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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에 의대생까지..스틱에 건 '하나의 꿈'

입력 2017.02.17. 06:5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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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색 경력 '눈길'
열정으로 똘똘 뭉쳐 삿포로 AG 사상 첫 메달 도전

(삿포로=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세계가 사랑하는 겨울 스포츠의 꽃, 아이스하키.

하지만 한국에서 아이스하키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도 여건이 좋지 않지만, 여자는 저변 자체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18년의 짧지 않은 역사에도 지금껏 정규팀(실업, 대학, 고등, 중등, 초등)이 단 하나도 창설되지 않았다.

국내 정식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단 1개, 대표팀이 유일하다.

다른 스포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엘리트 코스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대표팀에 들어온 선수들은 그저 아이스하키가 좋아서 자기 발로 찾아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 면면도 피아니스트부터 의대 대학원생, 공대생, 고등학교 입학 예정자, 해외 귀화 선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학업·생업, 아이스하키를 병행하면서 스틱을 잡았다.

척박한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에도 꿈을 향해 포기할 줄 모르는 그녀들은 이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도전에 나선다.

현재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 20명 중엔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던 선수도 있다.

한수진(30)은 연세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생 때 불과 1년간 경험했던 아이스하키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교내 아이스하키 동아리에 가입했다. 홍일점이었다.

그리고 2007년 대표팀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수진은 "부모님이 처음에는 정말 많이 반대했는데, 지금은 많이 믿어주신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행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캐나다 교포 박은정(28·캐나다명 캐롤라인 박)은 2년 이상의 국내 경력을 채우고 2015년 귀화해 이제는 한국인으로 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4년 내내 팀의 공격수로 활약한 그는 현재 컬럼비아대 의대 대학원생이다.

그는 고수입이 보장되는 의사의 길을 잠시 미뤄두고 의대 대학원에 휴학계를 냈다.

박은정은 2014년 9월 어깨 수술을 받았다. 대학 시절 당한 부상 탓에 경기 중에 자꾸 어깨가 빠졌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뛰기 위해 주저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처음 한국에 온 이후 내 결정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며 "그때보다 지금이 더 흥분되고, 각오는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쇼트트랙에서 전향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 대표로 뛰고 있는 고혜인(23)도 있다. 고혜인은 세종대 나노신소재공학과에 재학 중이다.

대표팀에는 2001년생과 2000년생이 각각 3명 포함돼 있다. 2001년생 3명은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대표팀 경력 17년 차인 '맏언니' 이규선(33)과 막내의 나이 터울은 무려 17살이다. 다양한 삶의 이력만큼이나 나잇대도 다양한 것이 대표팀의 특징이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동네북'이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지금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세계 랭킹은 23위로, 4부 리그 격인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 A에 속해 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지만 최근 성장 속도가 눈부시다. 2013년 제22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집행부가 들어선 이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르면서부터다.

그전까지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세계선수권 5경기를 치르는 것이 한해 일정의 전부였다.

'스파링 상대' 가 없어 남자 중고교 팀을 상대로 경기하는 게 고작이었다. 기량을 키울 여건 자체가 안 됐다.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매해 나왔다.

하지만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운동에만 전념할 환경이 조성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1월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에 이어 지난 2일부터 15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에서 진행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비 전지훈련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국은 도마코마이에서 세계 랭킹 8위의 독일(2-4패), 11위 오스트리아(0-3패)와 평가전을 치러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좋은 내용을 보이며 강팀을 상대로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19~26일)에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목표는 사상 첫 메달이다.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 2'보다 어쩌면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태국(18일), 일본(20일), 카자흐스탄(21일), 중국(23일), 홍콩(25일)과 차례로 격돌한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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