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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LPGA 창립자들이 던진 화두

입력 2017.03.21. 07:45 수정 2017.03.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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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LPGA 투어 파운더스컵에서 공동 2위에 오른 전인지와 공동 5위를 기록한 박인비와 장하나.

[골프한국] 세계 여자 골프계에서 태극낭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LPGA투어에 이어 JLPGA투어에서도 한국 여자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며 태극낭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 골프코스에서 막을 내린 시즌 5번째 대회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스웨덴의 바이킹 후예 안나 노르드크비스크(29)가 우승해 한국선수의 4연승은 저지당했지만 공동 2위의 전인지를 비롯, 장하나, 박인비, 유소연, 유선영, 이미림, 박성현, 이정은 등이 선두권에 이름을 올려 태극낭자들이 세계 골프의 주류임을 입증했다.

태극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4연승이 아닌 3연승으로 잠시 폭주를 멈춘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잖아도 태극낭자들의 맹활약으로 LPGA투어가 미국에서의 인기나 흥행 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은 상황에서 3연승에서 적당히 제동이 걸린 것은 태극낭자나 LPGA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이상적인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태극낭자들이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보면 앞으로 얼마든지 승수를 추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선수들이 우승을 독과점(獨寡占)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현재의 추세처럼 한국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미국선수와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선수, 유럽 선수들이 적당히 우승을 나눠 차지하는 구도가 이상적이다. 

앞으로 이런 구도가 이어지리라 기대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멋진 무대를 마련해준 셈이 된 LPGA 창립자들의 헌신적 노력을 다시 보게 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1950년 LPGA를 출범시킨 13명의 창립멤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지구촌 빅 스포츠이벤트가 된 LPGA투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에서 걸출한 여자골퍼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한국 여자선수들이 세계 여자 골프계를 지배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LPGA 창립멤버들이 어렵게 그런 마당을 펼쳐 넓혀감으로써 한국 여자선수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렸고 그곳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LPGA 창립멤버들이 현대 여자 골프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히 오늘의 LPGA와 같은 지구촌 스포츠이벤트의 초석을 놓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골퍼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LPGA 창립멤버들은 다양한 인생의 세계, 폭넓고 깊이 있는 취미와 교양의 세계를 외면한 채 오직 기능적 골프에 매달린 프로선수들에게 진정한 골퍼의 길을 제시해준다.

창립멤버들의 인생 역정을 간단하게나마 훑어보는 것은 프로 골프선수는 물론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13인의 창립멤버 모두가 탁월한 선구자적 개척자적 정신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베이브 자하리아스(Babe Zaharias, 1914~1956)만큼 전설적인 스포츠 우상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만능 스포츠 우먼인 자하리아스는 골프팬들을 LPGA투어 대회장으로 끌어들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노르웨이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올림픽에 출전해 각종 종목에서 메달을 수집했다. 1932년 LA올림픽에 출전해 투창, 80m 허들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높이뛰기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세웠지만 그녀의 배면 넘기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는 금메달을 박탈당하는 에피소드도 남겼다. 

그녀는 그밖에 야구, 농구, 테니스, 볼링, 당구, 롤러스케이팅 등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주위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은 그녀는 21세 때인 1935년 텍사스 여자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미국골프협회(USGA)는 그녀의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했다. 그녀가 야구와 농구 등의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8년 뒤 아마추어 자격을 되찾은 그녀는 1946~1947년 단 2년 만에 US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 브리티시 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을 포함해 아마추어 대회에서 무려 17승을 거뒀다. 브리티시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미국 선수가 우승한 건 1893년 대회가 열린 이래 자하리아스가 처음이었다.

1947년 프로로 전향한 그녀는 팬들을 몰고 다니며 돌풍을 일으켰다. 최단 기간에 통산 10승, 20승, 30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메이저 10승을 포함해 프로 통산 41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녀가 세운 또 다른 기록은 여성 최초로 PGA투어 대회 컷 통과. 그녀는 1945년 PGA투어 대회에 세 차례 출전해 두 번이나 컷을 통과했다.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천재 골퍼’ 미셸 위도 넘지 못한 벽을 넘은 것이다.

두 차례나 대장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시즌 평균 최저 타수상인 베어트로피를 수상하고 수술 한 달 만에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불꽃같은 삶을 살다 45세에 생을 마감했다. 

LPGA 초대 회장을 맡은 페티 버그(Patty Berg, 1918~2006)는 13세 때 골프를 배우기 시작, 곧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미국 내 15개 주요 여자 골프선수권대회를 포함해 80여개의 우승기록을 남긴 그녀는 웨스틴 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5번 우승, US여자오픈 4번 우승, 세계 골프 선수권대회 4번 우승 등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1978년 LPGA는 여자 골프계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한 공로를 인정해 패티 버그 상을 제정했는데 1990년 버그가 이 상을 수상했다. 

 LPGA 회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루이스 석스(Louise Suggs, 1923~2015)는 당시 스윙자세가 가장 좋은 선수로 유명했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아마추어 대회를 석권한 그는 1948년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프 대항전인 커티스컵 대회에 참가한 뒤 프로로 전향, 이듬해 US 여자오픈에서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대파하며 우승하는 등 LPGA 통산 50승이란 대기록을 세웠고 『여성들을 위한 골프 Golf for Women』라는 저서를 남겼다. 

