곁에서 지켜봤다.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법대를 갔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고시공부를 했다. 나는 왜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가, 법조인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된 고민거리였다. 그 때는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때다. 학생운동에 투신하는 친구들도 참 많았다. 그런 친구들 옆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는 부채감, 미안함, 이런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때 생각한 바는 ‘나는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고시공부를 하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구로공단에 가서 무료 법률상담 활동을 했다. 권인숙 씨가 받은 배상금 등으로 세운 노동인권회관이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상담을 했다. 법을 배운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내용인데도 노동자들은 힘들어 하셨다. 노동인권회관의 소문을 듣고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노동법을 하는 변호사가 되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하는 게 아니라, 서울은 (변호사가) 많으니까, 나처럼 지역 출신인 사람은 지방으로 내려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 왜 부산이었나?

연수원 마치고 처음에는 포항을 생각했다. 고향이니까. 그런데 20대 중후반인 여자가 혼자 포항에 가서 개업을 하려니 솔직히 엄두가 안 났다. 울산도 생각해 봤다. 공단이 많으니까. 그런데 울산도 혼자 가서 (개업)하기에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지역에서 노동인권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리서치를 했다. 부산에 문재인 변호사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평판도 들었다. 어차피 나 혼자 개업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문 변호사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 누군가 소개를 해 줬나?

아니다. 내가 여기저기 물어가며 찾아본 거다.

-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간 건가?

먼저 전화를 드렸다. 와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갔다. 당시가 92년이었는데 연수원 수료하는 여성들은 몇 명 안 됐고 그마저도 대체로 법원을 지망했다. 변호사를 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구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변호사는 더더욱 없었다. 부산에서 변호사 등록할 때 알아보니 당시 전국에 여자 변호사가 21명이었다. 그 중 19명이 서울에 있고, 나 빼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오신 한 분이 부산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런 상황이기도 했고, 노동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반가워하신 것 같다. 이런저런 내 생각을 말씀 드리니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하셨다.

- 처음 만났을 때 문 변호사의 반응이나 당부 기억하나?

내가 그렇게 튼튼해 보이진 않잖나. 고용하는 입장에서 그런 점을 걱정할 만도 한데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다. 노동인권 분야 하겠다고 했을 때 여성이니까, 미혼이니까 힘들 텐데, 괜찮을까, 이런 말씀도 전혀 없었다. 

-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났나?

그 때 법률사무소에는 없었다. 이미 정계로 진출한 뒤였다. 문재인 변호사와 정재성 변호사 두 분만 계셨다. 노 전 대통령은 사무실에 오셨을 때 가끔 뵌 적은 있다. 또 대통령 되시고 난 이후, 북항 개발 관련해서 부산에 왔을 때 당시 내가 항만공사 항만위원이었는데 그런 자리에서 공적으로 만난 적은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한결같은 사람이다. 같이 일을 하는 내내 본 모습으로 말씀 드리면 한결같은 사람이다. 처음과 끝,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근사해 보여도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속속 들이 알게 되면 단점도, 눈에 거슬리는 점도 나타나게 마련이지 않나. 하지만 문 변호사님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아직 대통령 호칭보다 변호사님이라고 부는 게 익숙하다고 했다)

김외숙 법제처장

-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법제처장에 임명된 건가?

대통령이 나를 추천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인사팀에서 연락 왔을 때 법제처장 자리에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적인 안배도 고려했을 테고, 남녀 성별 안분도 고려했던 것 같다. 인사팀에서 그런 여러 기준을 놓고 스크린했던 것 같다. 또 가급적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런 여러 기준에 내가 가장 많은 항목을 충족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부분, 지역에 있었다는 것, 정치와 관련이 없다는 것, 오랫동안 변호사로서 일을 했다는 점, 그리고 지역에서 여러 다양한 역할을 했던 것 등이다. 문 변호사님이 나를 먼저 말씀(추천)하신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 확실한가?

인사팀에서 추천을 했을 때 대통령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본인 의사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정치적) 성향 여부를 떠나 여성 법률가라는 전문가 풀에 들어 있어서 과거 몇 차례 (공직)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거절의 뜻을 분명히 밝혀 왔다. 나는 변호사로서 부산에서 하려고 했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아시기 때문에 아마 추천을 보고 본인 의사를 반드시 확인해 보라고 말씀 하신 것으로 안다.

