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u20.told] 신태용호, 성적보다 신나는 모습을 보여줘

정재은 입력 2017.05.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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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정재은(전주)]

‘신나라 코리아!’

한국의 2017 FIFA U-20 월드컵 슬로건이다. U-20 대표팀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가 담겼다. 훈련장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집 기간 중 치렀던 공식 경기에서도 화끈한 공격 축구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런데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대한축구협회 보도자료엔 각종 성적을 요구하는 글이 담겨있고, 경기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장 이상민은 "성적"을 말했다.

# 한국만 ‘성적’을 말했다

19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A조 한국, 기니, 아르헨티나, 잉글랜드가 기자회견을 했다. 감독과 팀을 대표하는 선수가 자리했다. 4개국 선수들에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물었다.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루이스 쿡(잉글랜드)은 “조직력, 땀, 열정”이라 했다. 맺음말은 “I just enjoy it(즐기겠다)”였다. 산티아고 골롬바토(아르헨티나)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르헨티나가 축구하는 방법”이었다. 알세니 수마(기니)는 말을 아꼈다.

한국의 주장 이상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목표했던 성적을 꼭 이루고 싶다. 그 성적을 이뤘을 때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4개국 중 유일하게 성적을 말한 건 한국뿐이었다.

월드컵을 하루 앞둔 이상민의 대답에선 그동안 신태용호가 강조했던 즐기는 축구, 신나는 축구 등의 뉘앙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신태용호가 부담감을 잔뜩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 성적 부담감이 커지는 환경

그럴 수밖에 없다. 자국에서 열리는 FIFA 주관 대회는 2007 U-17 월드컵 이후 10년 만이다. 더 과거로 가면 2002 한일월드컵이 있다. 당시의 4강 신화를 한국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3 U-20 월드컵에서 거둔 8강 이상의 성적을 신태용호에 기대한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으로 가는 관문에 선 A대표팀이 있지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여론의 신뢰를 잃었다. 자연스레 슈틸리케호를 향한 시선은 차가워졌다. 상대적으로 신태용호가 더 빛나기 시작했다.

백승호와 이승우의 존재도 주목도를 높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FC 소속이자 ‘한국 축구의 미래’라 일컬어졌던 이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에서 뛴다. 백승호의 센스있는 움직임과 이승우의 톡톡 튀는 발랄함에 축구 팬은 열광한다.

기대가 높은 만큼 당사자들의 부담도 크다. 애초 최종 엔트리 경쟁은 없었다. 신 감독은 소집 초부터 그들을 팀 내 에이스라 불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둘의 역할이 중요하단 뜻이다. 신 감독의 절대적 믿음과 국민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 U-20은 즐기고, 성장하는 단계다

그들과 함께 신태용호는 4개국 대회와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르며 자신들을 향한 국민의 응원을 실감했다. 자국에서 열리는 FIFA 대회, 스포트라이트, 백승호와 이승우의 존재까지. U-20 대표팀이 자국민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방법은 성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U-20 대표팀이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여론이 열광한 건 승리가 아니라 신나게 뛰고, 공격하고, 즐기는 21명의 모습이었다. 신 감독은 소집 기간 내내 즐겁고 자신있게 뛰라 주문했다. U-20은 A대표팀과 다르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후회 없이 달린다면,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질타는 없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니까.

이틀 전, 대한축구협회에선 ‘한국 U-20 대표팀의 다섯 가지 도전은?’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4강을 넘어라, 조1위도 해보자, 4연승을 달성하라, 4골 차로 이겨보자, 4골 이상 터뜨리는 영웅을 찾아라. 이제 막 소년에서 성인이 된 U-20 대표팀에 기대하는 것들 치곤 다소 가혹하다.

대회 슬로건은 ‘신나라 코리아’다. 신태용호의 도전이 성적이나 기록이 되어선 안 된다. 세계 무대에서 뛰며 경험을 쌓고, 승리를 즐기고, 패배를 통해 배우면 된다.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세계 무대 속에서.

언젠가 신태용 감독은 그가 원하는 U-20 대표팀을 논한 적이 있다. 그가 21인 선수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이렇다.

“즐기는 선수들! 난 우리 선수들한테 그 얘기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내가 바라는 건 우리 선수들이 진짜 즐기면서 경기하되 경기장에서만큼은 목숨까지 내놓고 뛰겠다는 각오였으면 좋겠다. 성적 얘기가 아니다. ‘즐기는 투혼’은 이길 상대가 없지 않나. 모든 걸 걸고 즐기면,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 수 있다.”

사진=FA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