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요정 손연재와 '태릉 안 개구리'

2012. 10. 18. 2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데스크의 눈

대한민국의 병은 체육계에 압축돼 있다. 어두운 부분은 다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협회의 '괘씸죄'나 '강짜' 부리기다. 마음에 안 들면 집단의 힘으로 선수를 모질게 몰아친다. 선수의 의사나 선택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도 예외가 아니었다.

손연재는 17일 인천공항에 갔다. 오후 1시30분발 비행기로 이탈리아로 출국해 세리에A 챔피언십에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비공식 대회이기는 하지만 세계 톱 선수들이 출전하고, 국제스타로 뜬 손연재도 처음으로 초대됐다. 항공, 체재비 등이 제공됐다.

그러나 공항에 나간 손연재는 망연자실했다. 이탈리아 대회 주최 쪽에서 항공편 등을 취소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정을 수소문해보니 충격은 더 컸다. 대한체조협회 쪽에서 "불참" 뉘앙스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손연재의 가슴은 무너졌다. 에이전시인 아이비(IB)스포츠 관계자는 "연재 완전히 열받았어요. 이렇게 화난 적이 없어요"라고 했다.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이다. "창조적인 천재 한 명이 수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처럼 세계를 감동시켰다. 수영협회와 박태환, 빙상협회와 김연아의 관계처럼, 비인기 군소단체인 대한체조협회는 손연재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왜 선수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출국을 막았을까?

협회 관계자는 "선수 등록만을 위해 이탈리아에 오가는 것은 선수 컨디션에도 좋지 않다. 20일부터는 태릉에서 훈련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협회 관계자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초심과 국가관을 일깨우고, 훈련관리도 짜임새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의 자율성까지 무시한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현대 스포츠는 돈이다. 손연재가 2년 전부터 모스크바로 가 러시아 대표팀과 훈련하면서 지출한 돈은 연간 2억원이 넘는다. 협회의 관리나 지원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재원은 후원사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대표니까 태릉에서 훈련해야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는 논리다. 거꾸로 손연재가 태릉에서만 훈련했다면 정말 세계적인 선수가 됐을까. 아마 우물 안 개구리가 됐을 것이다.

체조팬들도 체조협회의 처사에 매우 비판적이다. 18일 체조협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매우 격앙돼 있다. 김난영씨는 "똥밭에 피어난 꽃을 똥 속에 빠뜨리려고 작정했구나", 윤주현씨는 "선수를 보호해주고 대변해야 하는 게 협회 아닙니까?"라고 했다.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이온컵 대회에 손연재의 출전을 요구했지만 불참하자 대한체조협회의 괘씸죄에 걸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연재의 코치인 옐레나 리표르도바는 손연재한테 이번 이탈리아 세리에A 대회에 꼭 나가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유서가 깊은 대회이고, 다음 시즌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초 손연재는 등록을 한 뒤 다음달 3일과 17일 그리고 12월1일 대회에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수의 마음은 짓밟혔고, 대회 출전도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김창금 스포츠부장 kimc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포격 1주기에도 연평도 안갔는데…MB, 대선 측면지원 논란악명높은 '하얀방'에 끌려가는 사람이 늘어난다채팅앱으로 꾀어 원조교제 시도한 인면수심 '배운 남자들'정문헌 폭로 진위 떠나 봤어도 불법 누설도 불법정부, 4대강 홍보관에 660억 쏟아부었다목사가 목사에게 누워서 침뱉는 이유장발단속…유신 시절엔 이랬지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