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가전 참패에도 16강을 기대하는 이유

풋볼리스트 2014. 6. 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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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월드컵 대표팀의 평가전 2경기(튀니지전, 가나전)을 보고 다들 큰 실망을 한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두 경기를 조금 다르게 봤다. 아직 실망은 이르다. 일단 긍정적으로 본 것은 선수들의 신체적인 반응이 매우 좋아졌다는 것이다. 훈련으로 통해 신체 능력이 꾸준히 향상된 것 같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가장 큰 관건이 체력이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은 호쾌한 공격 축구를 좋아하지만 한국은 월드컵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 진형을 타이트하게 유지하면서 상대를 압박하여 최대한 가둬놓고, 상대가 잘하는 플레이가 이뤄질 수 없도록 반칙에 가깝게 거칠게 다루는 축구를 해야 한다. 그러다 기회가 나면 역습이나 세트 플레이로 공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현재 한국 축구 수준으로 유럽이나 남미처럼 패스로 경기를 지배하며 공격을 풀어내기엔 한계가 있다.

이 전략의 바탕은 체력이다. 상대를 가두고 압박하려면 많은 양을 뛰어야 한다. 더군다나 월드컵은 평균 4일 간격으로 1경기씩 체력 소모가 높은 게임을 하는 단기전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술보다는 얼마나 빨리 체력을 회복하는지 여부다. 체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면 감독이 아무리 좋은 전술을 제시해도 선수들이 이행할 수 없다. 한국은 상대보다 많이 뛰는 것이 전략이다. 홍명보 감독이 팀을 맡을 때부터 이케다 세이고 코치를 꼭 데려오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팀 동메달의 숨은 공로자가 바로 이 사람, 세이고 코치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팀은 빈공이었지만 수비에 강점이 있었다. 그 수비의 바탕에는 상대보다 엄청난 양을 뛰는 체력과 신체적 능력이 있었다. 그 강철체력을 만든 사람이 바로 이케다 코치다. 지금 대표팀은 이케다 코치의 플랜에 따라 소집 이전부터 선수 개개인의 몸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소집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향상시켰다. 기사를 보면 가나전이 열리기 1주일 전까지 하루 1시간 반 훈련의 30분을 이케다 코치가 만든 따라 체력 훈련(주로 코어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을 하고 있다. 보통 하루 90분 훈련하는 축구팀에서 이 정도로 체력 훈련을 하는 팀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지금 홍명보 감독이 체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아마도 홍명보 감독의 계획은 이러할 것이다. 지금 기술을 크게 향상시킬수는 없다. 체력은 준비만 제대로 하면 월드컵을 앞둔 한달 동안 큰 향상이 가능하다. 따라서 5월 훈련 소집부터 대략 경기 일주일전까지는 신체 능력을 최대한 향상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마이애미로 건너오고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서 첫 경기 전까지는 전술적으로 '족집게 과외'를 실시한다. 평가전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주축 멤버가 최대한 함께 경기하는 시간을 줘서 베스트11끼리 경기하는 경험을 쌓게 한다. 지난 시즌 출장 시간이 적어 감각이 떨어져 있지만 꼭 필요한 박주영, 윤석영 등은 최대한 감각을 끌어 올린다. 따라서 튀니지전과 가나전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었다. 강한 체력 훈련 도중 치러진 경기였으니 제대로 된 경기가 힘들었다.

다행스러운 건 가나전에서 선수들의 몸이 그동안 실시한 체력훈련 덕분에 홍 감독이 원하는 목표의 90% 이상까지 올라온 듯하다는 점이다. 몸이 더 빠르게 튀어나가고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에 지쳐서 못 뛴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몸이 더 무거워 경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몸이 올라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가나전이 희망을 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나전이 잘 되지 않은 것은 몇몇 선수의 개인적인 실수와 우리 진형으로 상대를 가두고 부수는 것에 대한 실전 연습 부족이 겹쳤고, 이미 완성된 가나의 엄청난 개인 능력에 밀린 탓이 크다. 가나가 매우 잘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아프리카 팀들은 조직력이 부족한 편인데 가나는 미드필드에서의 압박도 뛰어나고 공격진의 개인 능력도 탁월해 월드컵 16강은 충분히 갈 수 있는 전력을 보여줬다.

월드컵을 앞두고 0-4로 대패했다는 것 자체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2010년 월드컵 당시 일본을 돌아보면 4월부터 월드컵 직전까지 전패였다. 세르비아 국내파에 홈에서 0-3, 한국에 0-2, 잉글랜드에 1-2, 코트디부아르 0-2로 내리 4경기를 지고 본선에 나갔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은 조별예선에서 준우승국인 네덜란드에 밀리지 않는 경기를 했고(0-1 패) 덴마크를 침몰시키며 16강까지 진출했다.

지금 대표팀은 여론에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평가전을 희생할 만큼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선수들은 감독을 믿고 계획에 따라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홍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훈련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선수가 있다는 기사는 없었다. 즉, 이 팀은 지금 원팀(One Team)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팀은 그냥 밀어줘야 한다. 외부에서 흔들 시기가 아니다.

공격력 부재를 문제 삼는 시선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공격이 강한 축구 강국이 아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딸 때 5경기에서 고작 3골을 넣었다. 우리는 짠물 수비에 많이 뛰는 축구를 할때 성공했다. 월드컵 본선에 가면 일단 끈기있게 버티다 기회를 찾아야 한다. 시작부터 좀 풀린다고 몰아치면 망친다. 초반을 버티면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에게 기회가 많아진다.

일반적인 팀이라면 이미 팀 구성이 다 되어 주축 선수들이 형성되고 그들만의 플레이가 만들어질 시기에 한국은 감독이 교체 되고 이전에 하던 것을 다 갈아엎어야 했다. 그래서 홍 감독은 일단 자신의 전략에 맞춘 선수들을 소집한 뒤 체력훈련 위주로 대회를 준비했다. 필연적으로 다른 팀보다 발동이 늦게 걸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예선 흐름은 러시아와 무승부, 알제리전 승리, 벨기에전 난타전끝에 무승부 또는 1점차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선수들에게 러시아전은 아직 경기감각을 되찾기 힘든 시점의 경기다. 가급적 수비 위주로 안전하게 하다 무승부가 될 공산이 크다. 이후로는 점차 경기력이 나아질 것이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체력은 이미 상당히 올라왔고 전술을 만드는 데에 남은 시간을 잘 쓰고 있다고 본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평가전 경기 결과보다는 본선에 맞춰 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평가전 두 경기에서 자신만의 계획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팀을 운영하는 홍 감독의 모습을 봤다. 그는 부족한 시간에 많은 것을 만들려고 사투중이다. 팀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획에 따라 목표를 향해 충실히 진군하고 있다. 아직 H조의 월드컵은 시작하지 않았다. 첫 경기를 끈기 있게 지켜보자.

글= 여세진 (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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