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배중현의 야구 톺아보기] SK, 그라운드에 '시프트'라는 덫을 놓다

배중현 입력 2017.03.21. 07:00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일간스포츠 배중현]
과연 SK의 수비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트레이 힐만 신임 감독 체제로 2017시즌을 준비 중인 SK의 비밀 무기는 시프트(Shift)다. 시프트는 타자 유형에 맞춰서 수비수의 위치를 이동하는 방법이다.

1946년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윌리엄스 시프트'가 가장 유명하다. 루 부드로 클리블랜드 감독은 왼손 풀히터 테드 윌리엄스(당시 보스턴)를 막기 위해 2·3루 간을 비워 둔 뒤 3루수·유격수·2루수·1루수를 1·2루 간에 모두 배치했다. 이제 시프트는 메이저리그의 시대적 흐름이 됐다. 2010년 2463회였던 시프트가 지난해 10배 이상인 2만8131회까지 늘어났다.

제프 루나우 휴스턴 단장
힐만 감독은 시프트가 익숙하다. 지난해 휴스턴 벤치코치를 역임한 그는 현장에서 수비 이동을 눈으로 익혔다. 휴스턴은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시프트를 시도했던 팀이다. 비선수 출신인 제프 루나우 단장은 명문 펜실베니아대를 졸업하고 컨설팅 전문회사 맥킨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숫자'전문가다. 시프트에 통계적 근거를 제공하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중시한다. 2015년부터 사령탑을 맡고 있는 A.J 힌치 감독도 루나우 단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시프트를 강조한다.

선수단은 일찌감치 적응에 들어갔다.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2월 1일~24일)부터 시프트 훈련을 시작했다. 시범 경기에서도 실험을 이어 가고 있다. SK는 시범 경기 개막전이었던 지난 14일 사직 롯데전 김상호·김대우·강민호 타석 때 내야 수비 위치를 바꿨다. 오른손 풀히터가 나오면 내야 수비진이 3루 쪽으로, 왼손 풀히터가 나오면 1루 쪽으로 이동했다. 힐만 감독은 "시프트는 수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SK가 지난 16일 마산 NC전 나성범 타석 때 적용한 수비 시프트 장면. 3루수 최정용이 3루와 유격수 사이로, 유격수 박승욱이 2루 베이스 근처까지 움직였다. 2루수 나주환은 기존 수비 위치에서 좀 더 1루 쪽으로 이동했다. 당겨 치는 나성범의 타격 스타일을 감안해 내야수가 전체적으로 1루 방향으로 시프트를 걸었다. 배중현 기자
16일 마산 NC전에서도 외국인 타자 자비에르 스크럭스 타석에서 시프트를 걸었다. 8회 대타로 나온 나성범 타석 때는 3루수 최정용이 3루수와 유격수 사이에 위치하고 유격수 박승욱이 2루 근처로 옮겨 섰다. 3루 선상 수비를 포기하면서 내야 수비가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결과는 볼넷. 시프트가 100%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타자 성향에 따라 내야 수비수들이 위치를 계속 바꾸고 있다. 힐만 감독은 "타자의 타구 방향을 파악해 수비수를 이동한다. 그 결과 아웃 확률을 높인다. 볼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라 계속 조정하고 있다"며 "정규 시즌 중에도 확률을 높이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구상을 전했다.

SK는 '감'에 의존하지 않는다. 현재 시프트 관련 정보를 구단 내 전략 프로젝트팀에서 관리한다. 담당 업무를 하는 박윤성 매니저는 "감독님이 따로 시프트 관련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요청하진 않는다. 다만 2스트라이크 이후 타자들의 대처법 등을 궁금해 하신다"며 "외국인 타자 중에선 극단적으로 당겨 치는 스타일이 꽤 있다. 넥센 대니 돈과 두산 닉 에반스는 유형이 뚜렷하다. 시프트를 걸 수 있는 타자"라고 말했다.

2008년 월드시리즈에서 극단적인 시프트를 실시한 탬파베이. 잡아 당겨치는 왼손타자에 맞춤형으로 내야수 대부분이 1루수 방향으로 이동했다.
2013년 4월 콜로라도전에서 보여준 뉴욕 메츠의 이른바 `이익수` 시프트. 2루수가 우익수 근처까지 나가 수비를 한다.
2015년 8월 콜로라도 내야진이 시애틀을 상대로 보여준 수비 시프트. 유격수가 2루수 근처까지 이동해 수비를 커버한다.
아직 KBO 리그에선 시프트가 생소하다. 과거 두산 고영민이 왼손 풀히터 타석 때 내야를 벗어나 우익수 앞에 자리해 '이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매니저는 "KBO 리그에선 2스트라이크 이후 타자들이 밀어 치려는 성향이 강하다. 메이저리그보다 시프트를 걸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KBO 리그가 처음인 힐만 감독은 타자의 첫 스윙을 보고 시프트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는 "구단에서 상대 선수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선수들은 시프트에 적응 중이다. 2루수와 유격수를 맡는 박승욱은 "경기 전 타구 분포를 비롯한 데이터를 숙지하고 경기에 들어간다. 주로 중심타선에서 시프트가 걸리는 것 같다. 크게 어렵진 않다"고 말했다. 3루수 최정용도 "플로리다 캠프부터 준비를 해서 그런지 부담이 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SK는 지난해 실책(투수 제외)이 105개로 리그 최다 2위였다. 기본기가 부족한 모습으로 수비 불안을 노출했다. 힐만 감독 부임 첫해 '수비'에서 가장 큰 변화와 직면하게 됐다. SK가 그라운드에 덫을 놓는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