13명의 창립 멤버 중 헬렌 뎃와일러(Helen Dettweiler,1914~1990)만큼 폭넓은 삶을 산 골퍼도 드물 것이다. 

워싱턴DC의 명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와 영문학을 전공한 뎃와일러는 할머니가 졸업 선물로 준 돈으로 골프를 배우겠다며 무작정 플로리다로 향했다. 1939년 워먼스 웨스턴 오픈에 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한 그녀는 LPGA가 출범하자 부회장으로 봉사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공군에서 암호작성가로도 일하는가 하면 조종술을 배워 미군 최초의 여성 공군비행사가 되어 B-17 폭격기를 조종하기도 했다.

여성 최초의 코스 설계가이기도 한 그녀는 방송인, 영화배우로 활약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레슨을 하는 등 티칭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샐리 세션즈(Sally Sessions, 1929~ )와 베티 제임슨(Betty Jameson, 1919~2009)은 예술 분야에서 골프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세션즈는 수준 높은 피아니스트이자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음악가로 명성을 날렸다. 어려서부터 테니스와 골프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세션즈는 1942년 미시건 테니스챔피언십과 미시건 골프챔피언십에서 같은 날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골프에 전념키로 작정한 그녀는 1947년 파인허스트 컨트리클럽에서 69타를 쳐 이 코스에서 72타 이하의 스코어를 낸 최초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LPGA 투어를 떠나서는 교사로도 봉사했다. 

베티 제임슨은 골퍼이자 아티스트였다. 그녀는 골프를 하지 않을 땐 노란색 컨버터블 자동차를 몰고 미국 전역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충족시켰다.

1939년과 1940년 US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2연패를 달성했고, 1942년에는 최초로 웨스턴 여자 오픈과 웨스턴 우먼스 아마추어를 동시에 제패하는 등 아마추어로서 14승을 거뒀다.

1945년 프로로 전향한 그녀는 194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데 우승 스코어는 295타. 여자가 72홀 경기에서 300타 아래로 우승한 최초 기록이다. 메이저 3승을 포함해 투어 통산 13승을 거뒀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은 ‘베어 트로피’. 시즌 최저 평균 타수를 기록하는 선수에게 주는 상인데 1952년 당대 최고의 여성 골퍼였던 글레나 콜레트 베어(1903~1989)의 업적을 기리자는 그의 제안으로 베어 트로피가 탄생했다.

오팔 힐(Opal Hill, 1892~1981)은 의지의 골퍼로 프로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신장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그녀는 운동치료사로부터 골프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골프채를 잡았다. 3년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은 그녀는 31세에 골프를 시작, 병을 극복하고 80대까지 골프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 그녀는 ‘여자 골프의 가장’(the matriarch of women’s golf)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마릴린 스미스(Marilynn smith, 1929~ )는 LPGA투어의 저변을 넓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캔자스의 대초원에서 자란 그녀는 메이저리그 야구장에서 골프 샷을 날리는가 하면 복싱 경기장을 찾아 골프를 알렸다. 미디어를 찾아다니고 레슨에도 관심을 쏟아 무려 25만명이 그로부터 골프를 배웠다. 골프 해설가로로 명성을 날린 그녀는 통산 21승을 거두었고 60세 직전까지 종종 대회에 출전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번 파운더스컵 대회에도 현장에 나타나 후배들을 격려했다.

셜리 스포크(Shirley Spork, 1927~ )는 다양한 기술 샷으로 골프팬들을 매료시켜 ‘트릭 샷 아티스트’로 불렸다. 이스트 미시건 대학을 나온 그녀는 1947년 내셔널 대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프로로 전향했는데 일화가 유명하다.

어느 날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찾아와 “프로로 전향하는 게 어때? 우린 선수가 필요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프로로 전향했다. 골프 티칭에 뛰어난 재능이 보인 그녀는 클럽 메이커의 고문을 맡는가 하면 무릎관절 수술과 고관절 수술을 받고 일주일에 한번은 라운드 하는 열성을 보였다. 

앨리스 바우어(Alice Bauer, 1927~2002) 멀렌 바우어 헤이그(Marlene Bauer Hagge,1934~ )자매와 베티 다노프(Bettye Danoff, 1923~2011)는 ‘엄마골퍼’의 역사를 연 선구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메이저 7승을 포함해 통산 31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줄리 잉스터(56)의 롤 모델이다.

언니 앨리스 바우어는 14세 때 사우스 다코다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롱비치 인비테이셔널을 6년 연속 제패했고 동생은 13세 때 US여자오픈 컷을 통과해 15세 때는 AP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선수’에 올랐다.

1950년 함께 프로로 전향하며 LPGA 창립멤버가 된 바우어 자매는 결혼 후 자녀를 갖고 투어에 참가했는데 언니는 투어에서 우승을 못했으나 동생은 통산 26승을 거두었다. 

베티 다노프도 바우어자매처럼 자녀들을 데리고 대회에 출전했다. 세 명의 딸을 두었던 다노프는 대회 중 딸을 돌볼 사람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럼에도 무적이었던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꺾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헬렌 힉스(Helen Hicks, 1911~1974)는 고교 농구선수로 뛰면서 골프를 병행한 멀티 스포츠우먼이었다. 여러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그녀는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항전인 커티스컵에서 선발되었고 여성 골퍼 최초로 골프 장비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13인의 LPGA 창립멤버들의 생애를 돌아보며 우리 골프선수들이 가야 할 길이 과연 무엇인가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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