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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크라운' 이민호, 7년 만에 처음으로 흘린 기쁨의 눈물

2016. 9. 1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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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묘미는 결과가 뻔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국내 e스포츠에서 스포츠 특유의 쫄깃한 재미를 준 팀이 바로 삼성 갤럭시다. 지난 2015년부터 롤챔스를 장악한 3강(SK텔레콤, ROX, kt)이 결승 무대를 독차지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삼성은 롤드컵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단 한번도 꺾은 적이 없었던 kt를 3:2로 제압했다. 0%의 승률, 역전이 가미된 풀세트 스코어는 삼성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었다.
 
삼성 왕조와 팀의 역사는 같이 하겠지만, 전혀 다른 구성의 신 삼성은 승강전, 중위권, 포스트시즌을 차례로 밟았다. 그사이 다양한 선수들이 팀에 들어왔고, 떠났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크라운' 이민호였다. 분명 지난해만 하더라도 삼성 세 명의 미드 라이너는 어정쩡하다며 간손미(간옹-손건-미축) 라인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이민호는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미드 라이너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는 다른 LoL 프로게이머들과 남다른 시작점에 있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 연습생 출신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부류로 '와치' 조재걸, '꿍' 유병준 등이 있었지만, 기나 긴 연습생 생활을 체험한 이는 많지 않다.
 
이민호가 STX 소울의 연습생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하나였다. 바로 '못하면 연습하라'는 말이었다. 그 결과 이민호는 수 천 게임의 연습량으로 꿈의 무대인 롤드컵까지 밟게 됐다. 그리고 무대에서 이민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민호의 눈물에는 어떤 의미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잔, 롤드컵 진출보다 kt가 꺾고 싶었다.
 
컨디션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고 밝힌 이민호는 먼저 한잔을 들이킨 뒤, 이번 시즌을 돌아봤다. 누구나 삼성이 성공적으로 시즌을 맞췄다고 평하지만, 이민호는 의외의 답변을 전했다. 소기의 성과는 이뤘지만, 자신의 플레이에 100% 만족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분명 팀은 엄청나게 좋은 성적을 냈어요. 그런데 남들이 제 칭찬을 해줄 때, 제가 정말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kt에게 패하자 좌절감에 빠졌었어요. 상대가 잘하는 만큼, 우리도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져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목표였던 롤챔스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무조건 kt만 이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롤드컵 선발전에서 kt를 꺾으니까 감정이 북받치더라고요. 나중에는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kt에게 완패를 당한 뒤 이민호는 휴가까지 전부 반납했다고 한다.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오롯이 연습에 쏟아 부었다. 팀원 모두 휴가를 받았지만, 이민호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연습실을 지켰다. 예민한 성격 탓에 불면증에 시달렸고, 오랜 시간 연습한 이유로 손목은 아팠지만 당장 kt를 꺾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습이 질리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외로웠어요.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연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프로게이머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분함 때문이었어요."
 
지난해 모든 아이디를 통틀어 4,000게임을 한 이민호는 여전히 자신의 연습량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올해는 약 1,500게임 밖에 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연습만이 답이라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신이 연습한 만큼 고스란히 결과로 만드는 이민호 역시 재능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두잔, 잠 못 이루는 밤.
 
"호텔로 가서 잔 적도 있어요. 비록 가서도 못 잤지만요(웃음). 경기 전이나 후에 특히 더 잠을 못 이뤄요.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그 역시 생각이 돼버리니까요."
 
이민호는 평소 예민한 성격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최우범 감독이 자신의 방을 따로 내줄 정도였을까. 이런 이유로 이민호는 스프링 시즌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승부욕에서 비롯된 거지만, 제 실수로 코치님께 꾸중을 듣거나 플레이에 만족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당장 고쳐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예전 스타크래프트 연습생 시절에는 아마추어 신분이다 보니 이 정도로 압박감이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프로이기 때문에 과정과 결과 모두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욕심이 생겨서 그럴 거예요."
 
그렇다 해서 이민호는 악성 댓글까지 신경 쓸 정도로 소심하지 않다. 그나마 이번 시즌 가장 신경 쓰인 말이라면 "크라운 정말 끔찍하게 못한다"라는 글이었다.
 
"저한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겸허히 받아 들이지만, 무분별한 비난을 들으면 한번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생기죠."
 
