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토리] '팔각도'를 낮춘 임찬규의 두가지 승부구

조회수 2017. 5. 23. 11: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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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규는 17시즌 가장 주목받는 영건이다.  7경기 모두 선발로 나와 40.1이닝 ERA1.34  4승1패를 기록 중이다. 세부성적도 좋다. 이닝당 출루허용 WHIP 0.84 피안타율 .176 피OPS .501이다. 규정이닝을 채웠다면 ERA, WHIP, 피안타율, 피장타율 모두 1위 피OPS는 제프 맨쉽에 이어 2위다.

변화의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체인지업이다. 전체 구종 중 22.9% 비중으로 속구에 이어 2번째로 많이 던졌고  타자가 배트를 냈을 때 42.8%의 헛스윙을 만들었다.  올해 체인지업 50개 이상을 던진 투수 중 5번째로 높은 수치다.  좌타자 상대로는 더 잘 먹힌다.  헛스윙비율 59.5%로 압도적 리그 1위다.  덕분에 좌타 상대 성적도 좋다.  타석당 삼진 비율에서 우타자 15.3%보다 좌타자  24.6%가 더 좋다.

휘문고 시절 임찬규는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는 투수였다. 2011년 신인지명  인터뷰에서도 가장 자신있는 공으로 체인지업을 꼽았다. 하지만 막상 입단 후에는 달랐다.  프로레벨 타자에게 사용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데뷔 첫 등판에서 당대 최강으로 꼽히던 롯데의 클린업 조성환, 이대호, 홍성흔을 겁없는 정면승부로 잡아낼 때 그의 공은 힘 있는 속구, 슬라이더 그리고 각이 큰 슬로커브였다.  

세 시즌 동안 미완의 가능성만 남겼던 그가 2년간의 군복무 기간을 마치고 복귀를 앞둔 시점, 목표한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하체 중심이동을 활용해서 공을 좀더 끌고나올 수 있는 피칭 메카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체인지업의 재장착이다.  선발투수로서 긴 이닝을 소화하려면 그리고 좌타자를 상대하려면 필요한 무기였다. 

복귀 시즌은 순조롭지 못했다. 롱 릴리프로 등판한 첫경기는 무난했지만 5일 후 첫 선발등판에서 2.2이닝 8안타 6실점으로 무너졌다. 더 이상 기회는 없었고 2군행을 통보받았다. 7월 다시 1군에 복귀해서 8경기 선발등판했지만 들쭉날쭉한 피칭을 보이며 안착에는 실패했다. QS는 한번도 없었고 도리어 3회 강판이 2번, 4회 강판이 1번이다.

하지만 임찬규의 2016년이 그저 실패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술적 성장의 가장 중요한 계기가 그 과정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팔각도의 변화다.

새로운 롤모델의 나비효과 - 체인지업

오랫동안 그의 우상은 최동원이었고 위에서 내리꽂는 정통 오버핸드의 타점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프로 첫 3년 동안의 피칭도 그랬다. 하지만 부진 끝내 내려간 2군에 그의 또다른 우상이 있었다. 이상훈 코치는 그를 ‘임드로’라고 부르며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새로운 롤모델로 제시했고 임찬규는 거기에 ‘꽂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임찬규는 작년 8월의 인터뷰에서 “팔을 내리면서 구위와 컨트롤이 좋아진 것 뿐 아니라 커브의 제구도 휠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급되지 않는 또 다른 변화가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팔각도가 낮았다.  그리고 그의 주무기가 체인지업인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체인지업은 정통 오버핸드의 팔스윙보다 스리쿼터와 더 궁합이 좋다.  14년 MLB 2년차였던 류현진이 제3구종 슬라이더를 익히면서 생겼던 변화가 그와 같은 사례다. 슬라이더의 효과를 위해 팔각도가 높아지자 대신 원래의 주무기였던 체인지업의 위력이 반감된 것이다.

어떤 구종이든 공의 무브먼트는 회전수와 회전축에 의해 만들어진다. 포심 패스트볼의 라이징 무브먼트는 회전축이 12시 방향 백스핀에 가까울수록 강해진다. 하지만 체인지업이나 투심의 파고드는 무브먼트는 3시나 9시 방향 사이드스핀이 더 효과적이다.  낮은 각도의 팔스윙은 자연스럽게 이런 회전축을 만들게 된다.

애당초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임찬규의 낮아진 팔각도는 체인지업의 움직임을 더 강하게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체인지업이 재장착된 것을 넘어 17년 좌타자 상대 리그 최강의 구종이 된 결정적 계기다.

2016년 - 2017년 임찬규 투구 비교 영상

가라앉는 패스트볼 그리고 땅볼투수

팔각도가 변화시킨 것은 체인지업 뿐이 아니다. 그의 패스트볼 성질이 달라졌다. 순수한 백스핀을 가진 고회전의 포심패스트볼은 예리하게 떠오르는 볼끝을 만든다. 하지만 모든 투수가 이런 공을 목표할 필요는 없다. 임찬규처럼 140kmh 초반의 ‘어중간한’ 구속이라면 오히려 지저분하게 가라앉는 움직임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제대로 파고드는 체인지업을 가진 투수라면 더욱 그렇다. 비슷한 궤적으로 타자를 혼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앉는 속구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투심 그립으로 회전수를 억제하는 것이다. 넥센 최원태가 던지는 속구가 그런 타잎이다. 다른 하나는 백스핀이 아니라 사이드 스핀에 가까운 회전축을 만드는 것이다. 임찬규의 공이 그렇다. 그의 속구는 작년 초에 던지던 공에 비해 수직 무브먼트가 15cm 정도 작다. 그만큼 더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변화가 만든 결과는 땅볼 증가다.

2011년     0.56
2012년     0.65
2013년     0.50
2016년     0.69
2017년     2.48

년도별 땅볼/뜬공비율 (GO.AO)

임찬규는 전형적인 뜬공 투수였다. 50이닝+ 기준으로 2011년 전체 4위, 2012년 10위로 플라이볼이 더 많은 쪽에 속했다.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땅볼 아웃이 뜬공 아웃보다 휠씬 많다.  올 시즌 규정이닝 투수 중 돈 로치(GO/AO 2.63)를 제외하면 임찬규보다 땅볼 유도가 많았던 투수는 없다.

땅볼이 늘어날 때 투수가 얻는 잇점은 홈런 억제다. 이것은 그에게 특별히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는 작년까지 잠실에서는 9이닝당 0.63개지만 잠실을 떠나면 9이닝당 1.6개의 홈런을 맞았다. A급 선발투수가 되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치다.  올해는 잠실 37이닝 피홈런 1개, 비잠실 3.1이닝 피홈런 0개다.  잠실 이외의 경기등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통계는 아니다.  하지만 설사 원정경기 등판이 늘어난다 해도 땅볼/뜬공 비율을 지금처럼 유지한다면 피홈런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땅볼이 펜스를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낮아진 팔각도는 임찬규에게 새로운 두가지 무기를 가져다주었다.  좌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 체인지업 그리고 땅볼유도를 통해 피홈런을 억제할 수 있는 가라앉는 속구다. 시즌은 길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젊은 투수가 넘어야 할 허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랜 우상과 함께 찾은 새로운 롤모델을 통해 한단계 성장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7이닝 4탈삼진 무실점 임찬규 H/L (2017년 5월 3일 NC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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