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창사] 싸움 상대는 중국이 아니다

배진경 2017. 3. 2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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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배진경(창사)]

20일 마주한 창사의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모를 뿌연 공기는 아직 쌀쌀했다. 슈틸리케호를 향한 걱정 어린 시선과 축구를 둘러싼 바깥 세계의 상황이 이곳 날씨와 닮은 듯했다.

대표팀에 쏟아지는 걱정은 이렇다. 월드컵 본선행에 속도를 내야 하는 시점에 손흥민, 곽태휘, 이재성 등 주력 선수들의 공백이 생겼다. 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해외파 다수는 실전 감각 저하로 우려를 샀다.


게다가 극성스러운 열기로 유명한 중국 원정 경기다. 슈틸리케 감독도 “지난해 이란 원정 다음으로 부담스러운 원정”이라고 털어놓았다. 23일 한중전이 벌어질 허룽스타디움에는 5만여 홈팬들이 들어찰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뒤 달라진 상대 분위기도 부담스럽다. 바깥 공기도 심상치 않다. 사드 배치와 중국의 보복으로 민감한 이슈가 겹쳤다.

하지만 구름 사이에는 해가 숨어있는 법이다. 대표팀을 향한 시선과 별개로 슈틸리케호 내부에서는 긍정의 기운이 넘쳤다. 곳곳에서 기운이 감지됐다.

# 구자철-지동원, “무조건 이긴다”

구자철과 지동원은 중국전 승리에 일말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주말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의 분데스리가 경기를 소화하고 중국으로 건너온 둘은 20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중국전은)무조건 이긴다”고 말했다. 홈팬들이 주도할 경기장 분위기, 최근 중국 대표팀 내 변화 등 변수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요컨대 싸움의 상대는 중국이 아니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구자철은 “경기장 분위기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면서 “2라운드 남은 5경기 중 첫 경기여서 중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전이어서가 아니라 월드컵 본선행에 필요한 승점 3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동원의 생각도 같았다. “쉬운 상대가 아니다. 피지컬적으로도 강하고 우리를 이겨보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상대의 투지를 경계하면서도 “그에 대해 겁 먹거나 물러서리라는 생각은 절대 안한다.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둘은 지난해 중국전에서 좋은 기억이 있다. 구자철이 3-2 승리를 확정하는 결승골을 넣었다. 지동원은 팀의 3골에 모두 관여하며 맹활약했다. 이번에도 좋은 기억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 리피 체제 중국은 기적을 꿈꾼다

애초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멀어진 팀으로 보였다. 지난해 5경기에서 2무3패(승점 2)로 A조 꼴찌가 되면서다. 그런 중국이 슬슬 ‘기적’을 언급하고 있다. 마르첼로 리피 때문이다. 리피 감독은 중국 축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다. 광저우 헝다를 맡아 2013년 팀을 아시아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중국팬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중국 대표팀이 위기 상황에서 구조를 요청한 이유다.

리피 감독 부임 후 중국 대표팀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술적으로는 백스리에서 백포로 바꾸면서 적극적인 공격과 전방 압박을 실시하는 다이내믹한 팀이 됐다. 중국 CCTV5의 왕난 기자는 리피 감독의 리더십에 관해 “선수들이 개개인이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 자기 위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능력을 끌어낸다”면서 “큰 기적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1%라도 가능성이 있는 한 희망은 계속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구자철은 단호했다. “신중하게 준비하고 방심하지 않으면 상대 감독이 누구인지, 경기장이 어디인지, 경기장에 누가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동원은 상대 백포 전술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측면에 선다면)일대일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공략해서 중국 선수들을 어렵게 만들 생각이다.”

# 중국이 모르는 ‘새 얼굴’들의 골 감각

중국도 한국이 낯설긴 마찬가지다. 새 얼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정협과 황희찬이 대표적이다. 둘은 지난해 중국전 소집 명단에 없었다. A대표팀이든 클럽 축구에서든 중국 축구와 접점이 거의 없었던 이들이라 상대에 타격을 안길 수 있다. 특히 이번 소집을 앞두고 골 감각이 좋았다.

황희찬은 지난 주말 소속팀 잘츠부르크의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었다. 이정협도 지난 주말 경남전을 포함해 챌린지 3경기에서 연속골을 넣고 있다. 이정협은 “골을 넣지 못하고 대표팀에 왔다면 의기소침했을 텐데, 골을 넣어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여기에 허용준이라는 뉴페이스도 합류했다. 허용준은 국내 팬들에게도 생소한 이름. A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지만 주눅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을 뛰든 팀이 원하는 역할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당찬 각오를 보였다. 세 선수 모두 다른 유형의 공격 자원이다. 중국전 카드가 다양해진 셈이다.


한편 이날 대표팀 훈련장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눈에 띄었다. 전력분석관 차두리와 코치 설기현이다. 각각 지난해 말, 올해 초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지원하는 둘은 나란히 필드에 섰다.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된 훈련 동안 차두리는 함께 뛰었고 설기현은 공격수들을 직접 지도했다. 2002년 4강 주역이자 유럽에서 오랜 시간 선수로 활약했던 둘의 경험은 그 자체로 후배들의 교본이다. 압박감을 즐기는 노하우가 필요한 때,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설명해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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