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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파워' 김경아, 더 강해진 '언니'의 귀환

김가을 입력 2017.02.17. 06: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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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경아
사진제공=김경아
'경단녀'란 단어가 있다. 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 놓인 기혼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절대 부족한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엄마들은 하나 둘씩 일터를 떠나야 했다. 한번 떠난 그 자리, 좀처럼 돌아오기 어렵다. '경단녀'란 단어가 유명해진 이유다. 조기 대선 정국 속에서 표심잡기에 나선 예비 후보들은 의례적 구호로 여성 일자리 창출에 '경단녀' 고용 문제를 슬쩍 슬쩍 끼워놓고 있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경단녀' 문제. 비단 직장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스포츠 현장에도 비일비재한 현실의 벽이다. 편견과 싸우며 끊어진 경력 잇기에 나선 선수가 있다.

왕언니가 돌아왔다. 한 때 전설로 불리던 그녀. 더 강해져서 컴백했다. 원천은 '엄마 파워'다.

대한민국 여자탁구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경아(40·대한항공). 그가 무려 5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고 대표팀에 복귀했다. 김경아는 14일 막을 내린 2017년 국가대표 상비군 최종 선발전에서 19승5패를 기록, 기라성 같은 후배들과의 경쟁을 뚫고 3위를 차지하며 태극마크를 거머쥐었다. '돌아온' 김경아는 4월 9일부터 16일까지 중국 우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다.

1977년생. 불혹의 나이. 괜찮을까. "너무 얼떨떨하네요." 전화기 너머로 쑥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후배들의 실력이 워낙 쟁쟁해서 국가대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저 상비군(14명) 안에 들어 4월에 열리는 코리아오픈에 출전하는 게 목표였거든요."

김경아는 '깎신'으로 불렸다. 특기인 커트를 앞세워 세계 무대를 주름잡던 한국 여자탁구의 전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단식 동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을 거머쥐며 세계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외를 오가며 메달을 휩쓸던 김경아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정 들었던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대표팀 은퇴 후 (박)종윤(4)이와 서윤(2)이의 엄마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하지만 탁구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출산 후 플레잉코치로 돌아왔고, 2015년 10월에는 선수 복귀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복귀의 이유가 국가대표 재승선이나 올림픽 금메달 도전은 아니었다. 그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함이었다. "코치로서 선수들을 가르쳤는데, 그 과정에서 '선수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수로) 복귀한 거였죠."

정작 선수로 돌아오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애로 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크게 문제는 체력. "선수로서 제 나이가 결코 적지 않잖아요.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주위의 시선과 편견도 벽이었다. "선수로 복귀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이제 그만해라. 네가 후배들 앞길 막는다'며 말리시더라고요."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주변의 비판적인 시선도 감내해야 했던 나날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다름 아닌 두 아이였다.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어요. 엄마가 좋은 탁구 선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힘들 때마다 아이들의 존재와 응원이 큰 힘이 됐죠."

아이들을 에너지원 삼아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선 '엄마' 김경아는 불혹의 나이에 대표 선수로 제2의 탁구 인생을 시작한다. 한때 선수 복귀를 말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다시 대표팀에 들어간다고 하니 박수를 보내주시더라고요. 열심히 노력한 점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지레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땀을 흘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다.

아이들의 응원을 받고 더욱 강해진 김경아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해 녹색테이블 앞에 선다.

5년의 공백, 그리고 세월의 무게감. 부담이 없을리 없다. "태극마크는 무거워요. 단순히 경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거잖아요. 이전과는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아이들과의 생이별은 또 다른 고통이다. 하지만 목표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 보려 한다.

"앞으로 두 달 동안은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훈련할거예요. 합숙 훈련도 있으니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겠지만, 국가대표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5년만에 라켓을 다시 쥔 김경아. 그가 다시 한번 멋진 수비로 상대를 질리게 하는 '깎신'의 재림으로 경력 단절 엄마들에게 멋진 응원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종윤이와 서윤이는 한때 '탁구의 전설'이던 엄마를 철 든 기억 속에 또렷이 새길 수 있을까.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사진제공=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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