- 그렇게 거절하다가 이번에는 왜 수락했나?

주위에서 많은 말씀들이 있었다. 도와드려야 된다는 얘기들. 가서 돕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들. 그래서 고민을 했고, 문 변호사님이 어떤 사람인지 오래 보아 왔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미력이나마 돕는 것이 맞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자기 사람을 임명했다는 시선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부각되는 게 좋지는 않다. 분명한 인사 기준을 가지고 전문가를 찾았던 것이고, 여러 요소들을 다 고려해서 가장 많은 항목을 충족시키는 사람을 고른 것으로 안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우연히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와 ‘자격을 못 갖췄는데 아는 사람을 뽑았다’는 다르다고 본다.

- 법제처장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정치적인 부처가 아니다. 업무는 전문적이다. 법령 간에 모순되거나 미비되어 있는 부분들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게 기본적인 업무다. 나라다운 나라, ‘기회는 공평하고 절차는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법과 제도를 통해 구현될 수 있도록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적극적인 법령 해석을 통해 그런 방향의 정책집행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하겠다.

- 적극적인 법령 해석이란?

해석을 통해서 공정하고 구체적이고 타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상위법과 맞지 않는 규정들은 꼼꼼히 살펴 바꿔야 한다. 또 법령 자체가 불평등한 요소를 그대로 안고 있는데 그게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대로 시행되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결과를 계속 양산해 내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계속 발굴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법령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시행하는 과정에서 각 부처나 지자체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진짜 휴대전화를 안 쓰나?

오해가 있다. 내가 '휴대전화 없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사실 휴대전화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공중전화가 없어지니 너무 불편하더라. 그게 휴대전화를 구입한 이유다. 내 휴대전화는 우선 아이들과의 통화수단이다. 또 재판과 관련해서 상대방 변호사라든가 법원 실무자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사용한다. 사무실 직원들과의 연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런데 의뢰인도 연락처를 물어오고, 이런저런 모임에 나오라는 연락을 하려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 용도를 제한해 놓았다. 사무실 직원들이 그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 곤란하니까 ‘휴대전화 없다’고 응대한 게 와전된 측면이 있다.

- 업무 시간 외에 가급적 휴대전화를 안 쓰는 이유는?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싫어서라면 너무 오만하게 보일 것 같다. 그런 측면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니 일과 일이 아닌 것 사이에 구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돈 벌려고 변호사한 게 아니니까 영업을 위해 휴대전화를 24시간 오픈해 놓을 필요도 없다. 고객들이나 주위에 일관되게 그런 원칙을 지켜오다 보니 지금은 이해해 주시는 분도 많다. 예외가 있었는데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역할을 해야 할 때였다. 민주노총 추천으로 공익위원이 됐는데 이건 내가 노동변호사로서 하고자 했던 일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오픈해 놓았다. 변호사로서 만나는 클라이언트에게는 휴대전화를 오픈하지 않는다.

- 가정에 충실하려는 이유도 있나?

그런 부분도 있다. 밤에도 휴대전화를 받고 일을 해야 한다면 아이들하고 있는 시간이 온전해질 수 없다. 또 나름대로 휴식하고 공부하고, 재충전도 해야 한다. 그래야 해야 일들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전화 잘 안 받는 성격이다. 아날로그적인 측면이랄까? 그래서 가족들도 불편해 할 때가 있다.

-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데 어떤 원칙이 있나?

일 가정 양립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다. 나는 친정 어머니와 남편 등 가족들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여성으로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기 굉장히 어려운데 프라이오리티(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프라이오리티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름대로의 프라이오리티를 정하고 적어도 그에 따라 행동하면 본인이 겪는 마음의 갈등을 조금은 덜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갈등은 여전히 남는다. 다만 프라이오리티가 없으면 더 힘들어진다.

어떤 사람을 한 시간 인터뷰했다고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나름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하려 노력해 왔던 사람이라는 느낌은 받는다.    

박민하 기자mh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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