외로움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특히 22세의 이민호에게 이성에 대한 외로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민호의 대답은 "No"였다. 당장은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혈기왕성한 나이니까 이성 친구에 대한 욕심도 생기죠. 하지만 제 스스로 컨트롤 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외부적인 요소에 흔들리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세잔, 성장을 도왔던 고마운 사람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복(人福)은 무척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민호는 연습생 시절부터 최고의 은사들을 경험해 왔다. 당시 중학생의 어린 나이였던 이민호는 STX에 입단해 2군 코치였던 박재석 스베누 코리아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생각이 많으니까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도 많이 하죠. 그럴 때마다 박재석 감독님은 못할 때는 무조건 연습이 해답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잡아 먹고, 연습에 방해를 받는 것보다 당장 하는 연습에 집중하는 것이 맞으니까요."
 
이후 삼성에 입단한 이민호는 최우범 감독과 김정수 코치를 만났다. 재미있게도 두 사람 모두 스타크래프트 시절 선수를 경험한 코칭스태프다.
 
"신기하게 감독님은 제 심리를 정말 잘 파악하세요. 늘 고민에 빠져있으면 따로 불러서 고민상담을 해주시죠. 특히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 감독님이 먼저 다가와 풀어주려 노력하세요."
 
"김정수 코치님은 제가 힘들 때 종종 함께 술을 마시면서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어요. 그리고 컨디션 관리나 마음에 있는 짐을 덜 수 있게 지도해주세요. 프로라면 연습량 만큼이나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셨죠."
 
그리고 이민호는 롤드컵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주영달 코치를 꼽았다. 당시 삼성은 kt에게 1:2로 끌려 다니며 패배 위기에 직면했었다.
 
"제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주영달 코치님께서 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세요. 이번 롤드컵 선발전에서 kt에게 1:2로 지고 있을 때, 굉장히 많이 흔들렸는데 주영달 코치님이 멘탈을 잡아주신 덕에 제 플레이를 할 수 있었어요."
 

◆ 한 병, 롤드컵 목표와 '택뱅리쌍'.
 
롤드컵 조 편성 결과, 삼성은 TSM(팀 솔로 미드), RNG(로열 네버 기브 업)과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다. 소위 말하는 '죽음의 조'지만, 이민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이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목표했던 kt를 꺾으니까 아직 롤드컵 진출이 실감나지 않아요. 아마 공항에 가면 그제서야 피부에 와 닿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내가 잘해서 이겼나 싶고, 어안이벙벙해요."
 
"당장 어떤 팀을 상대로 이겨야 한다는 마음은 없어요. 그저 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연습에 몰두해야죠. 그리고 다룰 수 있는 챔피언이 몇 개 없다는 편견도 깨고 싶고, 당장 높은 곳을 목표로 하기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민호가 그리는 롤드컵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페이커' 이상혁처럼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고 싶은 마음도 있겠으나, 이민호의 목표는 '택뱅리쌍'(김택용-송병구-이영호-이제동)이며,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최고의 우상이다.
 
"페이커 선수는 새로운 챔피언을 할 때 다섯 번만 하더라도 잘 다룬다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단계까지 오르기 위해 열 번을 해야 해요. 세계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면 결승전에 올라 야스오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웃음)?"
 
"제 개인적으로는 택뱅리쌍을 넘었다 싶은 프로게이머는 없어요. 그만큼 선배 게이머들을 존경하고, 꼭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따라갈 거예요."
 

◆ 막잔, 게이머 이민호를 돌아보며.
 
"게이머 생활을 하며 기뻐서 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연습생 시절을 포함 10대부터 게이머의 삶을 살아온 이민호는 지금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마추어 시절에는 그저 연습하기 바빴고,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한 브라질에서는 고독함에 사무쳤다. 그리고 뒤늦게 함께 하는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미드 라이너는 팀의 중심이라 하잖아요. 늘 제가 못할 때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요. 처음 1:1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 LoL로 넘어 왔을 때,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척 어려웠어요. 그러다 이렇게 좋은 코칭스태프와 팀원들을 만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서 고맙고, 기뻐요. 앞으로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잘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한 병, 두 병이 쌓여갔고 이민호는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에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매우 소박하고, 뻔한 답이었지만, 이민호는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어떤 일에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박재석 감독님에게 배웠거든요. 안 되는대로 원인이 있을 것이고, 잘 되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면 안 되고, 잘 되더라도 자만하지 않아야죠. 제가 프로게이머로서 약속할 수 있는 목표는 좋은 경기와 결과를 보여 드리는 거예요."
 
손창식 기자 safe@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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